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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우시카 Sep 05. 2024

그 붉은 잎사귀, 당신을 향한 단심(丹心)이 아니었네!

                                - 괭이밥













나는 이 꽃이 원예종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름 또한 ‘사랑초’라고 알고 있었고요. 집안에서 키우던 난초 화분 중간에 난 조그만 구멍 사이로 이 아이가 자라나고 끝내 꽃을 피우던 그날 이후 이 꽃은 내게는 사랑초였습니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습니까 심장을 닮은 저 잎사귀를 보는 순간 심장이 털컥 내려앉는 것을 보더라도 틀림없이 이 꽃의 이름은 사랑초입니다. 그러나 세상사는 다 그렇게 내가 보고 느끼는 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닌 가 봅니다. 이 꽃의 정식 명칭이 엉뚱하게도 ‘괭이밥’이었음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괭이라면 고양이? 네, 고양이의 밥이라는 이름이네요. 고양이가 이 꽃을 좋아해서 우리네 밥처럼 즐겨 먹는 것은 아니지만 알려진 바에 의하면 고양이가 속이 좋지 않을 때 이 풀을 먹는다고 하네요. 똘똘한 고양이... 배가 몹시 아프면 이 시큼한 풀을 먹어 복통을 줄이거나 또는 속에 든 것을 토해내기도 한다 하니, 고양이마저도 나보다는 나은 식물학자인가 봅니다. 실제로 괭이밥의 어여쁜 잎사귀를 살짝 깨물면 시큼한 맛이 납니다. 이 시큼한 맛의 원인은 ‘수산(蓚酸)'(옥살산)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속명도 옥살리스(Oxalis), '신맛이 나는, 산(酸)이 많은'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나왔다고 하네요. 


위에서도 잠시 말했지만 이 식물의 매력은 그 잎의 모양인 듯합니다. 펼쳐진 잎도 사랑스럽고, 접힌 잎조차도 어여쁩니다. 도시에 사는 내 눈에는 이렇게 그저 사랑스럽고 귀여운 식물이지만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는 꽤나 성가신 잡초인가 봅니다. 소위 잡초 특유의 ‘뽑아도 뽑아도 다시 나오는’ 그런 식물... 괭이밥의 이러한 특성은 씨앗의 ‘휴면’ 전략에 힘입은 바 큽니다.


1차로 선발된 씨앗 선수들이 먼저 싹을 틔우고 자라납니다. 이들이 자라나면서 햇빛을 가리게 되면 땅 속에서 대기하던 2, 3차 선수들은 ‘아직은 나갈 때가 아님’을 알고 계속 잠을 잡니다. 그러나 잘 자라던 괭이밥이 사람들의 손에 의해 뽑혀 나가고, 덕분에 햇빛이 땅 위에 내려 쬐이게 되면 드디어 잠자던 땅 속의 공주님들이 출동합니다. 2차 싹틔우기 작전이 전개되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햇빛은 이들을 잠에서 깨우고 싹을 틔울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왕자님의 키스’가 되는 셈이지요. 이쯤 되면 ‘왜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또 나오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뽑으면 뽑을수록 왜 더욱 싱싱한 녀석들이 나타나는가?’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대기 선수의 명단은 길고도 깁니다. 왜냐하면 괭이밥은 씨앗을 풍성하게 만들어 내는 식물이니까요. 위의 사진(1, 2, 3번 사진)에서도 얼핏 얼핏 보이지만 괭이밥의 열매는 6각 기둥 모양입니다. 이 열매가 익으면 열매의 껍질이 툭툭 터지면서 씨들이 튀어나오는 것이지요. 마치 봉선화 씨앗처럼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어디서나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식물의 사촌들 격에는 애기괭이밥과 큰괭이밥, 자주괭이밥 등이 있는데 하나같이 미인, 미남들이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예쁜 꽃은 함께 보아야 더욱 예쁩니다!  

       



'큰괭이밥'입니다. 큰괭이밥은 애기괭이밥에 비해 상대적으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가장 큰 특징은 꽃잎에 새겨진 붉디붉은 선입니다. 어떤 꽃은 유난히 이 선이 진하여 마치 눈에 핏발이 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곤충을 부르는 신호등이지요. 그리고 잎이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끝을 마치 칼로 쑥 자른 듯 뭉툭한 모양이라는 점도 특징입니다.    

         



'애기괭이밥'입니다. 높은 산에서 자라기 때문에 만나기가 쉽지는 않지만 이름처럼 작고 사랑스러운 꽃입니다. 큰괭이밥만큼 노골적인 것은 아니지만 꽃잎에 가느다란 붉은 선이 그어져 있고 한가운데쯤엔 노르스름한 색도 둘러져 있어서 찾아오는 곤충들에게 먹이가 어느 곳에 있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이 꽃은 햇빛이 나와야 꽃잎과 잎이 벌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날이 흐리거나 시간이 맞지 않으면 먼 길을 달려간 보람이 없어질 수도 있답니다.

이밖에도 자주괭이밥, 붉은자주괭이밥 등의 친척들이 있지만 더 이상의 소개는 하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오늘의 주인공의 크랙 정원의 괭이밥이니까요.  



최근 길을 걸으며 괭이밥을 보다 보면 4번의 사진처럼 빨갛게 단풍이 든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파트의 담장 밑 좁은 공간에는 이처럼 빨간색 잎을 단 괭이밥들이 제법 무성하게 무리 지어 피어있기도 합니다. 그저 날이 무덥다 보니 단풍이 일찍 들었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좀 더 복잡한 사연이 있다고 합니다. 


괭이밥의 잎은 당연히 녹색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최근 녹색에서 빨간색까지 다양한 잎 색깔을 가진 괭이밥이 나타나 전 세계의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붉은 잎을 가진 괭이밥은 일종의 변종으로 보이는데, 이 변종은 일반적으로 도시 지역의 지표면 근처에서 자라고 농지나 녹지 공간에서는 거의 자라지 않는다고 하네요. 내가 본 바로도 크랙 정원의 괭이밥의 잎은 붉은색을 띠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상대적으로 흙이 넉넉한 장소에서 자라는 괭이밥들의 잎은 녹색이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잎에 있는 붉은 색소인 '안토시아닌'은 빛을 차단하고 항산화 물질을 형성해 열과 빛으로 인한 손상을 완화시킨다고 합니다. 즉 이러한 잎의 색상 변화는 식물이 환경 스트레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진화적 적응의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이지요. 


주로 벽돌, 돌, 아스팔트 및 콘크리트를 사용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도시환경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바로 증발해 버리기 때문에 열이 잘 식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 ‘도시 열섬', 즉 표면 온도가 높아진 지역을 만들어냅니다. 이처럼 지표면에서 내뿜는 열은 그 위에 살고 있는 식물들의 생리를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실험을 해 본 결과, 붉은 잎을 가진 변종 괭이밥은 높은 온도에서 우수한 성장률과 광합성 효율을 보이는 반면, 녹색 잎 괭이밥은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잘 자랐다고 하네요. 인간에 의한 환경 변화가 식물의 진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힘, 정말 놀랍습니다. 이제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어떻게 인간이라는 종과 같이 살며 그들이 만들어낸 환경에 적응하여 진화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생존과 멸종을 가르는 중요한 선택압이 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아프리카 코끼리의 상아’가 생각납니다.

1977∼1992년 아프리카의 모잠비크에서는 유혈 낭자한 내전이 벌어집니다. 무장반군은 무기 구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 기간 중에 코끼리를 잡아 상아를 팔았는데 무려 전체 코끼리의 약 90%가 학살당하는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무자비한 밀렵이 성행하자 상아(엄니) 없이 태어나는 코끼리가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무자비한 살육의 결과는 코끼리 유전자를 변화시키고, 상아가 없는 코끼리의 증가는 식물 종 구성 등 다른 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아는 코끼리가 땅속의 먹을 것을 파내고 나무껍질을 벗기는 등 다목적 도구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만 더 놀라고 갑시다!  이 극적은 진화는 수백, 수천 년에 걸친 자연선택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불과 15년이라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는 사실이지요. 인간의 힘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광폭한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행동은 생태계 파괴에 방아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방아쇠를 당기는 행동 자체는 작고 쉽습니다. 그러나 날아간 총알이 사람을 죽이듯, 그 작은 행위도 일파만파 커지며 폭풍과도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지요. 생태계는 그물처럼 촘촘하게 짜여있어서 어느 한 부분이 망가진다 해도 스스로를 복원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망가짐이 임계 상황을 넘게 되면 올이 풀려 스타킹 전체가 망가지듯 생태계 전체가 돌이킬 수 없는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자연선택과 ’ 성(性) 선택‘이라는 진화의 원동력은 ’ 인간 선택‘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진정 우리는 인류세(Anthropocene)에 살고 있습니다.  



붉은 잎의 괭이밥, 그 어여쁜 붉은색 잎은 꽃가루받이를 해 줄 곤충을 유혹하는 수단도 아니고 다른 생명체에게 던지는 연대와 사랑의 징표도 아닙니다. 오직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그 작은 생명체의 고뇌와 사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종, 인류세의 새로운 종...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괭이밥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오늘도 길가에서 노란 꽃과 사랑스러운 잎사귀로 우리들의 눈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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