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소설을 쓰는 엄마의, 아주 작은 구출 일기
"엄마, 모든 사람은 다 히어로야?"
딸의 질문은 꼭 내가 집중할 때 나온다.
오늘은 소설 속에서 남주가 여주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이었다.
'사랑합니다.' 대신 '괜찮아요?'라고 묻는 남주.
딸이 그 장면을 봤다면 이렇게 물었을지도 모른다.
"엄마, 저 사람은 히어로야?"
나는 노트북을 닫고 "응, 다 히어로야. 엄마도, 아빠도, 너도."라고 대답했다.
"히어로는 하늘을 날잖아."
"영화에서는 그렇지. 다만 현실에서 엄마는 장바구니를 들어. 그러니까 엄마는 장바구니 히어로."
"그럼 아빠는?"
"아빠는 퇴근길에 간식을 사 오니까 디저트 히어로."
딸이 깔깔 웃으며 물었다.
"엄마. 그럼 나는?"
"너는 엄마, 아빠를 항상 웃게 만드니까 웃음 히어로."
그 말에 딸은 뿌듯한 얼굴로 씩 웃었다.
나는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남주는 아직 고백 타이밍을 잡지 못하는 위기에 빠져 있다. 사랑도, 시간도 부족한 상태.
그를 구하는 건 결국 작가인 나의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히어로의 어깨로 키보드를 친다.
소설 속 히어로는 언제나 완벽하다.
불길을 뚫고, 검을 휘두르고, 결정적인 순간에 여주를 구한다.
현실의 나는 냄비 뚜껑을 열고, 넘치기 직전의 국을 구한다. 덤으로 가스레인지까지.
때로는 음식의 간을 보며 간장 두 스푼 넣는 일까지 하니 음식의 맛까지 구한다.
히어로가 하늘을 난다면,
나는 주방을 날아다닌다.
히어로가 세상을 구한다면,
나는 저녁 식탁을 구한다.
아빠 히어로의 장면은 늘 조용하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며 말한다. "아이스크림 샀어."
그 한마디가 집안을 달콤하게 만든다.
가끔은 양말을 거꾸로 벗고, 리모컨과 함께 잠들기도 하지만, 그가 가족의 균형을 잡는 무게중심인 건 확실하다.
히어로의 초능력이 늘 화려해야 하는 건 아니다.
매일 제 시간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사람,
그게 가족의 평화를 지키는 초능력이다.
딸의 초능력은 상상력이다.
"히어로도 실수해?"
"그럼. 엄마는 요리할 때마다 실수를 하지."
"아! 그럼 다시 하면 되는 거잖아. 맞지?"
"맞아. 히어로는 늘 다시 하지."
신기하게도 아이의 질문이 나를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실패해도 다시 하면 된다는 말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힘이 되어 주는 말이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느낀다.
사랑 이야기를 쓰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회복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는 걸.
누군가를 다시 믿게 만들고, 무너진 마음을 조금씩 일으켜 세우는 일.
그건 구출과 다르지 않다.
남주와 여주는 서로를 구하고, 나는 나 자신을 구한다.
밤이 되면 우리 가족은 히어로 모드를 해제한다.
아빠는 리모컨으로 자신의 평화를 유지하고,
딸은 꿈속에서 자신의 모험을 이어간다.
그리고 나는 노트북을 켜서 오늘의 마지막 미션인 글을 구한다.
커서가 깜박이는 동안,
나는 주인공들과 나 사이를 오가며 서로를 일으켜 세운다.
그러니 모두가 히어로다.
어떤 날엔 요리를, 어떤 날엔 마음을,
그리고 가끔은 서로를 구하며 산다.
세상을 바꾸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지금을 살아가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매일 하는
가장 멋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