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본본 Mar 14. 2024

원인은 아버지, 결과는 나, 그 사이에 끼인 동생

아버지는 엄청나게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람이었다. 그 밑에서 엄마는 반쯤 종교에 정신이 나간 채로 우리를 키워왔고, 우리 두 자매, 아니 세 남매가 된 우리는 그 희생양이 되었다. 술에 취해 들어오는 아버지, 늦어지는 아버지의 귀가에 예민해지는 엄마, 예민해질수록 날카로워지는 엄마의 목소리. 이 모든 것들은 유기적이었다. 현관문 소리가 들리는 즉시 후다닥 이불 밑으로 뛰어들어가 잠든 척하던 순간‘들‘. 쿵쿵 울리는 심장소리 때문에 잠든 척하는 것이 들켜버릴까 봐 조마조마했다. 아빠가 우리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그냥 잠들기를 바라는 마음, 이불을 들춰보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 이런 불안과 공포는 어린 세 남매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엄마는 그런 공포의 순간들을 겪어내면서 종교에 의지했고, 세 남매는 비뚤어진 양육 환경에서 안정적인 사랑이 아닌 공포와 불안을 먹으며 자라왔다. 아빠를 제외한 모두의 트라우마였다.  

그 기억들은 쌓여 병이 될 수밖에 없는 암세포 같았다. 그 첫 타자는 나였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던 시점 내 우울증이 극에 달했고, 모두를 향해 가시를 세우기 시작했다. 정작 공포의 대상이자 원인이었던 아빠는 그 당시 사업을 위해 필리핀에 가있었다. 사업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오지에서 고군분투하는 것만이 가정을 일으킬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아빠는 집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우울증은 원인을 제거한다고 사라지는 병이 아니었다. 내가 아빠의 피를 물려받은 이상, 엄마가 아빠와 이혼하지 않는 이상, 내 삶이 끝나지 않는 이상, 핏줄로 이어진 이 저주 같은 것을 끊어낼 방법은 없다. 매 순간이 절망적이었다. 원하는 삶은 아닐지언정 삶을 증오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숨기지 않았다. 숨겨질 정도의 괴로움이 아니었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급기야 등교조차 거부했다. 교우관계에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시답지 않은 이야기로 쉬는 시간을 보내고, 15분 걸리는 하교거리를 감당할 에너지가 없었다.

그저 엄청난 무기력증이었다.


어느 날, 나는 잔뜩 가시가 돋았고, 주변에 있는 모두를 찔렀다. 나는 속에 감정을 쌓아두지 않았다. 아니, 더 이상 쌓일 공간이 없었을 수도 있다. 아프면 아픈 만큼, 참지 않고 원망했다. 분노를 표출했고, 내가 얼마나 처절한 고통을 겪고 있는지 낱낱이 표현했다. 모자란 애정을 갈구했고, 떼를 썼다. 억눌려왔던 착한 아이의 모습을 벗어던졌다. 내가 소리 지르고, 절규하는 사이 동생은 잠잠하게 지냈다.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원망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엄마 때문에 내가 이렇게 아픈 거야.

동생 때문에 내가 이렇게 괴로운 거야.

아빠가 우리를 다 망쳤어.

병원에 보내줘.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아.

아니다, 약을 먹으면 뭘 해. 엄마는 뭘 잘못한 줄도 모르고 바뀌지도 않을 텐데.

동생이 나를 무시해.

쟤 때문에 못살겠어.

엄마는 막내만 사랑하잖아.

왜 막내를 낳았어?

집에서 나가고 싶어.

죽고 싶어.


아빠가 내 상태를 듣고 귀국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내 우울증의 탓을 엄마와 동생에게 돌렸다.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

언니한테 얼마나 대들었으면 이래.


나는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다. 귀국한 아빠가 전에 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달래고, 옆 방에 있는 동생에게 가서 아무 잘못이 없어도 사과하라고 종용하던 그 목소리. 나는 그때 아빠에게 말했어야 했다. 내가 괴로운 건 동생 때문이 아니라 당신 때문이라고. 아빠가 우리 가족을 망쳐놓았다고. 아빠 때문에 내가 이렇게 아픈 것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침묵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그때도 여전히 무서웠을 뿐이다.


공포.


동생은 나에게 억지로 사과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 애가. 억울한 것은 죽어도 못 참는 애가. 그 사과도 결국엔 아빠에 대한 공포로 인해 마지못해 나온 것일 테지.


동생은 내 우울증의 원인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동생이 선언한다.


“내가 나가서 살게.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어. “


’더 이상 이렇게 ‘라는 말의 원인이 나인지 아빠인지 혹은 둘 다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근데 그게 이제 와서 뭐가 중요하겠는가.

이전 04화 엄마가 집을 나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