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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본 Mar 04. 2024

고해성사

1


 사실 동생과의 에피소드를 기억할 때마다 목구멍이 쓰리다. 정확히 스무 살이 되자마자 집을 떠난 이후로 자연스럽게 동생과 부딪힐 일이 사라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억은 20살 이전에 같은 집에서 지내며 싸운 기억뿐이다. 왜 싸웠었는지 사건에 대한 뚜렷한 기억은 없고 감정만 남은 그런 일들.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눈에서는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나, 목이 갈라지도록 소리 지르던 고통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런 일들.


 그래도 몇 가지의 평온했던 기억을 떠올리자면 동생이 눈화장을 해주던 일이라던가, 엄마 몰래 같이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던 일. 맛없는 알리오 올리오를 함께 만들어 먹었던 일. 그렇게 몇 가지 기억을 제외하고는 어떤 대화도 뚜렷이 기억에 남은 것이 없다. 어쩌면 너무 많은 날을 함께 했기 때문에 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니면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던 날들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혈육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히 앞으로 남은 인생에도 함께할 날들이 (지겹도록) 충분하다고 생각했겠지.


 성격도 취향도 심지어 교우관계까지 동생과 나는 뭐 하나 비슷한 점이 없다. 나는 어디를 가나 따돌림을 당하는 대신 엄마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학업에 열중하는 모범생이었고, 동생은 어디를 가나 교우관계가 원만했지만 동시에 공부에는 영 관심이 없고 가족들 중 누구도 동생에게 큰 기대가 없었다.

나는 머리는 좋았지만 퍽 게으른 편이었다. 예를 들면 학습지를 일주일 치 밀려놓고 선생님 오시기 두 시간 전에 벼락치기로 외워 백점을 맞는 반면, 동생은 일주일 내내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해놓고도 시험만 보면 다 틀리곤 했다. 피아노 학원을 보내면 피아노에 재능 있다는 소리를 듣는 언니와 피아노든 바이올린이든 음악이 너무 싫은 동생, 컴퓨터학원을 보내면 배우지 않은 것까지 척척 해내는 언니와 배운 것도 기억 못 하는 동생, 책벌레인 언니와 화장과 옷에만 관심 있는 동생. 매번 잔병치레를 앓으며 엄마의 관심을 바라는 언니와 너무 튼튼해서 엄마가 관심을 가질 새가 없는 동생. 언니랑은 너무나도 다른 동생. 은연중에 동생은 튼튼하지만 조금 모자라고, 좀 유별난 성격을 가진 애 취급을 받았고, 나는 연약하지만 똑똑하고 착한 장녀의 모습으로 엄마와 이모들을 비롯해 만나는 어른들마다 사랑받는 존재로 자라왔다.


 동생이 좀 유별나긴 했다. (확인할 길은 없으나 지금 생각하면 차별에 대한 방어기제 같기도 하다.) 유난히 성격도 예민하고 자기 것에 대한 집착도 심했다. 주로 동생과 내가 싸우는 이유는 동생이 나를 놀린다거나, 얄밉게 군다거나, 못되게 군다거나…등등. 하지만 절대 먼저 때리는 법은 없었다. 왜냐하면 동생은 결국 혼나는 사람은 먼저 때린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다못해 주먹이 나가는 건 나였다. 물 한 잔을 나눠마시자고 하면 다 마시지도 못할 물을 혼자서 다 마셔버린 다던가, 차 안에서 함께 앉아있다가 옷깃만 스쳐도 왜 때리냐고 억지를 부린다던가, 그냥 뜬금없이 왜 쳐다보냐며 패악을 부리기도 했다. 진짜 종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약이 잔뜩 오른 내가 참다 참다 한 대 때리면 때린 세기보다 울어 재끼는 목소리가 더 우렁차서 괜히 내가 더 혼나게 되는 그런 일들의 연속이었다. 맨날 동생이 먼저 잘못했는데 왜 나까지 혼나는지 억울하기만 했다. 한 번은 엄마가 시골길 한복판에 우리 두 자매를 내려놓고 떠났다. 싸우면 차에서 내려놓겠다 엄포를 놓았는데도 끊임없이 싸웠기 때문이다. 뭐 때문에 싸웠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까 봐 두려움에 떨었던 것만은 여전히 생생하다.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는 시골길 한복판.

떠나는 승용차 뒤꽁무니를 바라보던 기억.

옆에서 울어재끼는 동생이 원망스럽기만 하던 억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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