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

웨일북

by 고무줄

잘 다듬어진 화살은 궤적 위에서 방향을 틀지 않는다. 올곧은 여행자는 자신의 여정 중에 길을 바꾸지 않는다. 소마는 잘 다듬어진 화살이고, 올곧은 여행자다. 언젠가 삶의 여정 어딘가에서 길을 잃을 때도 있을게다. 하지만 소마는 다시 본래 자신의 길을 찾게 될 거다. 걱정의 시간도 후회의 시간도 너무 길어질 필요는 없다.


아버지의 당부가 소마의 여정과 인생의 방향을 선정해 주었다. 본 소설의 도입부에서 아버지가 쏜 화살의 궤적을 따라 화살을 찾아오라는 소마의 인생의 시작을 읽으며 아버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책을 덮으면서 알게 되었다.

어린 소마는 화살을 찾아오면서 늑대가 아닌 들개를 만나고, 저수지(아비키야의 눈)를 지나면서 하룻밤의 비를 피하기 위한 동굴에서 거대한 존재를 만나게 된다. 경배, 복종, 제물을 요구하는 거대한 존재에게 경배하고 복종하나 차마 들개를 제물로 바칠 수 없었던 소마의 험난한 인생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도입부이다.


두 세계가 마치 분리된 듯한 느낌 변화하는 현실의 세계와 변하지 않는 초월의 세계가 분리되고, 자신은 시간이 흐르지 않고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무의 세계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작가의 전작의 인문학 서적 들에서 작가가 지속적으로 얘기하는 초월적인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문장에 풀어내는 신비한 데자뷔를 경험하면서 천천히 매력적이나, 그리 편하지 않은 이야기에 빠져들 무렵 불 탄 마을로 돌아와서 홀로 남겨진 소마를 마주할 때 알 수 없는 처연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다양한 것과 단일한 것이 다르지 않음을, 부분과 전체가 다르지 않음을, 순간과 영원이 다르지 않음을


최상위 권력자 바카렐라와 그의 여동생 한나, 한나의 남편인 엘가나

엘가나에 의해서 구해진 사무엘이 등장을 하는 2부는 어린 사무엘의 유년기를 담담한 작가의 화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2부의 초입에서는 다른 에피소드가 시작하는 것과 같은 착각에 잠시 빠지나, 조금 더 읽어가면서 아기를 가질 수 없는 한나와 자녀를 가질 수 없음이 죄악시되는 시대적 분위기

산스크리트어를 구사하는 하녀 모라에게 키워지는 사무엘과 그 사무엘에 기르는 정으로 엄마의 감정으로 다가가는 한나.

바카렐라의 셋째 아들인 서자 헤렌의 입양과 사무엘과의 갈등 그리고 그 갈등으로 촉발된 하녀 모라의 죽음과 사무엘의 다시 한번의 경배, 복종, 제물


이 세상에 정착하리라. 이 세상을 움켜쥐리라. 이 세상을 가지리라.


사무엘의 각성 및 정체성의 회복을 통해서 세상, 권력 혹은 인간과 소통하는 방법을 2부에서 보여주고 있으며, 소설 작품으로서의 작가의 작품은 전작인 인문학을 바탕으로 하는 작가의 소통하는 방식을 잘 끌고 가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2부의 마지막 단에서 갑자기 그 예전에 보았던 라스트 모히칸이라는 영화가 갑자기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조만간 라스트 모히칸을 다시 봐야겠다.)


3부에는 더 구체적인 주인공의 각성과 인간군상의 갈등이 증폭됨을 보여주고 있다.

순진한 사랑으로 시작된 하녀 네그라와의 연정, 그 연정을 방해하는 헤렌과 그 헤렌으로 인해서 네그라에게 거부당하는 사무엘은 어찌 보면 최근 막장 드라마와도 같은 배신과 음모, 그로 인해서 나락으로 빠져드는 주인공의 감정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스도 기사단의 입단으로 견습기사가 된 헤렌, 한나의 도움으로 그리스도 기사단에 가입을 하게 되는 사무엘이나, 기사단에서도 부당한 처우와 그 부당한 처우와 불이익을 감당하면서 세상과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는 검은 사도의 등장은 소설을 좀 더 빠르게 전개시키고 있다.

그중에 알게 된 고네는 진정한 사무엘의 사랑으로 다가왔으나, 또다시 검은 사도 활동으로 인해서 사무엘은 연인 고네를 스스로의 손으로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태형을 집행하고, 그로 인해서 고네의 오빠 네이케스로의 복수심과 경쟁구도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내면의 고통, 복수, 고네의 죽음은 사무엘로 하여금


나는 소마다.


라는 진정한 각성을 보여준다. 마치 무협지에 한 장면과 같은 각성의 부분에서 주인공의 사파의 무공을 취득하여, 무지막지한 사파의 권법을 각성한 것과 같은 중반부를 보면서 나름의 후반부가 어떻게 진행될 것 같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었다.


소마는 천 년 전 죽은 훈족의 왕인 아틸라 화 되었다. 바가렐라가 국왕 엘디귀스 4세를 앞세워 싸우는 곳은 신생국가 크레도니아 였다. 흑해와 카스피해에 인접한 서쪽 신생국가 크레도니아의 상업 항구 차쿠날레 항구의 주도권을 노리는 크레도니아 건국의 아버지 레미니오스 대공의 손자, 귀족 레메니오스의 집정관이 되고자 하는 야망과 그의 배경이 되는 실질적인 군 권력을 이민족 소마를 통해서 권력을 장악하려는 레메니오스의 욕망, 반대편 세력인 바가렐라를 지휘관으로 진행되는 아데사 동쪽 지역의 군병력의 약탈행위로 자신의 권력과 군사를 통제하고 세력을 확대해나가려는 바가렐라와 그의 아들 헤렌

소마의 강한 군대와 잔혹함을 적군과 아군이 모두 두려워하는 소마의 부대에 우만의 충성과 동료애가 4부에서 성공적인 소마를 부각해 나가고 있다.

사실적으로 국가와 전쟁을 부추기는 인간군상과 서로의 이해득실을 그려가면서 빠르게 전쟁, 배반, 충의 등을 소마와 그의 주변 인물들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최고사령관이 된 소마와 평원에서 화전을 이용한 소마의 전술로 인해 헤렌 대군의 패전, 네이케스의 정치적 돌파, 레메니오스의 배신, 우만의 신의, 엘케인을 이용한 소마의 탈출, 강에서의 자각


그렇구나, 내가 결정해야 하는 것이구나. 여기서 멈출 것인가, 더 걸을 것인가, 나는 결정해야 하는구나.

그렇다면 무엇이, 어떤 동인이 여행자를 멈추게 한단 말인가? 그를 멈춰 세우는 동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지나온 여정에 있다. 충분했는가, 만족했는가, 이만하면 되었는가, 아니면 치쳤는가, 그것이 그를 멈춰 세운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떤 동인이 여행자를 더 걷게 한단 말인가? 그의 걸음을 더 재촉하는 동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기대에 있다. 볼 것이 남았는가, 해야 할 것이 남았는가, 닿아야 할 곳이 있는가?

(중략)

단지 몇 걸음만, 단지 몇 걸음만 더 나아가겠습니다.

미련은 동인이 되었다. 수레는 움직였다. 여행자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헤매던 지류의 시간이 다시 세계의 시간으로 흘러들었다.


레메니오스 죽음, 대대적인 숙청, 제1시민 취임, 공포정치, 네그라와 에다의 등장, 바가렐라 죽음, 헤렌의 처단, 네이케스와 소마의 마지막 전투

소용돌이치는 소마의 전쟁을 정신없이 지나쳐오다 보면 다음의 문장을 만나게 된다.


영웅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났어야 한다. 영웅은 영웅으로 죽고 이야기는 박제된 이야기로 남았어야 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삶과는 다르고 삶은 지루하게 이어진다. 이유도 의미도 없고, 목적도 방향도 없는 넘치도록 당혹스러운 삶의 잉여를 바라보며, 길을 잃은 자들은 주변을 배회할 뿐이다.


소마의 노년에서의 삶의 변화, 심경의 변화, 세월의 변화가 정신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인간사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나, 5부를 읽는 동안은 마음이 불편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 마치 소설의 후반부에서 펼쳐질 소마의 인생을 미리 들여다보는 순간의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판단이 흐려지고, 노쇠하였으며 현실을 부정하고 아들로 알고 있는 에다에게 애정을 주지 못하고 유약함을 싫어하는 소마는 스스로를 세상의 주인이라 생각하며, 또 다른 실정으로 기독교 마을을 정벌하러 간다.


소마는 마실수록 갈증을 느꼈고, 먹을수록 허기를 느꼈으며, 잠들수록 피로했고, 도망칠수록 고통 속에 던져졌다.

기독교 마을 정벌 시 만난 맹인 소녀 이오페와 소마는 교감을 나누면서, 인생의 노년기를 보내나 또 다른 음모로 차쿠날레 총통 마렐라와 의회 상원의장 에다의 담합으로 혁명을 도모하게 된다. 소마는 차쿠날레항의 소요를 진압하러 마지막 회동을 하는 동안 친위대장 대리의 메시지...


소마, 억울해 마라. 이것은 나의 아버지에 대한 복수다.


6부의 시작은 매우 고통스러운 책 읽기 시작이었다.

하지만 읽으면서 사실 신체의 기능이라고 할 수 없는 늙은 소마의 다치고 망가진 신체로 10년의 걷기가 묘사된다. 그러다 다섯 날 동안의 꿈을 통해서 소마는 각각 다섯 감각의 잔재, 기억과 이름의 소멸, 의지의 사라짐, 자기의식의 발견, 경계의 소멸을 경험하는 부분은 사실 이 소설의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되는 종반부라 할 수 있다.

고단하고 외로운 삶에서 지친 소마는 드디어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요청하나, 의식에서 만난 아버지와 처음의 화살과 여행과 인생 여정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소설의 막을 내리게 된다.


마음의 걷기를 통해서

세상이 태어나고 무너지고 다시 태어나고 무너지는 기나긴 시간의 모든 찰나를 강렬히 체험하며 그는 참을성 있게 걸음을 떼었다. 어느 순간 빛은 가까워지고 홀연히 경계를 넘었을 때, 세상은 께어나 다시 색깔과 형태를 되찾았다.


소설을 모두 읽고 난 후에 친절한 작가의 말과 인터뷰, 나오는 등장인물들로 인해서 글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을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작가의 전작 인문학 서적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개인적으로 해석하고 싶다.

소설 '소마'는 삶의 시작과 성장, 그리고 끝을 이르는 여정이며, 인간의 존재에 대한 갈망이라고 작가의 글에서 설명하고 있다. 어렴풋이 작가의 의도를 알 것 같으나, 해석은 각자의 판단의 몫이라고 생각이 된다.

시간과 세상, 그리고 인간을 관통하는 묵직한 의미를 전달하는 느낌을 소설을 읽고 난 후 작가의 첫 소설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밝고 가벼운 글이기보다는 내내 읽는 동안 마음이 무겁고 정신을 잘 가다듬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언젠가 다른 소설에서 작가의 또 다른 얘기를 만나겠으나, 깊은 생각과 그 구절에서의 의미를 잊지 않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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