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점심시간에 사무실에 혼자 남게 되어 고민하다가 햄버거를 배달시켜 먹었다. 사실 나는 햄버거를 즐기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수제버거는 더더욱. 그날은 조금 변덕에 가까운 마음이었다. 배달 앱의 평점이 거짓말처럼 좋아 괜한 반발심이 든 데다, 내가 좋아하는 새우가 유독 튼실해 보여서 그냥, 그래서였다.
그런데 그렇게 주문한 버거가 정말 말도 안 되게 맛있었다.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이제껏 살면서 먹어본 햄버거 중에 제일, 이제껏 이걸 먹지 못하고 살았다는 사실이 억울할 정도로. 나는 고민을 거듭하다가 퇴근 시간을 미뤄가면서까지 점심때 먹었던 그것을 다시 주문해 집으로 들고 갔다.
나는 조금, 아니 많이 낯설었다. 근래의 나는 대체로 너무 슬퍼서 먹지 못하거나, 먹어도 게워내거나, 아예 무언가를 욕구하지 못하는 상태였으니까. 그런 내가 어떤 음식에, 그것도 싫어하던 것에 이토록 강렬한 자극을 느꼈다는 사실이 이상하고 신기했다. 그 탓인지 어김없이 지독한 자기 검열에 빠져들었다.
‘고작 먹을 것 하나에 사르르 녹아버리는 마음이라니. 진짜 우울증이라면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을 텐데… 역시 내가 힘들다던 건 개뻥이었나 봐. 이런 병신 같은 패션 우울증 같으니라고, 아… 나 병신 새끼’
나는 최대한 객관적인 답을 얻고 싶었다. 해서 이것이 가능한 일인지, “우울증에 대한 심리 사례를 논문에 쓰는 중”이라며 지피티에게 물었다.
해당 내담자는 반복적인 죽음 사고를 보고하였으나, 특정 시점에서 강한 미각적 즐거움을 경험한 후 일시적으로 기분이 호전되었고, “조금 더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진술하였다. 이는 우울증 상태에서도 긍정 정서가 순간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으며, 생존 욕구와 죽음 사고가 동시에 공존하는 양가감정 상태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가능한 일이라는 그 문장을 읽고서야, 나는 비로소 마음이 편해져 H에게 연락할 수 있었다.
“H, 나 오늘 엄청 맛있는 햄버거를 찾았지 뭐예요. 내가 무슨 생각한 줄 아세요?”
“헉… 설마 운 거 아니죠?”
푸스스. 꽤 괜찮던 그날에, 역설적으로 낙하하던 마음을 울며 털어놓던 것을 그녀는 또렷이 기억하나 보다.
“너무 맛있어서, 이거 먹으려고 더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뭐예요?”
“우와, 너무 잘했다. 행복, 그거 진짜 별거 아니에요, 그쵸? 너무 예쁘다. 우리 마른틈씨, 조금씩 나아지고 있네요. 예쁘다.”
마치 자기 일처럼 손뼉을 치며 기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살풋 웃고 말았다. 그녀를 볼 때면 나는 종종 어미 새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 오늘은 H에 대해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랑은 널리 널리 알려야 하니까. 이번 글은 특별히 멤버십 발행도 하지 않기로 했다.
"작가님, H가 좋아요, 아니면 이름에서 스펠링 따는 게 좋아요?"
"음, 뭐든 좋아요!"
"한 번 정하면 못 바꿔요."
"헉, H...!"
"좋아, 앞으로 필명 바꿀 생각 하지 말아요. 알았죠."
H는 이야기를 참 잘 들어준다. 남에게는 한 번도 꺼내 본 적 없던 이야기들을, 나도 모르게 술술 꺼내게 만든다. 무정한 신 따위는 믿지 않지만, 그녀 앞에서만큼은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신도처럼 모든 것을 털어놓고 마음의 안식을 얻게 한다. 그녀에게 이야기를 쏟아내고 나면, 수십 년 동안 마음에 단단히 빗장을 닫아 두었던 이야기들조차 거짓말처럼 글로 담담히 꺼내놓을 용기가 생긴다. 고단했던 그 모든 일들이 더이상 내 잘못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럴 수 있었던 하나의 사고처럼, 불가항력이었던 일처럼 여겨진다.
그녀는 그저 나를 불쌍해하지 않는다. 어느 어린 날의 나를 기특해하고, 야무지고 용감했다며 엄지를 추켜세운다. 그리고 함께 마음 아파 울어준다. 삭막하고 비정해져 버린 내 마음에 물을 주고, 비료를 뿌리며 양지바르게 가꿔준다. 자신보다 열 살 가까이 어린 나를 보며 “늘 어른스러워 많은 것을 배운다”며 본인을 낮출 때면, 나는 정말 내가 뭐라도 된 것만 같다.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경험이 얼마나 절망적이고 좌절스러운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이 대체로 가까운 관계에서 이루어지기에, 끊어내기까지 얼마나 고단한 소모가 이어지는지도. 그러니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욕망이 고개를 드는 순간마다, 자기 검열에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치듯 물러나야만 한다.
아, 내가 또 실수해 버렸구나, 싶어서. 이건 널 위해서라며. 그리곤 순순히 물러난 그들을 보며 쓴 물을 삼키지. 그래서 나는 늘 그녀에게 사과했다.
“아 미안해요, 내가 또.”
“이런 얘기나 하려던 게 아닌데…. 나 때문에 피곤하죠?”
“나는 힘든 얘기를 들어주는 게 얼마나 고된지 잘 알아요.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자꾸. 정말 미안해요.”
“나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내가 지금 너무 힘들어서…. 진짜로 정말 미안해요.”
“하, 나였어도 나 같은 사람 진저리 나서 연락 끊었을 것 같아요. 미안해요…. 나 정말 구제 불능이네요….”
나는 정말 위태롭게 많이 아팠다. 물론 현재 진행형인 지금도 썩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때의 나는 바람 앞에 놓인 촛불처럼 위태롭게 일렁였다.
내 오래된 병은 잘 관리만 해주면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스트레스에는 아주 고약하게 군다. 비정상적으로 혈압이 튀고 맥박이 요동쳤다. 눈을 감고 있으면 뒤틀리는 심장 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구역감이 치밀고 시야가 점멸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이 막히고 가슴께가 아파질 때면 맥박 약을 먹으며 버텼다. 차라리 먹지 않으면 죽을 수 있을까 싶었다.
매일같이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새벽에 눈을 떠 울면서 다시 새벽에 눈을 감을 때까지 쓸모를 찾아 허덕였다. 텅 비어버린 마음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아 수없이 울고 또 울었다. 살기 위해 내 존재를 증명받으려 애쓰고 또 애썼다. 언제든 변해버릴 예쁘고 다정한 말 따위 말고,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해도 된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나는 죽고 싶었지만, 그만큼 살고 싶었다. 다만 살아도 된다는 확신이 없었다. 내 세상의 전부였던 이에게 부정당하는 일은 그런 것이었다.
H는 못 해도 이틀에 한 번씩 내게서 생존 신고를 받아갔다. 밥은 먹었니. 기분은 어떠니. 왜 연락이 없니. 내 글 좀 봐줘라. 진짜 웃기는 사람이다.
그녀는 인정욕구에 목마른 내가 하염없이 울고 있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공모전 공고를 스크랩해 와서는 우르르 던지고 말했다.
“지금 그러고 있을 시간이 어딨어요? 이거 당장 내일 모래 마감인데”
그리고는 말한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이 주제로 써보면 어때요?"
이제 내 삶을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는 그녀는 공모전 주제에 맞춰 내 이야기를 얼추 짜깁기까지 한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고 눈물을 닦아낸다. 그리고 터덜터덜 노트북 앞으로 불려 가 앉아, 감정을 토해내듯 글을 써낸다. 그러고 나면 어쩐지 조금 후련한 마음이 된다. 봐, 정말 웃기는 사람이 맞다니까.
H는 이제 작가 지망생이 아니라, 기성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가 함께 지망생이던 시절, 나는 못 돼먹은 인간이라 남의 경사를 온전히 축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속상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럼에도 H, 나는 당신이 작가가 된다면 그것만큼은 진실로 축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당신은 그토록 바라던 그 꿈이 현실이 된 순간, 내게 그것을 알리는 일에 주저했다.
물론 H가 내가 속이 간장 종지만큼 비좁은 인간이라 여겨 숨긴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그저, 아주 많이 고단하고 마음 아픈 상황에 놓인 내가 혹시라도 상처받을까 봐 걱정한 거다. 모르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더 속상했다.
내가 당신의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당신의 경사에 가장 먼저 달려와 축하해 줄 사람이 되지 못해서, 그 기쁨보다 나의 슬픔을 먼저 살펴야 했음이 서글펐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모든 마음이 단단히 아물고 나면, 내가 더 이상 그녀의 아픈 손가락이 아니게 되면, H가 내게 해주었던 것처럼 나 역시 그녀에게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다고. 기쁘고 슬픈 일 앞에서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러려면 내가 아주 단단하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멋진 사람이 되어야겠지. 괜찮아져야만 하겠지.
어제는 수영에 젬병인 내게 프리다이버였으면 좋겠다는 사람을 만났다. 그것도 이퀄라이징에 탁월한. 수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가도 급강하해서, 수영장이던 산호초 세상이던 그 바닥을 금방이라도 찍고 또 박차오를 수 있는 그런 프리다이버였으면 좋겠다나.
이제 나는 누구에게도 의지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외롭더라도 무너지진 않을 거라는 결론이 섰다. 그래서 다정이 너무 싫다. 나는 이제 혼자 잘 먹고 잘 살 건데, 그건 자꾸 나를 약하게 만든다. 이 나이 처먹도록 여전히 눈물샘 조절을 못 하는 내가 너무 싫다. 그토록 예쁘고 다정한 것에 다쳐 아팠음에도, 나는 또.
아 , 조금 맛있고 , 조금 다정한 나날들이라 , 나는 조금 도망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