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타게 보고 싶었던 그 꽃...

- 쇠비름

by 나우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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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지인에게서 얻은 다육이들이 알뜰살뜰 돌 본 남편 덕분에 참으로 멋진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그동안 쳐다보는 둥 마는 둥 시큰둥하게 지냈던 나는 이사를 앞두고 베란다를 정리하면서 훌쩍 자란 이들의 모습에 크게 감탄했고, 새 집으로 와서는 화분 몇몇 개를 거실과 침실에 두고 늘 보고 있답니다. 반짝이는 잎과 길게 늘어진 튼실한 줄기, 틈만 나면 흙을 찾아 뿌리를 내리려는 듯 마디마다 가늘게 달리는 수염... 이들의 멋진 모습은 건조한 아파트 생활에서 내가 즐길 수 있는 작은 기쁨, 참으로 고마운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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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 보도블록의 틈새를 비집고 나와 자라난 쇠비름을 봅니다. 작지만 두툼한 잎의 모양을 보면 영락없는 다육이입니다. 불그스름한 줄기가 잎과 잘 어울려 나름 화려한 외모를 자랑합니다. 크랙 정원 이곳저곳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어떤 식물들보다 튼튼하고 생기 있는 모습이건만 이 아이들의 꽃을 보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늘 두리번거리며 꽃을 찾고 또 찾아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드디어 저토록 작고 노란 꽃을 피운 아이를 만나게 되었지요. 아주 우연한 만남이었기에 급한 김에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찍었는데, 그래서인지 핀트도 맞질 않고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워낙 흔한 식물이니 또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오겠지 싶어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는데, 그 후로 다시 보지 못해서 속도 상하고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꽃을 보기가 왜 이리 어려운 걸까? 세상의 모든 일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 이 식물의 꽃은 6월부터 가을까지 계속 피어나기는 하는데 꽃이 피어있는 시간이 아주 잠깐 (9시~11시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낮 12시~2시 사이라고 하는 자료도 있습니다.)이기 때문에 꽃을 보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하네요. 한낮의 햇살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을 보니 이 아이의 고향이 어디인지 상상이 됩니다.



며칠간 남녘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아직 그 뜨거웠던 여름의 기억이 다 사라지지도 않았건만 우리네 들녘은 조용하게 황금빛으로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직 다 익지 않은 벼, 이미 익어 수확을 앞둔 벼 그리고 몸이 잰 농부님들께서 이미 벼를 거둬들여 그 밑동만 남은 논... 그 멋진 가을 들녘, 황금색의 그러데이션이 보는 이의 눈을 행복하게 합니다. 해남의 한 찻집 사랑채에서 바라보는 풍경 속에는 낮은 돌담, 그 위로 펼쳐진 논,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의 모습이 가득합니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평온해지고 눈도 고요해지고... 차의 맛은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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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집의 담을 돌아 나오다가 쇠비름을 발견합니다. 쪼그리고 앉아보았지만 비가 내린 날의 오후, 꽃이 피어있을 턱이 없습니다.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후배님이 어깨 뒤로 살펴보다가 이 녀석 질기고 질긴 잡초라 말씀하시네요. 뽑아서 던져 놓아도 쉽사리 죽지 않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요. ‘아, 그렇구나! 어린아이 같이 귀여운 모습의 이 식물이 그런 강인함을 가지고 있었구나!’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실제로 농부님들은 이 쇠비름을 아주 싫어한다고 합니다. 뿌리까지 뽑아 밭둑에 내던져도 비만 조금 내리면 살아나 다시 뿌리를 내리는데다가 한 여름의 폭염 아래에서도 죽지 않고, 심지어는 제초제에도 잘 견딘다고 합니다. 이처럼 쇠비름은 여름철의 뜨거운 햇볕을 좋아하고 한 여름의 건조함도 잘 견디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형태의 사막’인 도시에서도 그렇게 잘 자라나는 것이겠지요.


왜 쇠비름을 비롯한 다육이들은 강한 햇살과 건조함에도 그토록 강한가? 잊힌 듯 가물가물한, 학교에서 배웠던 식물학의 지식을 불러와 봅니다. 광합성의 한 형태인 ‘CAM 방식’이 그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식물들은 낮에 광합성을 합니다. 광합성의 조건이 이산화탄소, 햇빛, 그리고 물임을 생각해 보면 왜 낮에 광합성을 해야 하는지는 이해하기 쉽습니다. 바로 햇빛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위해 잎은 기공을 엽니다. 그러다 보니 수분이 기공을 통해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건조한 기후에서 살아가는 식물들에게 수분의 손실이란 너무도 무서운 재앙입니다. 이러한 재앙을 피하기 위해 이들 식물들이 선택한 전략이 바로 CAM 방식이라는 것이지요. 즉 온도가 낮아 수분 손실이 비교적 적은 밤에 기공을 열어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인 후 이를 저장했다가 낮에 열심히 광합성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 저장이 가능한 이산화탄소의 양이 적기 때문에 광합성 양도 또한 적어서 생장 속도는 느리겠지요. 밤과 낮의 기공 개폐 시간을 뒤바꾼 것이 핵심인데 별 것이 아닌 듯하지만 사실은 조용한 혁명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은, 대단한 발상의 전환입니다.

CAM이라는 용어는 우리말로 ‘돌나물형 유기산 대사’로 번역됩니다. 돌나물과에 속하는 식물들에서 흔히 발견되기 때문이지요. CAM 방식은 물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적응이며 일반적으로 건조한 조건에서 자라는 식물에게서 발견됩니다. 도시 환경은 대체로 매우 건조합니다. 그리고 표면의 피복상태도 내리쬐는 태양열을 막아주거나, 수분을 오래 붙잡아 두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CAM 방식으로 광합성을 하는 돌나물 유형의 식물들에게 도시 환경은 오히려 경쟁자를 최소로 만들어주는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쇠비름도 그런 식물들 중 하나이고요.

0P6A4281(인).jpg 도시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돌나물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사실 쇠비름은 단순히 CAM 방식을 채택한 식물이 아니라 환경에 맞춰 광합성 방식을 바꾸는 천재적인 전략가입니다. 보통 식물은 한 가지 광합성 경로만 사용하지만, 쇠비름은 주변 환경이 얼마나 가혹한가에 따라 모드를 전환합니다. 기본적으로 쇠비름은 날씨가 덥고 빛이 강할 때에는 이산화탄소를 아주 효율적으로 꽉 잡아서 영양분을 만듭니다. 덕분에 남들이 더위에 지쳐 성장을 멈출 때, 쇠비름은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쑥쑥 자라지요.(C4 방식) 그러나 물이 극도로 부족해지면 비상 생존 모드인 CAM 방식을 도입합니다. 즉 쇠비름은 평소에는 C4로 빠르게 자라고, 가물면 CAM으로 버티는 영리한 생존 전략가입니다. 위에서 쇠비름은 뿌리째 뽑아 뙤약볕에 던져두어도 며칠 동안 죽지 않고 버틴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 CAM 모드로 전환해 수분 손실을 막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쇠비름은 전 세계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는 잡초의 왕이 된 것이지요.

사연이야 어떻든 뜨겁고 길었던 올해 여름, 식물들에게도 역시 힘들었을 시간을 생각해 보면 크랙 정원의 한 귀퉁이에서는 그래도 그런 환경에 잘 적응한 식물들이 소리 없이 피어나 회색의 도시를 조금이나마 푸르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만 합니다.


쇠비름의 종소명 ‘oleracea’는 ‘식용 채소’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지금이야 끈질긴 잡초라고 여겨지지만 식용으로서도 널리 이용되어 오지 않았을까 짐작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실제로 인류의 농사가 시작되기 전 구석기시대의 어느 동굴에서 쇠비름의 씨앗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쇠비름은 인류가 일찍부터 먹어왔던 식물 중 하나임이 증명된 셈입니다. 꾸준히 먹으면 오래 산다고 해서 장명채(長命菜)라고 불리기도 한다는데,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이 식물에는 ‘오메가 3’라는 필수지방산을 비롯하여 다양한 약성 물질이 들어있어 현대인들의 대표적인 질병인 치매, 동맥경화, 당뇨병 예방에 효과가 있음도 입증됐다고 합니다.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은 ‘이명래 고약’하면 잊히지 않는 기억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듯합니다. 그 시절 흔했던 종기가 나면 시커먼 이명래 고약을 종기 위에 붙여서 종기 속 깊숙이 자리 잡은 고름의 뿌리를 없애고 새 살이 돋아나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 약은 1906년에 처음으로 등장하여 1980년대까지 종기 치료제로 널리 사용되었지만, 2001년에 생산이 중단되었는데 2007년부터는 다시 생산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00년이 넘게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유서 깊은 약이지요.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약국에 들러 하나를 사다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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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약, 겉모양은 조금 달라졌네요.

포장 뒷면의 성분표(아래쪽 사진)를 보면 식물 이름들이 여럿 나열되어 있는데 그중 ‘마치현’(馬齒莧)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이 마치현이 바로 쇠비름입니다. 잎의 모양이 말의 이빨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네요. 말의 이빨을 자세히 본 적이 없으니 그저 상상으로 그려볼 뿐입니다. 이처럼 쇠비름이 고약의 원료로 사용된 까닭은 열을 내리고 해독 작용을 하며 종기를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 하니 참으로 쓸모가 많은 식물입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식물들 항목에서는 빼놓지 않고 나오는 정보가 바로 그 식물을 먹는 법과 약으로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들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구석기 수렵채집의 감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거나 건강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졌을 때 대부분의 환자들이 현대식 병원을 찾기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산과 들, 그리고 그곳에 피어난 식물들을 찾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랜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지요. 유전자 속에 간직된 기억이야말로 삶과 건강에 대한 우리들 지식의 근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번 여행에서도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이론에 몰두하며 학구적 열정을 불태우던 길동무들이, 잠시 고개를 들자 눈에 들어오는 팽나무 열매를 따 먹으며 아이처럼 즐거워하던 모습입니다. 또 조금씩 익어가는 ‘구실잣밤나무’의 작은 열매를 까서 서로의 손바닥에 나누어 주며 복잡한 강의 내용을 잠시 잊던 그 순간들 말입니다.


그 풍경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구석기시대의 여인들’이라고요. 한때 우리의 조상들이 그토록 풍성하게 알고 있었을, 그러나 지금은 잊힌 식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정답게 불러주고 싶습니다. 내 어머니의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의 할머니들이 초록의 생명들을 보며 느꼈을 그 원초적인 즐거움과 안도감을 저 또한 오롯이 느껴보고 싶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어 애를 태우게 하던 이 작은 꽃, 귀하지 않아 쉽게 볼 수 있다고 믿었던 이 꽃도 그 본성을 바로 알지 못했기에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꽃은 그 어떤 귀한 꽃 못지않게 내 마음을 안타깝게 했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찮게 여길지라도 실은 이처럼 큰 쓸모를 가지고 있음도 알게 되었으니 내가 가진 세상이 또 이만큼 넓어진 느낌입니다.

이제는 그 열매를 찾아보아야 할 때임을 알면서도 오늘도 길에 나서면 나는 습관처럼 두리번거리며 이 꽃을 찾고 또 찾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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