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외할머니를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다. 누군가를 다시 보지 못한다는 두려움을 처음 느꼈다. 이별과 죽음은 다르다. 그 누구한테도 선택권이 없었던 거니까, 그래서 더 아쉽고 아련하다.
계속 눈물이 났다. 염습부터 운구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이 끝난 후에도, 믿어지지 않았다. 생전에 조금이라도 더 찾아뵐걸, 많이 사랑했다고 말씀드릴걸, 이라는 쓸데없는 후회를 했다.
그렇게 매일 생각나던 할머니는, 이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 점차 잊혀 갔다. 잊혀 갔다는 거보단 무뎌져 갔다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슬픔이 무뎌지게 되어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동시에 이렇게 빨리 누군가를 잊게 되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더 이상 병이 없는 세상으로 가시길 바랐다. 걱정도 고민도 없이 이제는 행복하기만 하시길 바랐다. 그러다 보니 사후세계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을 하게 되었다. 사후세계는 어떨까. 할머니가 행복하실 수 있을까. 따뜻한 사람이셨기 때문에 좋은 곳으로 가실 것임은 분명한데, 도대체 어디로 가시는 걸까. 좋은 곳이 도대체 어딜까. 궁금함과 답답함에 각 종교에서는 사후세계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결국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하디 뻔한, '좋은 곳에 가셨을 거야'라는 말로 귀결되었다.
이번 주 아무 생각 없이 펴 들었던 책에서 사후세계에 대한 뜻밖의 해답을 얻었다. 사람은 죽어도 의식은 죽지 않는다는, 그래서 죽음은 꼭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 의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뇌가 정지하고 신체가 죽음에 이르러서도 그렇다. 그것은 무한이라는 시간의 가능성 때문이다. 우리의 신체가 죽음을 맞이하고 뇌는 정지하며 의식은 어둠 속에 침잠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영원을 향해 나아가는 길고도 긴 시간의 가능성 안에서 우리의 의식이 다시 발현할 조건은 충분히 반복될 것이고, 그렇게 이 우주의 어딘가에서 나와 당신의 의식은 또다시 발현될 것이다.
- 채사장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그리고.. 우리의 의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꿈'과 '현실'은 사실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꿈과 현실이라는 두 가지 세계는 동일한 것일지 모른다. 꿈속에서 마음 썼던 감정들이 꿈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처럼, 현실에서 집착하던 감정들은 죽음과 함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꿈이 아무런 기반도 없는 환영인 것처럼 현실도 실제로는 아무런 기반을 갖지 않는다.
- 채사장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의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죽게 되더라도 결국 우리는 돌고 돌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다. 이런다고 앞으로 내가 또 겪게 될 죽음, 즉 선택권이 없는 이별 앞에서 쿨해질 순 없겠지만, 그때는 조금 더 쉽게 놓아줄 수 있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