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감정 순환 시스템을 탑재한 사람의 기록

by 오로라

나는 두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은 한 사람에게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내가 직접 만든다.

둘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다.

이 사랑의 삼각형에 긴장감이 없는 이유다.

둘 사이를 오가며 긴장하는 건 나뿐이다.


남편은 말이 적다. 사랑한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마저도 "사랑해."가 아니라 "조심해."와 같은 형태이다.

말을 절약해서 전기세라도 아끼는 줄 알았다.

하지만 대신 그는 커피를 조용히 내려놓고,

반찬통 뚜껑을 완벽한 밀폐력으로 닫아 놓으며,

내가 가만히 있어도 굳이 이유를 묻지 않는다.

말 대신 행동이 문장인 사람이다.


내가 쓰는 남주는 다정하다.

감정을 길게 설명하고, 대사로 마음을 전한다.

"오늘 너 때문에 하루가 부드러워졌어."와 같은 말을 부작용 없이 잘도 건네는 사람.

현실에서는 발생할 수 없는 멸종 위기의 표현이다.


나는 현실과 문장을 오가며 두 종류의 기후를 겪는다.

한쪽은 건조한 실내 23도, 다른 한쪽은 말랑한 봄바람 18도.


하지만 이건 감정의 분열이 아니라 감정의 용도 분리다.

남편에게 받는 사랑은 생활로 번역이 되고,

남주에게 쓰는 사랑은 문장으로 번역이 된다.

현실에서 받은 무표정의 사랑을 소설 속에서는 대사 있는 사랑으로 풀어낸다.

이게 나만의 감정 순환 시스템이다.

자원을 재활용하듯 감정도 재활용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제법 감정 친화적인 인간인 것 같다.


회식이 있는 날이면 남편은 "밥 먹었어?"라고 묻는다.

이건 사랑의 가장 단단한 축약형이다.

안 먹었다고 하면 남편은 "왜?"가 아니라 "뭐 먹을래?"로 답을 한다.

탄수화물과 단백질로 감정을 챙기는 사람.

영양소 기반의 사랑 제공자다.


반면 남주는 말로 챙긴다.

"너를 배고프게 두고 싶지 않아."

현실에선 절대 안 일어나는 문장이다.

배달 앱 보다 다정하고, 쿠폰 없이도 설렌다.

덤으로 카드값도 나가지 않는다. 게다가 문장은 무이자다.


남편의 이런 무뚝뚝함이 서운한 날이면 나는 남주의 대사를 쓴다.

그러면 남편의 "밥 먹었어?"가 서툰 고백처럼 들린다.

사랑은 말이 많음과 없음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감정을 소비하지 않고 순환하면서 산다.

현실에서 받은 서툰 감정을 소설에 풀어내고,

정리된 감정을 다시 현실로 가져와

남편의 짧은 말 위에 살짝 눌러 담는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남편의 사랑을 느낀다.


나는 사랑을 쪼개 쓰지 않는다.

사랑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다만 그 사랑을 두 가지 방식으로 활용할 뿐이다.

한 사람은 나를 살게 하고, 한 사람은 나를 쓰게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남편에게 묻는다.

"커피 마실래?"

그리고 소설 속 남주에게 묻는다.

"오늘은 어떤 설레는 대사를 낭비해 볼까?"


나는 두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은 남편에게만 하고,

문장은 남주에게 빌려줄 뿐이다.

이 정도면 난 꽤 착실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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