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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시카 Sep 02. 2024

나의 정원에 출몰하는 귀여운 빈대

                              - 애기땅빈대










참 느닷없는 소동이었습니다. 21세기 선진국을 표방하는 우리나라에 빈대라니요?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도 새롭게 ‘빈대발생 현황’이라는 게시판이 추가되어 2023년 11월부터의 현황이 꾸준히 게시되고 있었습니다. 한 동안의 호들갑이 잠잠해져서 인지 2024년 2월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보고서는 올라가지 않고 있네요. 그러더니만 8월 파리 올림픽으로 인해 다시 빈대의 국내 유입이 걱정됐는지 인천국제공항과 항공기의 방역이 강화된다는 뉴스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빈대는 우리나라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해외여행이 잦아지면서 유입되었다고 하니 세계화 시대의 해프닝 같기도 하고, 자칭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국가들의 치부를 보는 듯하여 우습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선진국(?)인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는 나는 아직 빈대를 본 적은 없습니다. 빈대는 속담 속에나 있었지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거나 ‘빈대 붙지 마!’, ‘빈대의 간을 내먹을 놈!‘의 그 빈대... 이를테면 내게는 전설 속 그 빈대입니다.  



크랙 정원에는 빈대가 자주 출몰합니다. 땅빈대, 애기땅빈대, 큰땅빈대... 대부분이 잎의 모양 등이 빈대(때론, 피를 듬뿍 빤 빈대)의 모습과 비슷하여 이런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니 우리 조상님들은 빈대와 매우 가까이 지내셨나 봅니다. 식물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 같네요.



나의 정원에서 주로 발견되는 꽃은 ‘애기땅빈대’입니다.  

애기땅빈대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인데 이제는 우리나라 전역에 퍼져 자라고 있습니다. 땅바닥을 기는 애기땅빈대는 맨땅이 드러나서 햇볕이 잘 드는 곳을 좋아하는데, 크랙 정원의 많은 식물들이 그런 것처럼 비옥한 땅에서 다른 식물들과 경쟁하는 것이 힘겨워서 밟히고 뽑히더라도 차라리 도시의 시멘트 틈새가 더 낫다고 판단했나 봅니다. 뒤늦게 우리 생태계에 도착한 귀화식물임을 고려한다면 더욱 쉽게 이해가 되지요. 줄기와 가지가 방석모양으로 뻗어가며 자라는 모습이 특이합니다. (2번 사진) 잎의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고, 잎 가운데에는 갈색 반점이 있어서 친척인 ‘땅빈대’와 구분이 됩니다만 내 경험으로는 무늬가 없는 아이도 자주 눈에 띕니다. 줄기나 잎에 상처가 나면 흰 즙이 흘러나는데 약한 독성이 있다고 하네요.  



애기땅빈대의 꽃은 참으로 특이한 모양입니다. 이런 꽃차례를 ‘등잔모양꽃차례(배상꽃차례)’라고 하는데, 컵 모양의 총포 안에 한 개의 암꽃과 여러 개의 수꽃이 들어있습니다.             

                             <배상꽃차례의 도식화 - 국립수목원의 자료에서 가져왔습니다.> 


                                                   <확대해서 본 애기땅빈대의 꽃> 



사실은 나도 이 애기땅빈대의 사진을 찍고 들여다볼 때마다 그 독특한 생김새 때문에 도무지 꽃잎은 어디에 있고 어느 부분이 암술과 수술인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내친김에 여러 자료를 찾고 공부를 해봅니다. 


각각의 꽃은 꿀샘과 그 꿀샘을 둘러싸고 있는 마치 꽃잎처럼 보이는 흰색의 꿀샘덩이, 그리고 암술(씨방과 함께 암꽃을 이룸)과 수술(수술 하나가 하나의 수꽃임)로 되어 있습니다. 이 꿀샘에서 달콤한 분비물을 내면 개미들이 찾아와 분주히 돌아다니면서 꽃가루받이를 돕는다고 합니다. 씨방과 암술은 한 세트로 되어 있어서 얼핏 보면 마치 씨방에서 암술대가 솟아 나온 것 같기도 합니다. 


정리해 본다면 컵 모양의 총포 안에 1개의 수술로 된 수꽃 여러 개, 씨방과 일체형인 암꽃 1개, 그리고 꿀샘과 꿀샘의 부속체가 옹기종기 사이도 좋게 붙어 있는 셈이네요. 이렇게 곤충을 유혹하는 꽃잎 따위는 싹 없애버리고 꼭 필요한 암술과 수술만을 남겼습니다. 대신 꿀샘을 만들고 그 꿀샘의 표지판 격인 부속체를 꽃잎처럼 세워 개미들을 불러들입니다. 효율적이고 깔끔합니다. 소중한 암술과 수술도 보호하면서 외부로부터 들어와 꽃가루받이를 도와야 하는 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부속 장치까지 갖추고 있으니 번식에는 큰 문제가 없어서 도시의 길마다 왕성하게 벋어나가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사족이 되겠지만 오른쪽 사진을 보면 암술대가 솟아 나온 열매에도 털이 많이 보이는데, 비슷한 식물인 땅빈대의 열매에는 털이 없어서 이 점도 애기땅빈대의 특징이 됩니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으나 나는 꽃을 볼 때면 그 구조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고, 그들의 구조 하나하나를 알아가는 것이 즐겁습니다. 어떤 목표(번식)를 설정하면 자신의 몸 구조를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최적화시켜 가는 모습이야말로 ‘진화’의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입니다. 알고 보면 모든 생명체가 각기 자신의 생존과 번식에 가장 적합한 구조로 진화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식물은 스스로 광합성을 하는 독립영양체이기에 그 구조도 상대적으로 간단하고 효율적입니다. 나같이 취미로 식물 공부하는 사람도 이해하기가 비교적 쉽다는 것이죠. 


생명체가 일단 자신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다른 생명체에게 의지해야 하는 순간 그 구조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식물들을 채집하거나 다른 동물들을 잡는 데 필요한 기관 (손, 발, 근육, 뇌, 신경 체계, 운동 체계, 눈과 근육의 협응 체계 등등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가 벅차네요!), 먹기 위한 구조(입), 소화 기관, 배설 기관 등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단순한 것이 강하다.’는 것을요. 단순한 것이 고장도 덜 나고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잘 견딥니다. 그리고 한 가지 기능에 집중할 수 있어서 효율적이기도 하고요.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복잡한 구조로 구성된 인간의 몸이 안쓰러울 정도입니다. 독립영양체가 아니기 때문에 이 복잡성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겠지요. 똑같은 목표, 즉 생존과 번식을 위해 이렇게까지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어 장착하고 있다는 것이 진정 ‘발전’또는 ‘진보’의 참 의미일까요? 오늘도 이곳저곳에서 고장 신호를 보내고 있는 내 몸을 보며 생각해 본 것입니다. 나도 광합성을 할 수 있었다면 삶은 얼마나 단순하고 가벼울 수 있었을까요?  



이 귀여운 꽃이 빈대라는 이름을 가졌다니 꽃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억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빈대를 닮았다는 잎의 모양 이외에 빈대와 이 꽃의 비슷한 점은 무엇일까를 '상상'해 봅니다. 


빈대는 비록 다른 생명체에 빌붙어 그 숙주의 양분을 얻어 살아가기는 하지만 바이러스와는 달리 진핵세포를 가진 무척추동물입니다. 기생충은 다른 동물에 비하면 그 몸의 구조가 매우 단순하다고 합니다. 그럼 기생충들은 진화가 덜 된 하등한 동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들 가운데서도 사기꾼이라는 범주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기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작업을 걸기 전 치밀한 준비를 합니다. 대상의 재산상태, 심리적 취약점, 생활 습관 등등. 그리고 노련하고도 물 셀 틈 없는 작전으로 자신들의 목표를 달성합니다. 인간은 원래 공동체에서 집단생활을 하도록 진화된 존재이기에 이 사기꾼, 거짓말쟁이, 빈대 붙는 사람... 을 극히 싫어합니다. 그들은 일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탐하므로 결과적으로 공동체에 그리고 그 안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알아보고 멀리하기 위한 본능적 감각도 발달시켰지요. 그러나 사기꾼들의 진화 속도와 기술은 워낙 뛰어나서 박멸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아직도 인간 집단 안에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들이 번식에도 성공적이었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기생충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기생충을 굉장히 진화한 생물로 봅니다. 특정 종에 기생하려면 자신의 몸 구조는 최대로 단순하게 만들면서 숙주의 해부학적 구조와 내분비계, 면역계, 생식 등에 맞춰 진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선택과 집중... 공부와 연구, 기술 연마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본다면 동물 중에서는 기생충이야말로 그 단순함과 효율성의 측면에서 식물들과 가장 비슷한 집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물론 애기땅빈대는 엄연히 스스로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 쓰는 독립체이고 빈대는 그야말로 다른 생명체에게 빈대 붙는 최악의 포식자이지요.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요?

목표에 대한 고도의 집중과 구조의 단순화... 애기땅빈대와 빈대의 공통점을 찾다 보니 상상이 제멋대로 자라나 이상한 곳에 닿았네요. 말이 되기는 하는 건지, 정말 터무니없는 상상이지요?



멋진 이름을 달아주지 못해 애기땅빈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식물은 여전히 내 크랙 정원을 다양한 모양으로 장식해 주고 있습니다. 그 신기한 구조, 그리고 때로는 꽃이 내게 보내는 암호인가 싶을 만큼 자유롭게 벋어나가는 그 모습은 상형 문자를 닮은 모양새라 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길에 쪼그리고 앉아 그 암호를 풀어보려 머리를 써봅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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