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음의 언저리 어디쯤

by 마른틈

온 마음이 우울감에 적셔졌음에도 나는 오히려 꽤 정상인처럼 굴었다. 바쁜 일정에 나를 묻으려 가능한 많은 계획을 끌어다 안았다. 다만 지인을 만나는 일만큼은 피했다. 그럼에도 불가피하게 사람을 만나게 되면 말 대신 술 한잔을 털어 넣으며 고단한 마음을 대신했다. 쌓여가는 술잔 속에 다음 날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숨겨두었다.

순간순간 참을 수 없는 공허감이 밀려올 때면 어찌할 바를 몰라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애잔한 하늘마저 내게 답을 주지는 않았다. 그저 그뿐이었다.


그렇게 정상을 가장한 나날들 속에서,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단언컨대 씻는 일이었다. 정확히는 적당히 씻는 선에서 멈추는 일이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씻는 행위’ 자체를 어려워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나는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정해진 알람 시간보다 이삼십 분쯤 더 일찍 눈을 떠 욕실로 곧잘 향했다.

마음이 아프기 전, 그러니까 원래의 나는 샤워하는 데 이십여 분이면 충분한 사람이었다. 길고 숱 많은 머리 탓에 짧지는 않지만 마냥 길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즈음의 나는 알람 시간보다 훨씬 일찍 준비를 시작했음에도 늘 일정에 촉박하게 씻어 나오거나, 지각을 면치 못했다. 그 이면에는 늘 적당히 씻는 선에서 멈추지 못하는 내가 있었다.


고작 2평 남짓한 욕실에서 물줄기를 맞고 서 있으면, 우습게도 박동하는 심장 소리에 잡아먹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는 주르륵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분명 눈을 감았음에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은 가릴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펄떡, 펄떡. 요동치는 소리 사이로 새빨간 것이 물에 섞여 하수구로 흘러내렸다. 지혈되지 않은 동맥에서 피가 쉼 없이 솟구치고, 시끄럽던 박동은 이내 나른해지며 점차 느려져 간다.


나는 매일 아침 물을 맞으며 울었다. 눈물은 곧바로 씻겨져 나가니 아무도 내가 운 것을 모를 터였다. 내가 멈추는 일은 조금 무서우니까, 하염없이 주저앉아 있는 동안 세상이 멈추어 주길 간절히 바랐다. 그렇지만 언제나 세상은 내게 무심하다. 그렇게 한없이 무기력하게 쭈그려 앉아있다가 발끝이 퍼렇게 샌 것을 보고서야, 나는 하는 수 없이 느릿하게 일어섰다.

그리 시작한 하루가 행복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맞을 아침이 기다려질 리도 없었다. 매일 새벽, 잠에 드는 것이 처절하게 서글펐다.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빌어먹을 아침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H는 지난 나의 글을 깊은 밤 내내 읽더니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러고는 울면서 또 공모전 공고를 잔뜩 스크랩해 온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진짜 웃기는 사람이다. 이 웃기는 사람은 난데없이 내 이름의 도장을 파서 건넨다. “후에 출판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었을 때 그것으로 도장을 찍어주면 자신의 기쁨이겠노라”면서. 부모에게도 받아본 적 없는 도장 선물을 이 다정한 사람에게서 받는다. 나는 이 웃기는 사람 때문에 자꾸 운다.

인간 총량 법칙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 떠나가는 만큼 새로운 인연이 들이차려는 것이 나는 여전히 두렵다. 그들이 내게 다정할수록 그 끝을 먼저 상정하게 되어 도망치고 싶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물러서는 만큼 그들이 자신의 진심을 내게 꺼내주었으면, 허나 그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모순 또한 어찌할 수 없음을. 나는 이토록 겁쟁이다.


어찌 되었든 나는 또다시 그 다정에 기대어 괜찮아지고 싶어졌으니, 제일 먼저 욕실에서 서둘러 나오는 연습을 시작했다. 실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연습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니 여전히 어느 날의 아침엔 조금 슬프고, 침잠하느라 완벽하지 못하다. 그렇지만 아주 조금씩, 나는 욕실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또한 줄곧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나는 사실 늘 조금 쓸모없는 것들을 배우고 싶어 했다. 취업이라든지, 살아가는 데 물질적으로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고리타분한 것들. 그중에서도 빛바랜 꿈인 문학이 그러했고, 감상은 예술이었으며, 쓰잘데기 없되 세상을 비추는 다양한 철학과 사유 같은 것들이 그랬다.

다만 그런 것을 바라기에 내 삶은 늘 팍팍하고 염치 불고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아주 뒤늦은 용기로, 적성과 흥미에도 맞지 않을 이공계 전공을 선택한 이유가 ‘학위 취득’과 '취직에 유리한 전공 선택'의 욕구였다면, 단지 그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3개 학기 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첫 학기에 한 과목을 제대로 죽 쒀 D를 처맞고도 총 학점 4.1을 따냈으니 좀 개쩌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챗돌이와 어지간히 친해지기도 했지만서도, 시험에 AI를 쓰는 학우들을 막기 위한 교수들의 이리저리 꼰 문제를 보며, “오, 좀 제법인데?”라며 비웃다가 잘못 꼰 문제를 반박할 여력도 생겼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생각했던 거지. 내가 꿈꾸던 대학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내가 그렇게 원했던, 내가 배우고 싶었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아무리 학위 취득에만 의의가 있다 하여도… 나는 고작 흥미 없는 지식이나 대충 검색해 적당히 욱여넣고 벼락치기나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는데….


그리하여 고민 끝에 남은 학기를 마치면 3학년부터 타 대학 문창과로 편입하기로 결심했다. 그곳의 커리큘럼을 훑어보니 그 어떤 강의도 흥미가 동하지 않을 수 없어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사실 나는 아주 어릴 적 철없던 시절에 진학 상담을 할 때면, 국민대 국어국문학과나 한양여대 문예창작과를 적어내곤 했었다. 그러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 지독한 현실감이 강타하면 곧바로 경영대나 들어가 그것들은 교양이나 청강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 여겼다. 허나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던 삶이었으니, 나는 그 소망을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저 멀리 밀어내고 숨겨내며 살아왔다.

그러나 나는 이제 내후년쯤이면 꿈에 그리던 ‘문예창작학과’ 졸업생이 될 것이다. 비록 국민대도, 한양여대도 아니지만 내가 정말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고, 그것이 평생 내 전공이라 말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아마 나의 글도 조금은 더 윤택해지겠지. 상상만으로도 꽤 근사한 일이다.


오늘 출근길에 난데없이 새똥을 맞았다. 아마 찰나의 순간이었다면 옷이 아니라 머리에 된통 맞았을 텐데, 옷에 비껴 맞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스스로에게 다소 놀랐던 것 같다.


‘보통은 먼저 화가 나지 않나? 그다음에야 뒤늦게 다행이라 여긴다거나.’


내가 스스로에게 너무 후한가 싶어 곧바로 H에게 물었더니 그녀는 “오, 나였으면 ‘아 씨바!!’ 했을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한다. 그래, 저게 보통의 반응이지. 뭐지? 나 왜 이렇게 긍정적이야?


사무실에 도착해 출근길에 있었던 일을 곰곰이 다시 떠올려본다.


생각해 보면 나는 원래 꽤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긴 했다. 음, 그러니까 아주 속상하고 힘든 마음을 가지기 전까지는. 어찌 보면 좀 대책 없다 싶을 만큼. '그딴 식'으로 살아온 주제에, 마치 그늘 하나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좋아했다. 그래 나는 그렇게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나의 넘치는 자기애의 원천은 바로 그런 거였다.

그것들이 전부 박살 나고 무너져서 나는 내가 너무 싫어져 버린 줄만 알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불쑥 치켜든 이 마음이 너무 낯설다. 마치 내가 아주 조금, 정말 조금은 다시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서 이상하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씻는 일이 조금은 무섭다. 아침에 눈을 꼭 떠야만 할까 싶은 날이면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하지만 가끔의 다정을 건네받아 내일을 기다린다. 마치 H가 내미는 도장을 찍게 될 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새로 배우게 될 전공 수업을 무척이나 기대하고, 댓글을 막아두었음에도 굳이 프롤로그까지 찾아와 회차마다 투박하게 마음을 남겨놓는 애독자의 댓글을 쓸어 넘기며 읽는다. 가끔은 너무 맛있는 햄버거를 먹고, 조금 이상한 대표님과, 조금 이상한 회사에서, 조금 이상한 회사생활을 한다.


이제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목구멍으로 그저 삼키던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아파야 했는지. 왜 한없이 쓸모에 허덕이는 밤들을 보내게 되었는지 말하고 싶어졌다.

다만 최선을 다해 탓하지는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 긴 밤에 늘 누군가를 탓하지 못해 나를 탓했다. 그래서 항상 처절했다.


나는 아직도 감정조절이 미숙해, 읽히기 위한 글은 잘 쓰지 못하는 것 같다. 여전히 내 글은 쓰기 위한, 병신 같은 글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이 모든 마음이 다 정리되어 아물고 나면, 이 이야기를 나는 반드시 읽히기 위한 글로 다시 쓰겠다고 결심한다.


좋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