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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우리 두 자매만 쭉 자라 온 것 같지만 사실 우리에겐 늦둥이, 막내 남동생이 있다. 나와는 9살, 둘째와는 7살 차이가 나는 막내가 태어났다. 막내가 태어나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늘 쌀쌀맞던 엄마는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던 미소와 살가운 말투로 막내를 대했다. 우린 엄마가 아들과 딸을 차별한다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엄마는 남자애라 그런 게 아니라 어린 아기니까 더 챙겨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9살짜리 내 눈에는 고스란히 보였다. 남자애라 좋은 거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나는 나를 향한 애정을 빼앗아가는 존재에 관대하지 않았다. 막내라고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둘째는 적어도 나보단 나은 누나였던 것 같다. 엄마를 대신해 아기 기저귀를 갈기도 하고 종종 밥을 챙겨 먹이던 기억이 난다. 막내가 태어나던 당시 10살도 안 된 나에게 막냇동생이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이방인이나 다름없었지만 둘째에게 막내가 어떤 존재였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아마도 동생 딴에는 엄마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겉으로 보면 장녀인 내가 엄마 옆에서 엄마를 끔찍하게 아끼고, 심적 의지가 되어줄 것처럼 보였겠지. 하지만 정작 엄마를 위하고 끔찍하게 생각하는 딸은 둘째였다. 엄마가 아직까지도 이야기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맛있는 것을 받으면 엄마는 내 입에 넣기 바쁘고, 동생은 엄마 입에 넣기 바빴다.
‘누구 주지 말고 엄마만 먹어야 돼? 알겠지?’
동생은 자기가 엄마 먹으라고 준 맛있는 걸 다른 사람 줘버릴까 봐, 정작 엄마가 못 먹게 될까 봐 입에 들어갈 때까지 감시하는 깜찍한 짓을 했다. 난 뭐 내입에 넣기 바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가족 내에서 그다지 특별한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온 집안을 통틀어 첫 번째로 태어난 아이라 주목을 받았고, 막내는 온 집안을 통틀어 마지막으로 태어난 아이라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럭저럭 중간에 태어난 동생은 특별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란 둘째 딸 나름의 차별을 느껴왔겠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동생에게 그 어떤 불평도 들어본 적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애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체념하는 법을 터득한 것일 수도. 결코 애정을 갈구하거나 불평하는 법이 없었다. 이것 역시 그 애의 입장에서 확인할 길은 없다.
사사롭고 별 것 아닌 이유들로 우린 끊임없이 싸우며 커왔다. 막내가 생겼다고 우리 사이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물론 종종 막내를 두고 한 편을 먹기도 했지만, 동생은 여전히 나에게 날이 서있고, 날카롭게 굴었다. 그 애에겐 어떤 내재된 분노 같은 것이 있다고 느껴졌다. 어린아이의 것 같지 않은 커다란 설움 같은 것. 여전히 나는 내 기억 속의 동생, 엄마에게 들은 어린 동생의 모습, 이모들에게 들은 그 애의 모습으로 추측할 뿐이지만 어린 내가 느끼기에도 둘째는 유난히 예민했다. 그 예민함은 가장 가까운 나에게 표출되었고 나는 늘 동생을 향해 방어태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늘 둘째를 미워했고, 1년에 사이좋게 지내는 날이 손에 꼽았다. 호르몬이 날뛰는 사춘기에는 육탄전이 일상이었고,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날도 많았다. 같은 핏줄로써 느끼는 유대감 같은 것을 느끼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왔다. 특히, 심하게 싸우고 난 뒤 감정이 날뛰는 채로 방안에 들어오면 쉽게 진정할 수 없었다. 나를 약 올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동생이 너무 얄밉고 미운 나머지 옆방에 누워있는 동생에게 몰래 다가가 목을 조르는 상상을 했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네가 없었으면 좋겠어.
내가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그 마음들이 동생에게 닿아 이런 일이 벌어졌나 아주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이것은 내 오랜 후회와 나의 첫 고해성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