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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본 Apr 02. 2024

날 것의 감정, 고백, 의도

부록. 이 글을 쓰면서



여기까지 동생에 대해 기억을 떠올리는 작업을 하면서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과연 이 작업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내 첫 의도대로 동생을 애도하는 일에 적합한 일일까. 아니면 괴로운 기억을 끄집어 올리면서 자학하는 무의미한 짓일까. 죽은 동생과의 추억을 기억해 내는 작업이 나를 더 괴롭게 할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업로드했던 글들을 삭제하거나 글쓰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한동안 작업을 멈추면서 다시 수면이 잠잠해지기까지 기다렸고, 이번에도 또다시 아, 지금이라면 쓸 수 있겠는걸? 하는 기분에 속아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묻어두고 있던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고, 이번에도 관두어야 하나 큰 고민을 하게 되었다. 결국 쓰지 않는 것이 맞는 것일까? 이번엔 이 의문을 해결하고 싶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동생이 대전에서 고립되어 있는 이야기를 쓰면서 조금 얼기설기 제대로 된 문장은 아니어도 그 순간의 동생에게 몰입했다. 그리고 그 애를 향한 깊은 그리움과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눈물이 흘렀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때의 나에게 동생을 왜 더 챙겨주지 못했냐고 질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이 어떤 노력을 했어도 그 과거를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도 인정했다. 그리고 글쓰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서도 감정은 지속됐다. 이틀정도 지속 된 것 같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내가 그 감정을 온전히 바라보고, 그 감정이 해소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표면적으로 동생의 상태를 안타까워하고 죄의식을 느껴서 바라보지 못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감정을 온전히 느꼈다. 그리고 나는 동생과의 기억과는 별개로 나 자신에게서 느껴지는 다양한 감정과 느낌들을 느끼는 데에 완전히 몰두했다. 그것은 외로움, 수치심,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 그리고 그 애정에 대한 결핍, 자유로움, 사랑을 느꼈다. 이 감정들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고 있었지만 아주 두꺼운 껍데기 안에 감추어져 있던 느낌이었다. 동생의 일로 인해 나에게 찾아온 감정을 온전히 느낀 것만으로 껍데기가 벗겨지고 아주 날것의 상태가 된 느낌이었다. 이런 상태를 느끼는 것이 새롭고 올바른 방향인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혹자는 글쓰기란 자신의 영혼과 나누는 대화라고도 표현한다. 내 영혼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기에 글을 쓰는 작업을 하면 할수록 영혼과의 대화가 더 쉬워질 것이라고 표현했다. (유투버_이연)


근 4년간을 글쓰기 작업을 하면서 생각으로 뭉쳐있던 것을 내뱉어 눈으로 보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글을 쓰면서도 나 자신에게 솔직하기 쉽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작업을 하려면 나는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내 내면의 부끄러운 감정들을 늘어놓아야 했다. 동생의 글을 작업하는 것이 그런 면에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동생은 내 죄의식과 후회의 감정에 매여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움을 갈무리하고 나는 내 영혼과의 대화를 통해 그 애를 향한 감정을 해소하기를 기대해 본다. 동생을 향한 감정만 해소하기 위함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나는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트라우마에 한 발짝씩 발 담고, 복잡하게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강한 자신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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