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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본 Apr 11. 2024

추락일지 D-day

소풍을 가듯

이 목차에 다다라서 나는 내가 이 날의 기억을 여러 번 글로 기록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냥 붙여 넣기 해도 되는데 다시 그날의 기억을 복기하고 작성하는 이유는 기록과는 별개로 그날의 기억과 감정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학원에서 친해진 중국언니와 중국식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는 중이었다. 우리 둘 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짧은 영어로 서로에게 온 집중을 쏟아야만 대화가 가능했다. 그마저도 서로 레벨이 비슷하니까 영어로 대화하면서 자주 어울릴 수 있었다.


밥을 먹는 동안 모자란 영어로 하고 싶은 얘기도 해야지, 중국식 억양에 호주 악센트가 가득 섞인 중국인 언니의 영어를 알아들으랴 핸드폰이 울려도 메시지를 확인할 틈이 없었다. 대충 확인해 보니 이모한테 연락이 왔다. 이모가 한국에서 당장 급한 일을 요청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적당히 미루며 밥과 대화에 집중했다.


집에 갈 때가 되어서야 메시지를 확인했는데.


-바쁘니?


-아니! 이제 집에 가려고! 왜?


-이모 아는 사람이 급하게 한국에 와야 하는데 애들레이드에서 한국 오는 비행기표 가장 빠른 것 좀 찾아봐줘.


이모가 나 말고 애들레이드에 아는 사람이 있던가? 아니, 그냥 시드니도 아니고 애들레이드 이 촌구석 동네에 이모가 나 말고 또 아는 사람이 있다고?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비행기 티켓을 찾아보았다.


애들레이드에서 한국까지 가는 직항은 없었다. 시드니나 멜버른 같은 큰 도시를 한 번 경유해야만 했기 때문에 이모가 연락한 그 당시를 기준으로 한국에 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는 시드니와 대만을 두 번씩이나 경유해야 하는 아주 복잡한 여정의 비행만 남아있었다. 이거라도 알려줘야 하나… 이모에게 캡처해서 보내주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며 여유롭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걸음걸이가 아주 여유로웠던 것까지 기억난다. 그 당시에 내가 입고 있던 레깅스와 검은색 버켄스탁, 흰색 바람막이, 배낭 그리고 귀에 꽂은 이어폰. 그리고 살짝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별 신경 안 썼던 메시지.


-이모가 돈 보내줄 테니까 그거 타고 한국 바로 올래?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호주를 떠나기 전 아빠가 심장에 스텐실 시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났다. 사실 아빠와 사이가 멀어진 후로 제대로 대화하지 않은 채 한국을 떠나며 내내 마음에 걸렸던 일이었다. 아빠가 죽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아빠가 죽어도 아무렇지 않으면 어쩌지?


급속도로 불안해졌다. 이모를 다그치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무슨 일 생긴 건데? 엄마 괜찮아? 동생도 괜찮아?


-응 다 괜찮아.


-그럼 엄마랑 동생한테 연락해 본다?


-안 돼. 하지 마.


그때 난 하지 말라는 이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야, 이모가 갑자기 한국 오라는데...

-한국에 무슨 일 있니? 너 괜찮아? 엄마는 괜찮아?


동생은 늘 5분 이내로 답장하는 애였다. 답장이 없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답이 없는 동생을 뒤로하고 이모에게 엄마와 동생의 안부만을 물었다. 그러니까 난… 아빠나 막내의 죽음은 나에게 별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동시에 죽어도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했다. 다들 누군가를 죽음으로 떠나보내면서 사는 거니까. 나에게도 닥친 첫 번째 죽음이 내 미움의 대상인 아버지나 별 유대감 없던 막내 동생이라면 덤덤하게 맞이할 준비가 됐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답이 없는 그 애에게 여러 번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대충 훑어서 찾은 그 비행기표는 내가 타고 갈 티켓이 되었다. 고작 한 시간을 남겨두고 뭘 챙겨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 채로 대충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다. 급하게 티켓을 사고, 그 정신없는 와중에 뭘 챙겨 왔나 가방을 확인했다. 도대체 클렌징폼은 왜 챙긴 건지? 드라이 샴푸는 왜 챙겼을까. 그 와중에 비행기를 놓칠까 봐 불안했다. 공항에 도착한 즉시 체크인 카운터로 뛰어갔다. 본능적으로 나온 영어가 그렇게 유창하게 터져 나올 줄 몰랐다. 작은 스몰톡으로 시작하며 급하게 내가 탈 비행기에 대해 물어본 나는 그제야 내가 시드니를 경유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친절한 체크인 카운터 직원은 다행히 연착이 되어 시간 여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심적 여유가 있어 나온 스몰톡이 아니라, 정신이 나가있어서 뭐라도 주절거린 것이다.


시드니를 거쳐 대만을 경유했다. 코로나로 전 세계 마스크가 동나던 시점이었다. 호주에선 지나가던 동양인을 때렸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들레이드 작은 동네에선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없었기에 코로나가 유행한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여기는 대만이었다. 대만에 도착하자마자 나도 마스크를 꺼내 썼다. 엊그제 다녀온 애들레이드 카지노에 우한에서 온 중국 부부가 확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목이 간질거렸다. 몇 번 헛기침을 하는 나를 그 애가 영상 너머로 걱정하던 모습이 기억났다. 동생이랑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제인지 다시 확인했다. 여전히 읽지 않음. 핸드폰을 쥐고 사는 애가 이럴 리 없었다. 동생은 얼마 전 발가락이 부러져 입원하기도 했었고, 핸드폰을 정지시켜 놔서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곳에선 연락이 안 되니까. 그래, 그래서 아직 못 본 거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동시에 친구에게 동생과 연락이 안 됨을 불안하다고 남겼다. 본능이 서서히 아빠의 죽음에서 벗어났다. 나는 차라리 아빠였으면 아니, 아빠여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음을 고백한다.

내 두 번째 고해성사.


동생에게 답이 오지 않는 것이 더욱 불안해졌다. 왜 그 애가? 그 애는 아니겠지? 아닐 거야.

내 불안한 질문에 20년 지기 친구도 그렇게 말했다. 동생은 아닐 거야.

그런데 왜 답이 없지? 이럴 애가 아닌데.

무슨 일이 있으면 벌써 답장했을 텐데…

핸드폰을 쥐고 사는 앤 데…

그 생각만 되뇌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데이터를 켜고 이모에게 연락했다. 그때까지도 읽었다는 표시가 뜨지 않았다.

대전행 KTX 기차표를 캡처해서 보낸 이모의 메시지에 나는 또다시 마음속으로 큰 죄를 저질렀다. 대전에는 큰 이모랑 동생 밖에 안 사는데… 큰 이모가 연세가 많으시니까... 이모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큰 이모겠지. 그래, 동생일 리 없어.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줄이 긴 비행기 안에서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나가기 위해서 외쳤다. ‘가족이 죽었어요. 빨리 가야 해요. 가족이 위급해요. 먼저 나갈 수 있게 좀 해주세요.’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 가족이 누군지도 모르는 채로, 아빠인지, 그 애인지, 엄마인지 모르는 채로 외쳤다.


‘가족이 죽었어요. 빨리 가야 해요.’


대전까지 무슨 정신으로 도착했는지 모르겠다. 그때부터는 아주 강하게 동생을 잃었다는 본능적인 직감이 들었지만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아주 간절히 그 애가 아닌 다른 가족을 잃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기차역에 도착한 나를 데리러 이모들이 나와있었다. 엄마와 동생은 없었다. 내가 차 안에 타기까지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옆에 앉은 막내이모가 마지못해 그 애의 이름을 언급하는 순간 나는 참을 수 없이 분노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차 안 곳곳을 주먹으로 때리며 옆에 있지도 않은 엄마를 원망했다.


엄마는 뭐 했어? 엄마는 뭐 하느라 걔를 내버려 뒀어?


이모는 나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말렸다. 너 엄마를 원망하면 안 돼. 엄마 쓰러졌어. 난 진정할 수 없었다. 엄마 잘못이었다. 왜 그 애를 내버려 둬? 그리고 내 잘못이었다. 왜 걔를 두고 호주를 갔어? 내가 떠나면 어떡하냐고 엉엉 우는 애를 두고 왜 호주로 가버렸지 나는? 엄마는, 아빠는? 24시간을 내내 비행기 안에서 부정하던 사실을 맞닥뜨리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그리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 애와의 마지막 대화를 복기했다. 그럴 리 없는 아무 징조도 없던 대화였다. 아니,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와 그 애의 마지막 인사를.


너무 늦게 도착한 나머지 동생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관 속에 들어가 있는 동생을 관짝 밖에서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아무리 상상해봐도 눈을 감고 여기 네가 누워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엄마는 내내 무너져 내렸다. 아빠는 나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미워하던 아빠가 나를 끌어안는 순간에도 나는 그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또 다른 의미로 그 애를 원망했다. 내가 그토록 마주 하고 싶지 않았던 온 가족이 모이는 이 순간을 결국 네가 만들어냈다.


그 애는 유서를 썼다. 명확한 자살이었다. 그리고 이모가 출근한 몇 시간 뒤 아파트 17층에서 뛰어내렸다. 새벽기도를 가는 한 주민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했다. 이모가 경찰서에 가서 동생의 시신을 확인했다. 그 높은 높이에서 뛰어내리면서도 안경은 멀쩡했다.


유서는 아주 발랄하고 소풍을 떠나듯 가벼운 말투로 적혀있었다. 엄마와 나, 막내 그리고 아빠, 함께 살던 큰 이모에게 차례로 인사를 남겼다. 인사를 나눌 사람이 그게 다였다. 그리고 자신이 아주 오랫동안 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왔으며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기에 결정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더 길게 할 말도 없다는 듯 딱 몇 마디 할 말만 적어놓은 채 마지막 말을 남겼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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