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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본 Apr 19. 2024

나는 너를 구원할 수 없다.

D-1



그 애가 죽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지만 이미 눈앞의 동생은 분골이 되어버렸다. 나는 무너져 내리는 엄마를 이모들을 감당할 정신이 없었다. 그저 마지막 메시지와 우리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를 복기할 뿐이었다.


마지막 메시지는 내가 장을 본 뒤 사진을 찍어 보낸 것.


-얼마어치 장 본 것 같아?

ㄴ한국으로 치면 한 5만 원?

-이거 다 샀는데 3만 원 밖에 안 돼. 진짜 싸지.


마지막 통화의 기억은 이러하다. 어학원에 다녀온 뒤 낮잠을 자려고 누워있었나, 아무튼 그 애가 전화를 건 그 시점에 나는 나른하고 졸렸다. 자고 일어나서 다시 전화를 걸겠다고 약속하고 그대로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에 동생이 말했다. 언니 건강하지?라고 물었고, 나는 단순히 요즘 코로나가 유행하니 조심하라는 대수롭지 않은 안부 인사로 넘겼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잘 지내라고 말하곤 끊었다.


-잘 지내!


내가 그 애를 너무 그리워하는 나머지 드라마틱하게 기억을 조작한 것이 아니라면 동생이 마지막으로 건넨 인사의 목소리에는 살짝 떨림이 섞여 있었다. 지금은 분명하게 기억이 나지만, 그땐 알 수 없었다.


나와 전화를 끊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나 보다. 엄마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이 내리 울기만 했다고 한다. 아마 그때가 제 죽음을 결정하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기 위해 전화를 했었던 것 같다. 나는 동생의 마지막 전화를 귀찮아했었다는 사실을 못 견디게 후회하고 있다. 내가 귀찮아하지 않고 오래오래 통화를 했었다면, 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봤었다면, 그 애에게 앞으로는 어떻게 살 건지, 미래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 우리 함께 어떤 미래를 살아갈지 계획하자고 졸랐다면 조금 더 망설이다가 끝끝내 죽음이라는 결정을 미룰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오랫동안 해왔다. 또 나는 오랫동안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했다. 나에게 주어졌던 자유가 성미의 고립과 외로움과 맞바꾼 것이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자꾸 과거로 시간을 돌려 내복만 입고 공중전화로 뛰쳐나가던 7살 무렵으로 돌아갔다. 그 애의 손을 꼭 잡고는 집 밖을 나오는 상상을 했다. 자매가 둘이 함께 사는 미래를 상상했다.


동생과의 마지막 전화를 기억해 내는 것이 이 글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정점의 감정을 끌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의심할 여지없이 상실의 슬픔을, 고통을 느낀다. 다른 어떤 기억보다 신체에 느껴지는 타격이 크다. 눈물이 차오르고, 목덜미가 뻣뻣해지며 어깨가 굳어진다. 숨을 헐떡이며 울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의 이 느낌과 감정을 지나치지 않기 위해 이어 나가고 있다. 만약 집에서 이 글을 적었다면 나는 글을 끝마치지 못했을 것 같다. 너무 괴로운 나머지 노트북을 닫아 버렸겠지. 차라리 카페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자리에 앉은 것이 다행이다. 내가 엉엉 울어도 아무도 알 수 없게끔. 물론 카페 주인은 이미 눈치를 챈 듯 휴지를 건넸지만.


그 순간의 동생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의 나는 그 애가 느꼈던 공포, 그리고 해방감, 외로움,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동생은 자주 그런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늙어서 어떻게 살지 그려지지 않는다고. 그려지지 않는 미래만큼 두려운 것이 없었겠지. 동생을 괴롭힌 것은 지금 나를 괴롭히는 놈과 같은 녀석이었다. 그려지지 않는 미래. 발목을 잡는 과거. 막막함. 외로움.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고립된 시간.


다시 한번 나 자신에 말해준다. 지금의 나를 나 자신 말고는 아무도 구원할 수 없는 것처럼. 그 애의 시간에서 나는 결코 너를 구원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후회할 일이 아니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그리고 동생을 기억하는 일은 정해진 시간이 없기에 길을 가다가, 잠을 자다가, 커피를 마시다가, 글을 쓰다가 그 어느 때에나 울어도 괜찮다고. 내가 그 애를 그리워하는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인다고 달라질 일은 없다. 마음껏 그리워하고 추억하고 기억하자고. 글쓰기를 이어 나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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