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사수하기

by 오로라


가을이 왔다. 아침에 부는 시원한 바람의 촉감이, 밤에 부는 바람의 향기가 가을이 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며 계절에도 향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가을밤의 산책은 이 계절을 느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다. 가을밤의 달콤한 향기를 느끼며 그간 이 시기에 경험했던 기분 좋은 추억들을 떠올리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가을이다.


무더운 여름에 썼던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채우기에 딱 좋은 계절이 온 거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심신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야 할 계절이 다가온 거다.


봄처럼 활기차고 신선하진 않지만 차분해진 마음으로 순수하게 무언가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자연이 ‘후’ 하고 불어주는 기분 좋은 숨결을 느끼며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딱히 손이 가지 않던 책에 손길을 주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계절에 사랑이야기를 읽는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다.


등화가친


그러고 보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다. 등화가친이라고 옛 어르신들이 이야기한 것을 보면 가을은 밤에도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묘한 기운이 있는 계절인가 보다.


그렇다면 취향이 아닌 글에 도전을 해보는 건 어떨까?라고 남편에게 이야기하기에도 적당한 때가 아닌가 싶다.


사실 내가 로맨스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을 내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은 밤마다 방에서 키보드를 토독토독 두드리는 부인이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나 보다.


하루는 텔레비전을 보는 중인지 알았던 남편이 방문에 매달려 “뭐 하고 있어?”라고 물었다. 나는 얼른 휴대폰의 메모장을 없애버리고는 “일기 써.”라고 말했었다.


남편이 안경을 쓰지 않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남편이 다시 거실로 갈 때까지 그의 동태를 살피고는 다시 메모장을 열어 글을 썼다.


근데 나는 왜 이 사실을 숨기는 것일까? 글을 쓰는 건 숨길 일이 아닌데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도대체 나는 왜 말을 할 수 없지?라고 말이다. 여러 가지 단어를 떠올리다 마음에 콱 막히는 단어를 만났다.


두려움.


“무엇이 두려운가? 그대여?”

“사실은.. 남편의 취향은 로맨스가 아니 옵니다.”

“그게 뭐 어때서? 그렇다면 그가 너의 소설을 읽을 일은 없을 테니 더욱 좋은 것 아닌가?”

“그렇죠. 하지만 만에 하나 읽게 된다면.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네요. “

”그 이유는? “

”그게... 우리의 연애 시절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그렇.... 습니다. “


진짜다. 상상력이 부족한 나는 경험에 비추어 상황을 만들었다. 그래서 글의 곳곳에는 나의 경험이 존재한다. 물론, 내가 로맨스 소설을 쓴다고 한다면 남편은 읽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면 연애할 때 “간질간질한 건 좀 그래.”라고 한 말에 나는 “어머나! 나도 나도!” 하며 영화 보는 취향이 비슷해서 좋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또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도 있는지라 찾아서 읽을지도 모른다.


“괜찮다. 그대여 필명을 쓰고 있지 않은가?”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하되 휴대폰만 사수하면 되느니라.”

“오! 그런데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엄청나게 불편할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여라. 하지만 휴대폰은 언제나 조심하도록.”


남편이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기 위해 내 휴대폰의 액정에 손만 가져다대도 화들짝 놀라기 일쑤였다. 휴대폰에 담긴 비밀이 나를 이토록 불편하게 할 줄이야. 하지만 그래도 남편이 아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어플을 하나 사주었다. 비밀번호로 잠금설정을 할 수 있는 메모 어플을.


”당신 이거 필요하지 않아? “

”어? “

”내가 일기 볼까 봐 불안한 거 아니야? “


응? 그렇게 티 났어? 어쨌든 그 어플을 사용하고 나서부터는 휴대폰에 집착하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찝찝함이 남아 있다. 그건 남편에게 아직까지도 물어보지 못한 질문 때문일 것이다.


”근데.. 여보? 내.. 일기 읽은 건 아니지? 그래서 어플 사준 건 아니지? “


가을이다.

하지만 남편에게 독서의 계절을 이유로 ‘내 글을 읽어보는 게 어때?’ 하고 제안하기에는 아직까지도 용기가 나지 않는 계절이다. 용기가 생기는 그날을 기약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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