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나이가 생각나지는 않지만 그 무렵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가 극에 달하던 시점이었다. 막내가 없었으니까 아마도 9살 이전의 기억이겠지. 어린 우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엄마 아빠가 싸우고 엄마가 집을 나갔다. 엄마가 사라진 집에서 아빠는 늘 술에 취해있었고 우리 두 자매에겐 아빠란 아주 커다랗고 무서운 괴물이자 유일하게 우리가 자매로서 의지할 수 있게끔 만드는 ’ 공공의 적‘이었다. 아빠가 술에 취해 잠든 사이 동생의 손을 꼭 붙들고, 내복차림으로, 자주 가는 슈퍼 근처 공중전화기로 뛰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날은 아주 추운 겨울이었고, 패딩만 챙겨 입은 채로 동생과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 아빠가 깰 새라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심장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발이 시렸다. 그런 감각들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주 생생하다. 그 어느 때보다 나를 의지하는 동생의 손을 고쳐 잡았다. 바람을 피할 수 있게 공중전화박스 안으로 동생을 밀어 넣고 이모들에게 차례대로 전화를 돌렸다. 내가 이모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첫 조카인 탓에 이모들 전화번호를 줄줄 외우고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이모, 엄마가 집을 나갔어.
아빠가 계속 술만 마셔.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아.
무서워.
언니라는 타이틀을 단 이후 내가 낸 최대의 용기였다.
앞뒤 전말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결국 엄마는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고 이모들이 번갈아가며 우리 집에 반찬을 가져다줬다.
어린 동생을 안심시켰나?
내가 언니 노릇을 했나?
그 이후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자고 일어나도 끝나지 않던 엄청난 공포감.
눈을 뜨면 엄마가 돌아와 있을까 하는 기대는커녕 아빠가 잠에서 깨면 술시중을 들게 만들까 봐 이불속에서 소리 없이 내쉬는 숨.
그 속에서 어렴풋이 내가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처음으로 나에게 의지하는 동생.
우리 자매의 유대는 어린 시절 함께 겪었던 공포감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