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아버지 꿈인 그곳에 함께 오르다

희랑 부자의 네팔 히말라야 ABC 트레킹 #여행 6일(트레킹 4) 차

6일 차(트레킹 4일)
데우랄리(3,200m)-> MBC(3,700m)-> ABC(4,130m) 숙박


어제 데우랄리에 오전 11시도 전에 도착해 오늘 아침까지 거의 하루 동안, 그저 푹 쉬었던 것이다. 우리의 고산병 예방과 좋은 컨디션으로 ABC에 오르기 위한 가이드 라즈의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의, 말 그대로 전략이었다. 라즈는 생각보다 우리 부자가 산을 잘 타는 것으로 판단하고는 매일 너무 일찍 출발하진 않고, 너무 빠르게 오르지도 않도록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트레킹을 했었다. 그래선지 데우랄리까지 오는데 이 정도 페이스로 가면 고산병이 올 수도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다행히 아직까진 증상이 나타나진 않았다. 다만, 3,000m 정도 고도에선 인간이 평소의 90% 정도로만 산소를 느낀다고 하니 호흡이 좀 가팔라진 느낌은 있었다.


6시 즈음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데우랄리 롯지 앞의 풍경

산속이라 춥기는 했지만 확실히 공기는 맑았다. 평소엔 6시간 이상 자야 피로가 풀리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조금만 자고 일어나도 상쾌할 정도로 맑고 눈도 떠 있는 내내 호강하는 느낌이었다. 느지막이 까지 쉬다가, 7시 반에 어제와 같은 메뉴로 아침을 먹었다.

끓인 물 + 사과 및 오트밀 죽 + 구룽 빵(구룽족 전통 빵)과 계란 프라이

여기서부턴 특히 위와 장에 더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고기류나 밀가루류의 음식은 좀 자제했다. 이 메뉴 역시 역시 라즈와 상의를 한 후에 정했다. 둘이 가볍게 먹기에 충분한 양으로 시켰다.



3~4일 차; 데우랄리 점심, 저녁, 아침 정산내역(위로 올라갈수록 값이 올라감)

식사 3,990 (+ Wifi 150 정도는 나중에 따로 줌) = 4,150R = 한화 41,500원 정도

데우랄리(3,200m) ~ ABC(4,130m)

드디어 오늘 ABC에 오르는 날이다. 기대가 많이 되었다.

오늘 아침에는 8시 좀 넘어 출발!


꽤 쌀쌀했기에 옷을 단단히 입고 올라간다.
벌들이 모여 있을, 벌꿀(Honey)도 만났다. 200mm 줌을 아래서 최대한 당겨 찍은 샷
날씨 요정은 그날도 우리를 따라다녀 감사하게 맑았고
갈수록 안나푸르나에 가까워지며 경치 역시 멋진 자태를 보여주었다
데우랄리-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사이에 있는, 임시로 만들어졌다는 동굴

코로나가 터지기 전인 2019년 12월 전쯤, 이곳에서 사고가 나 동굴이 무너졌고 사상자도 나왔다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 위험해 보이는 곳은 더욱 가이드와 상의하면서 다녀야 한다

라즈의 친구들도 찍어줌(순간 자연스레 네팔인처럼 보였던 아버지)

산행 중 만난 많은 네팔의 가이드나 포터 등과도 인사를 나눴던 라즈. 이를 통해 그의 인맥과 좋은 성품도 다시금 알 수 있었다


조금 올라왔는데 벌써 MBC(가 보였다. 중간 목표지에 거의 다 왔으니, 여유를 좀 부려도 됐다.


갑자기 날고 싶다고 이렇게 찍어달라던 라즈

익살스럽게 장난기까지 갖추기도 했던, 귀여운 우리의 가이드


기분이 좋았나 보다. 열심히 찍어주었고, 여행을 다녀온 후 바로 다 보내주었다. 그는 정말 고맙다며 만족해했다.

여기도 사진 포인트. 다 놓칠 수 없었던 그곳의 절경들


빠르게 찍고 바로 또 올라간다.

가면서 보이는 풍광이 그냥 그림이고, 절경이다.



데우랄리(3,200m) -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3,700m) 2시간 소요; 난이도 3.5
MBC 롯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여기서 충분히 쉬어주었다. 한 40분은 넘게 쉬었던 거 같다. 올라온 코스는 오르막도 그리 어려운 길은 아니어서 힘들진 않았지만 3,500m 이상으로 올라가는 구간이어서 그런지 확실히 고산병으로 생각되는, 숨이 좀 가파지고 입맛이 없는 증상이 왔다. 올 것이 온 것이다. 그래도 따뜻한 물은 또 마셔야 했기에 라즈에 조언대로 고산에 좋은, 마늘이 들어간 갈릭 수프를 시켜 천천히 마셨다. 맛이 꽤 짜서 물을 많이 부어 섞어 좀 중화시켰는데도 입맛이 없어선지 맛이 정말 별로였다. 그래도 꾸역꾸역 정말 억지로 먹었고, 양도 많아 아버지와 나눠서 결국 다 들이켰다. 입맛이 없어도 이렇게 따뜻한 물이나 차를 꼭 마셔줘야 한다고 했다. 다 먹곤 가볍게 주위를 산책하며 운동하면서 조금씩 올라오는 어지러움증도 방지했다.


당신도 좀 힘드셨을 텐데 곧 꿈을 이루실 순간이기에, 더 환한 미소를 보이신 아버지

다시 또 힘을 내 ABC로 올라간다. 시간은 여유가 있지만, 그래도 성수기여서 일찍 올라가야 롯지 선점이 편하기에.

MBC 롯지를 거쳐
올라가면서 양 떼도 보고
가족 잃은 어린양을 보고는 안아주던 라즈

어느새 꽤 추워진, 안개 눈으로 뒤덮인 구간에서 부모 없이 길 잃은 어린양을 만났다. 라즈는 이 양도 그냥 두지 않고 내려가는 가이드에게 안전한 곳으로 잘 부탁한다면서 전해주었다.

'아... 이게 고산병인가?'

위 사진 촬영 전의 구간에서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선지 사진도 몇 장 안 찍었다. 오르막길이 가팔라서 그런 건 아니고, 고산병이 조금씩 오는 게 느껴졌다. 아버지도 조금 그런 증상을 느끼신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계속 앞서서 잘 가셨다. 난 그런 아버지와 라즈를 보면서 힘을 내 따라가며 이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급하게 빠르게 갔더라면 고산병이 크게 왔을 수도 있었던 거 같다. 그러면 정상을 앞에 두고도 내려가야 했을 수도... 실제로 올라오면서 그런 사례를 종종 들었었다. 하지만 천천히 오르면서, 너무 오래 쉬지는 않고 계속 갔기에 결국 ABC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MBC(3,700m) - ABC(4,130m) 1.5시간. 데우랄리(3,200m)에선 4시간 소요. 난이도 4

안개에 뒤덮였지만, 뒤에 설산이 뚜렷이 보여야 할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4,130m)에 드디어 도착!


ABC에서 우리 부자
이 기쁨을 라즈와도 함께!

우리가 ABC에 왔다니! 도달 성공.

NAMASTE(나마스테; 신에게 가호를!). 이 글자가, 참 감사하게도 와닿았다.


사진을 봐선 모를 수도 있지만 위의 내 표정들은 목적지에 도달하고, 올라올 때의 힘든 역경을 넘기고 밝게 쥐어짠 모습이다. 고산병이 그때 절정이었던 것이다.

'여기 트레킹은 그리 힘든 게 아닌데, 고산병 증상이 바로 이런 거구나...'

여기 도착 후에 몇 분간 그냥 앉아서 멍하니 쉬었던 거로 기억한다. 그 순간에 발걸음이 왜 그렇게 안 떨어지던지. 그리곤 사진 찍는 사람들이 다 빠졌을 때, 억지로 재빨리 가서 찍었던 모습이다.


이제 위의 롯지로 올라가는데 왜 도보 5분 정도의 거리가 멀어 보이고, 빨리 쉬고 싶고, 점심때가 됐는데 왜 이리 입맛이 없던지... 바로 그놈의 고산병 증상이 이렇다. 난 체감을 하면서도 내가 아버지를 이끌면서 갔기에 애써 태연한 척을 하면서 올라갔지만, 라즈에겐 종종 말했던 터라 그는 알았다고 했다. 지금 그때 사진들을 보니 음식 사진은 없고, 영수증 사진만 있다. 확실히 컨디션이 별로여서 음식 사진도 안 찍었던 거다. 기억을 더듬어, 그때 롯지에 짐을 풀고 다이닝룸으로 가서 점심을 주문하는데 또다시 갈릭 수프를 먹어야 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괜찮으셔서 토마토 치즈 스파게티를 시켜드렸고 잘 드셨다. 난 갈릭 수프와 스파게티를 아주 천천히, 그것도 꾸역꾸역 먹었던 기억이 아, 이제야 생생하게 났다.


"Raj, Am I OK?" (라즈, 나 괜찮은 거지?)

"Yeah, You are OK!" (응. 형 괜찮아 보여!)


라즈는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난 많이 추웠고, 입맛도 없고, 뭘 하고 싶은 기운도 없는 등 컨디션이 영 아까 데우랄리에서 출발할 때의 내가 아니었다. 그런 상태로 식사를 대충 마치고 ABC(Annapurna Base Camp) 주변을 둘러보러 일단 나갔다.

동상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전설적인 인물 故 박영석 대장님

2011년 10월 18일 박영석 원정대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산(8,091m) 남벽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도전한 등반 도중 6,500m 지점에서 통신이 두절되며 실종되었다. 계속되는 수색에도 박영석 원정대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던 수색대와 유족은 10월 30일 안나푸르나의 베이스캠프에서 위령제를 올렸다...(중략) [네이버 지식백과] 박영석[朴英碩] (두산백과)

故 박영석(신동민, 강기석) 원정대 위령탑

숙연한 마음으로 고인의 넋을 기려드렸다.

안나푸르나 남봉으로 기억
오른쪽 위에 보이는 건 아마 마차푸차레(6,997m)의 높이 솟은, 피시 테일이라 불리는 봉우리. 그리고, 아버지

ABC에서 언덕에 올라가 좀 둘러보고, 이내 롯지로 내려와 룸으로 갔다가 추워서 오히려 사람이 많아 따뜻한 다이닝룸으로 다시 갔다. 라즈가 낮잠을 자면 신경이 급격히 바뀌어 안 좋다고 했고, 체온도 여전히 춥게 느꼈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앉아 쉬면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고산증세가 더 나아지지 않았다. 신경도 날카로워져서 혼자 있고 싶었던 것도 같다. 그러니 라즈는, 가만히 있는 게 고산에 좋지 않으니 가볍게 주변을 산책하는 등의 운동을 하는 게 좋다고 했다. 그 말에 난 한두 번씩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고 왔다. 



와, 이래서 히말라야 하는 거구나. 엄청난 광경을 보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고, 그 순간에도 감사했다.

고산증세엔 가만히 있기보다 가볍게 운동을 하는 게 좋다

그러니, 어느새 원 상태로 돌아왔다. 신기한 일이었다. '내가 뭘 했다고?'

고산병엔, 가벼운 운동도 특효를 발휘한다.


ABC의 몇 곳 없는 롯지

롯지는 몇 곳 없는데, 트레커들은 항상 올라올 테니 인기가 많을 ABC의 롯지들. 성수기 때는 다이닝룸에서 껴서 많은 트레커들이 자기도 한다고...


ABC에서의 하룻밤을, 많은 분이 추천해주셔서 일정에 필수로 넣었었다.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데우랄리 롯지에서 만난 한국 분들과 또 만찬

아까 낮에, 데우랄리 롯지에서 만났던 한국 분들을 다시 만났고 6시 25분쯤 저녁을 또 같이 먹었다. 다행히 입맛이 돌아왔었고, 이 롯지는 개인적으로 음식이 내 입맛에 맞기도 했다. 늘 맛있었던 메뉴인 감자 로스티, 피자, ㅅ라면(팔았던 기억이 난다), 또 볶음밥 등 다양하게 각자 시킨 음식들을 나눠 먹었는데 정말 좋았다. 12시 전에 일찍 도착한 사람, 오후 좀 늦게 도착하신 분이 있었지만 누가 먼저 빠르게 올라갔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날 우린 각자 목표했던 ABC에 갔고, 그 순간에 모두가 행복했다는 것이 아닐까?


여기선 단체로 오지 않으면 한국인 단체를 보기 어렵고, 대체로 외국인이 많다. 우린 운이 좋아 한국인끼리 만난 것이다. 센스 있는 한 친구가 엄지를 척 들어주었다.

리셉션에서 이렇게 주문을 받고, 계산은 종합해 후불로 하는 편 / 네팔 현지식인 달밧 조리 중

저녁을 천천히 다 먹고 보니 7시 20분. 이미 밖은 어두워졌는데 라즈가 고산병에 대비해 너무 일찍 말고, 9시 이후에나 잠에 들라고 했는데 시간이 1시간 반 이상이나 남았다. 이를 닦고 간단히 세면을 하고, 내일 하산할 준비로 짐도 한 번 정리하고도 시간이 남아 밖에 나와 하늘을 보니 와... 이런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조명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까비 별 샷

이 순간의 베스트 컷을 남기기 위해, 별과 설산과 함께 촬영하려고 내 카메라와 일행 상윤이의 삼각대, 정현 누나의 센스를 활용했다. 도중에 설산에 비쳐 있던 아름다운 별들의 모습을 보면서 들떴던 우리들의 소리에, 텐트에서 자려던 사람들은 조용히 해달라는 경고도 받았다. 하지만 우린 수 십여 분간 베스트 샷의 촬영 자리를 잡고, 모드를 세팅하는 등의 노력 끝에 결국 '히말라야 설산 속의 별'을 촬영해냈다.

고생 끝에 남긴, 그러나 행복하게 촬영했던 히말라야에서의 하룻밤!


이걸 촬영하고 행복함에 겨운 그 순간, 우리 일행은 조용히 해달라는 저 텐트 사람들의 민원에 못 이긴 척 우리의 룸으로 들어갔다. 룸은 6인이 잘 수 있는 침대 도미토리로 돼 있다. 아버지는 피곤하셨는지 이내 나만 들릴 정도로 코를 골며 잠에 드셨는데, 잘 잠드셔서 다행이었다. 반면에 난 피곤했지만 바로 잠에 들기도 아까웠고, 잠이 오지도 않았었다. 그저 그 순간 모든 것에 감사했고, 그걸 오래 느끼고 싶었다. 눈물이 나려고도 했다.


한편, 큰 누님 한 분이 종종 뒤척이시고 깨시며 늦게까지 잠에 들지 못하셨는데 이 역시 고산병에 속하는 증세인 거 같았다. 난 걱정도 돼서 심하시면 가이드를 통해 처방을 받으시길 권해드렸었고, 그렇게 해당 가이드에게 말씀을 듣고 오셨던 거로 기억한다. 다행히 다음날 잘 일어나긴 하셨지만, 밤에 고산병이 크게 오면 내려가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기에 증세가 올 때 바로 가이드랑 상의를 해서 잘 대처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 전에 2~30대 여성으로 보이는 분의 여행 후기를 봤는데, 고생해서 ABC에 오후 3시경에 도착했지만 고산병이 심해져 심하게 고생을 하시다가 밤 9시경에 MBC로 다시 내려갔고 그곳에서 거짓말 같이 쌩쌩해지셨다고 했다. 난 이분이 참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때 난 잠자리에서 뒤척이며 내일 일찍 하산하여 목적지까지 갈 계획을 그리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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