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상상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누구나 할 수 있고, 언제든지 할 수 있으며 어디에서든지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상의 내용 또한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돈도 들지 않으니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고향에 첫 패스트푸드점이 생겼다. 지역 이름 뒤에 ’ 시‘ 가 붙어있지만, 시골 마을과 진배없었기에 그 가게의 등장은 유행에 민감한 친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시내와 먼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 학교에도 햄버거를 먹었다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들은 서로서로 모여 자신들의 경험을 마치 영웅담처럼 늘어놓기도 했다.
나는 유행을 선도하지 못했지만, 일단 유행이라는 말을 들으면 한번 해보고 싶어 하는 성격이라 ‘햄버거와 밀크셰이크가 엄청나게 맛있었다.’라고 하는 그들의 말을 귀만 키운 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학교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엄마를 졸랐다. “엄마. 나도 햄버거.” 하지만 간절함이 모자랐는지 돌아온 대답은”주말에 가자. “ 였다.
어린이의 시간의 흐름은 어른의 것과는 다르지 않은가? 눈 깜짝할 새 주말이 찾아오는 지금과는 다르게 당시 나에게 주말은 한~참~동~안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상상하기’였다.
햄버거가게는 어떻게 생겼을까?부터 시작해서 밀크셰이크는 어떤 맛일까? 까지 열심히 상상했던 것 같다. 중간중간 친구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덧붙이며 가게 안을 구상해보기도 하고, 급식으로 나오는 우유를 보며 밀크셰이크도 이렇게 고소한 맛일 거라고 상상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주말이 왔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들어선 햄버거가게!
그런데 ‘세상에 이럴 수가!’ 햄버거 가게는 내가 상상했던 곳과는 달랐다. 유치원 졸업식 때 갔었던 경양식 돈가스 레스토랑을 바탕으로 상상했으나 현실은 넓은 홀에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꼭 즉석 떡볶이 가게와 비슷했다. 사람들도 많아서 햄버거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고, 밀크셰이크도 고소하기보다는 너무 달아서 몇 모금을 끝으로 더는 입에 대지 않았다. 그 기억이 강렬해서인지 그 이후로 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햄버거를 먹지 않았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내가 느낀 건 나의 상상은 경험이 바탕이 된다는 것이었다. 경험이라는 주춧돌이 있을 때 좀 더 구체적으로 상상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문제가 되었다. 내가 주인공의 직업을 ‘배우’로 정했다는 것이 말이다.
소소하고 잔잔한 로맨스지만 주인공의 직업은 화려하게 가고 싶었다. 화려한 연예인의 화려하지 않은 연애. 연예인이 연애인(연애를 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의 일상적인 감정상태를 쓰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그 직업에 대해 경험한 바가 없으니 참 난감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보화시대. 스마트 폰 하나면 연예인의 삶을 검색해 보는 건 식은 죽 먹기 아닌가. 거기다 넘쳐나는 관찰예능에서 배우의 삶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문제점은 그들은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간접 경험만으로 구체적인 상상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들의 삶을 본 대로 기술할 수는 있겠으나 직접 경험을 해보지 않았으니. 그래서 결심했다. 나의 삶을 배우에 빙의하기로. 요새 유행 아닌가? 유행한다면 한 번은 해봐야지. 흠흠.
어린이집에 아이를 등원시켜 줄 때는 엄마 연기를,
집에서 요리를 할 때는 요리사 연기를, 남편이 야근으로 늦을 땐 집에서 오매불망 남편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랑 넘치는 부인 연기를 한다고 말이다.
그 결과 나는 요리를 할 때 혼잣말이 늘었고, 아이는 엄마가 다정해졌다고 기뻐했으며, 남편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늦은 밤까지 자신을 기다리는 부인을 보고 ‘흠칫’ 놀랐었다.(긍정적인 놀람이라고 믿고 있다. “왜 안 자고?”라고 말하며 입꼬리를 올렸기 때문에.)
근데 솔직히 생각해 보면 빙의는 필요 없는 일이었다. 배우의 직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감정은 상상하기보다는 느끼는 것이니까 말이다. 구체적인 것은 다르겠지만 우리가 느끼는 희로애락은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창피한가? 노노!
그래도 나는 나의 상상이 삽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순기능을 남기고 배우 빙의는 “컷!”소리와 함께 흡족하게 마무리되었고, 소설 또한 나름 순조롭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뭐 어때, 나만 아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