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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본 Mar 18. 2024

고립의 시작

1. 자퇴


엄마를 포함한 육 남매가 유년 시절을 보낸 외갓집이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외할머니가 살아계실 적엔 외갓집 식구들이 자주 모였던 집이지만 이제는 이모 한 분만 남아서 살고 계시기에 남는 방이 많았다. 그래도 집이 오래되어 낡았고 동네도 위험했다. 그 집에 홀로 남은 작은 이모는 조카 중 동생을 유난히 아꼈다. 물론 그마저도 막내가 태어난 후엔 둘째보다 막내를 더 찾았지만. 그래도 종종 동생을 데리고 시내에 나가 구경을 시켜주시기도 하고 둘째가 좋아하는 화장품과 간식을 사주셨다.

오로지 동생만을 위해서.


동생은 작은 이모가 있는 집에 가 있는 것을 택했다. 조금 불편하고 낡은 집이더라도 마음이 편한 곳을 택한 것이리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후로 1년을 넘게 통째로 그 집에서 보냈다. 때가 되면 집에 돌아오려니 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 애가 집에서 나가 살면서 어떤 생각을 하며 보냈는지 알 수는 없다. 무수히 많은 다른 질문들과 마찬가지로 물어볼 기회를 잃었다. 하지만 집을 떠나 뭐가 그리 편했겠나. 나도 원가족을 떠나 10년을 밖을 떠돌며 살았지만 맘 놓고 살아본 적이 없기에 그렇게 추측할 뿐이다.


그렇게 1년을 넘기고,

고등학교 2학년에 진학할 시점.

동생이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사건의 발단은 고등학교 1학년 내내 동생의 방황을 잘 달래주셨던 담임 선생님과 헤어지게 되고,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면서 만난 새로운 담임 선생님의 강압적인 교육 방식 때문이었다.

학업에 큰 뜻이 없던 동생을 알기에 엄마는 둘째에게 억지로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을 시키지 않았다. 엄마의 허락까지 받은 상황이었지만 연세가 많으신 고지식한 담임 선생님은 동생을 강제로 보충학습을 시켰다. 그리고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에 빠질 거라면 차라리 학교도 관두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둘째는 그날 이후로 보란 듯이 자퇴하겠다고 말했다. 동생의 성격을 아는 나는 결코 그 애가 허투루 내뱉은 말이 아님을 알았다. 반드시 그 선생님의 강압적인 태도뿐만이 아니라 애초에 학교에 큰 미련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담임선생님도 자신이 비꼬듯 내뱉은 말 한마디에 그 애가 자퇴 선언까지 하게 될 줄은 모르셨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부모님 허락까지 받았다는 애한테 그렇게 강압적일 필요가 있었나 싶다. 진로의 다양성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에서 둘째는 그저 반항아로 비칠 뿐이었고, 기선제압을 하겠다는 선생님의 강압적인 태도에 그 애는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았다. 끝끝내 아무도 동생을 설득하지 못하고 동생은 그대로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지도 못한 채 자퇴했다.


아버지 사업의 실패, 언니의 우울증 그리고 엄마가 취업전선에 뛰어들면서 자퇴한 동생을 이끌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저 낡고 오래된 집 안에서 밖에 나올 일 하나 없는 동생은 오랜 시간 방치되고, 고립되기 시작했다.

용돈을 달란 말도 할 수 없는 제 처지를 알고 있었고,

그렇다고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자신을 누가 일하게 해 주겠냐는 생각에 일자리를 알아보지도 않았다. (만 18세도 안된 애가 무슨 돈을 벌겠다고 어떻게 일자리를 알아볼 수 있었겠나.)

사실 우리 집안에 자퇴한 학생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줘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둘째가 그 집에 고립되어 있는 시간 동안, 나는 나대로 숨 쉴 구멍을 찾고자 원가족을 떠나 서울로 갔다. 엄마는 나도 동생도 남지 않은 집에서 막내 하나만 먹여 살리기에도 벅찼기에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서로에게 악다구니를 써가며 분노하는 자매도, 두려운 아빠의 술주정도 더 이상 없었다.


모두가 잠시 소강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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