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 인생도 내려갈 때가 더 중요하기도 하다

희랑 부자의 네팔 히말라야 ABC 트레킹 #여행 7일(트레킹 5) 차

7일 차(트레킹 5일)
ABC(4,130m; 트레킹 코스 정상)-> 촘롱(2,170m) 숙박

제목의 내용은, 엄마가 자주 해오신 말씀. 실로 그렇지 않나 싶다.


약간의 고산병 증세가 와서인지 간밤에 조금은 잠을 뒤척였다. 나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다른 분들도 이따금씩 헛기침을 하시면서 깊게 주무시는 거 같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증상이라고 하니 심하지 않으면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튼 그날 아침엔 6시 전에 잠에서 깼다. 곧 6시 반에 식사 후 7시에 내려갈 예정이었다.

ABC의 중간인 센터 부분
안나푸르나 히말(Annapruna Himal)로 기억하는, 가장 맘에 들었던 컷
히말라야 ABC(Annapurna Base Camp) 일출 촬영

일어나 간단히 씻고 아버지와 함께 가볍게 주변을 산책하며 몸을 풀어주었고, 아버지 사진을 이곳저곳에서 찍어드렸다. 지금 보니 찍어드린 게 은근히 많아 다행이다. 역시, 촬영이 가능한 건 그 순간뿐이기 때문에 원하는 대로 많이 찍어두어야 후회를 안 남기게 된다. 이렇게 코로나가 올 거라는 것을 누가 알았는지. 나도 그렇지만 특히 아버지는, 지금도 성실하게 일을 하고 계시는데 이 사진들을 보면서 일상을 더 잘 버티실 수 있길. 곧 사진앨범을 제작해 선물해드릴 계획이다.


숙소로 돌아와 빠르게 짐을 정리해 내려갈 채비를 해놓고 식사를 했다. 다행히 어제보다 컨디션이 많이 좋아져서 입맛도 돌아왔고 이제 또 한 번의 호흡이 긴 하산 여정으로 트레킹해야 하기에 충분히 먹어둬야 했다. 계란야채 볶음밥과 삶은 계란 2개, 데운 물을 시키고 가져간 컵라면 1개로 우리 부자의 충분하고 훌륭한 한 끼 식사를 해결한다. 과식도, 부족하게 먹어도 안 된다. 점심을 먹을 때까지 힘을 낼 수 있도록 적절하게 먹어야 한다.


4~5일 차 정산내역: 4360R(43,600원 정도)
이곳은 와이파이가 안 된다고 가이드가 그랬으나, 다른 롯지엔 된다고 쓰여있는 곳도 있었으니 참고


라즈의 요구대로 정확히 7시 전에 식사와 하산 준비, 계산까지 다 마치고 하산한다. 만났던 한국 일행분들께 인사를 하고, 서둘러 긴 하산길에 나섰다.


2019년 목표를 적었던 글

말과 글은 힘이 세다. 얼마 전부터 난 꼭 아버지를 모시고 히말라야에 오겠다고 누누이 주변에 말을 하고, 이렇게 기록을 해두었었다. 결국, 이렇게 올해 그리고 평생의 버킷을 이룰 수 있어 너무 가슴이 벅차게 감사하고 행복했다. 도와주신 분들께도 감사했던 생각이 다시금 들었던 때.

나마스테! 시간이 흘러 더 늦기 전에 아버지를 모시고 올 수 있어 참 다행이고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우린 축지법을 쓰듯이, 이내 정말 빠르게 내려갔다.

길에서 만난 양 떼

종종 들어봤을 검은색 야크(Yak)는, 보통 고산 4천 m 이상에서 볼 수 있다고 해선지 몇 마리 못 봐서 아쉬웠다

ABC(4,130m) - MBC(3,700m) 45분 소요. 난이도 2
트레킹에서 종종 힘을 준 ABC초콜릿 on the ABC...

트레킹에서 종종 힘을 준 초콜릿. 글자가 나오게 찍었어야 했는데... 아쉽다. 옥의 티!


MBC(3,700m) - 히말라야(2,920m) 2시간 소요. 난이도 3

이 구간 계단이 가팔랐다. 정말 바로 앞에 가던 트레커가 내 눈앞에서 미끄러지기도 했다. 하산길에서 사고가 잦은 만큼 특히 조심해야 할 구간

<산도 인생도 내려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by 산악인 엄홍길
무엇보다 잘 내려와야 다른 봉우리에 오를 수 있어요. 인생을 살다 보면 늘 승승장구할 수는 없습니다. 오르막이 있는가 하면 내리막도 있고, 때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합니다. 언젠가 올 기회를 기다리며 몸을 숙이고 기다려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시도조차 못 해보고 포기해야 하는 순간도 있지요. 저 또한 그랬습니다. 기회는 다시 옵니다. 잘 내려와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낳은 산악계의 세계적인 유명인사. 히말라야 16좌 등반에 성공한 엄홍길 대장의 책에서 읽었던 문구가 생각났다. 어머니가 내게 평소에 종종 말씀하시는 내용이기도 한데,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히말라야(2,920m) - 어퍼도반(2,650m) 45분 소요. 난이도 3.5
잠시 누워 자다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퍼도반(2,650m) - 밤부(2,340m) 1시간 소요. 난이도 2.5
롯지마다 맛의 차이가 좀 있었던 볶음면/ 어느 롯지나 맛이 좋고 무난했던 피자

아버지랑 먼저 나온 피자를 맛있게 먹고 보니, 면이 나오기도 전에 거의 다 먹고 배가 불러왔다. 면이 나올 때 즈음엔 이미 우리 부자는 이미 배가 다 불러있었고 피자도 한두 조각만 남았었다. 그때 마침 옆에서 쉬고 있던 한 트레커가 "힘들다"라고 하시는 얘기를 듣고, 반가워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인도에서 일하고 있는 분인데 휴가로 이곳에 오셨다고 했다. 마침 그분은 이제 음식을 시킬 거라고 하셨기에, 면을 피자와 함께 그냥 드리려고 했다. 다행히 면을 드시겠다고 했는데, 하지만 롯지에서 1인 1 주문 이상은 해야 했기에 음료를 시켜주셨고 그거로 우리 부자는 250R(2,500원)의 귀한 콜라를 나눠마실 수 있었다. 이분도 ABC 코스로 다녀오신다고 했던 거 같은데, 무사히 잘 다녀오셨으리라 믿는다.


5일 차 점심 - 1,110R
우리가 거쳐온, 저 멀리 보이는 롯지



시누와 도착
밤부(2,340m) - 시누와(2,350m) 1시간 소요. 난이도 3.5.

높이는 비슷하지만 꽤 많은 계단을 올라갔던 거 같고, 좀 힘들게 느껴지기 시작했었다

시누와도 촘롱처럼 몇 군데에 걸쳐 롯지들이 많은 편으로 기억(그래서인지 여긴 'REAL SINUWA'라고 쓰여있는 듯)한다.


굉장히 힘들었던 구간인 시누와-촘롱

여기다. 저 왼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위의 롯지까지 올라가야 했다

너무 빠르게 내려왔던 만큼 체력이 많이 닳아있었는데, 내려왔던 그만큼 돌아가려면, 다시 올라가야만 한다. 내리막길이 있었다면 다시 오르막길이 있다.


크! 그래도 절경이 기가 막혔다
아버지는 다행히 계속 잘 가고 계셨고

반가웠던, 다리도 다시 만나 타고 돌아갔다. 이후 촘롱까지 계속 오르막길이다.



올라와 쉬면서 찍은 이 구간! 굉장히 힘들었던 구간이다. 개인적으로 난이도 4~4.5를 준다.
너무 힘들어 정말 '한 걸음'씩 걸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던 곳. 갈 때는 내리막길이고 짐이 훨씬 무거웠음에도 빠르게 갔었는데, 돌아올 땐 빨리 내려왔다 해도 이렇게 힘들 수가? 어느덧 트레킹도 5일 차. 분명 갔을 때보다 체력도 많이 소진되었고 고산병도 겪었었으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지만 생각보다 힘이 나지 않았다. 그땐 이미 하산길이었으니 고산병과는 상관없고 체력과 정신력의 문제였을 거다.


더 천천히 갔더라면 그리 부담은 되지 않았었을 텐데, 빨리 가야 한다는 급한 마음이 나의 체력에 더 부담을 줬던 거 같다. 하지만 최대한 마큐로 빨리 가야 내일 늦지 않게 포카라에 도착하고,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를 놓치지 않을 것이었기에 일정상 어쩔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때까지 잘 갔지만, 그날 밤에 촘롱에서 잘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긴장도 풀려 다리에도 영향을 줬었나 보다. '내가 극기훈련을 하고 있나?'이 생각까지 들면서 해병대에 입대해서 훈련을 받았던 그 순간들까지 떠올랐다. 해병대 교육훈련단은 대한민국 군대 중에서도 빡센 군기로 이름난 곳이고 그만큼, 내 군 생활 통틀어서 가장 힘들고 다시 하고 싶지 않았던 훈련들을 했던 곳이다. 매일같이 오전 5km 정도 구간의 구보도 했던 기억도 난다. 그걸 어떻게 매일 하냐고? 실제로 했다. "못하면 해병이 아니다!"라는 교관의 훈육하에... 난 처음부터 한 번의 낙오도 없었고, 오히려 끝에는 기록이 더 좋아졌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쳤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러니 한편으로 그때를 생각하며, '천천히 그러나 한 걸음씩'올라갔다. 위의 계단 사진을 넘고 촘롱 마을에 다다라서도 한참을 또 올라갔지만, 결국 어두워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는 미리 올라가 저만치에서 크게 손을 흔들며 우리를 환영하던 라즈를 보고, 더 힘을 내서 올라갔다. 난 라즈를 보자마자

"Oh my god! Shit course... TT"

라고 하니, 라즈는 웃으면서 잘 와주었다며, 특히 아버지에게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리면서

"아버지 짱(zzang)!"

이라고 해주었다. 아무튼, 난 너무 지치고 입맛도 없었던 나머지

"I have to eat Korean food. 한식, We must eat!"


저녁은 꼭 한식을 먹어야 한다고, 한식이 되는 롯지에 가자고 했다. 트레킹 내내 한식이 되는 롯지를 따로 요구하진 않은 우리 부자. 하지만 처음으로 라즈에게 요구하는 나의 부탁이었다. 라즈는 흔쾌히 알았다며, 한식이 되는 롯지로 우릴 데려가 주었다.


촘롱 피쉬테일 롯지/ 시누와(2,350m)-촘롱(2,170m) 2시간 정도 소요. 난이도 4~4.5

이제, 춥지 않은 기온을 체감하며 거의 다 내려왔다는 안도를 뒤로한 채 롯지 안에서 쉬면서 저녁 식사만을 기다렸다. 아버지도 계단에 오를 때 꽤 힘드셨다고 했지만 내색을 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별다른 이상도 없다고 하셨다. 그래야지. 그래야 '희랑 여행사' 계획이 완벽하지... 역시 아버지는, 짱이셨다. 마음이 더욱 놓였다.


사실 나중에 후문으로 들었을 때, 아버지도 여기랑 ABC로 올라갈 때 많이 힘드셨다고 했다. 아들 앞에서 아프거나 힘든 티를 내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런 것이, 아버지인 것일까...


김치찌개가 된다는 말에 얼마나 반갑던지!

참치찌개였으나 그래도, 훌륭한 찌개와 나름 괜찮게 지어낸 밥으로 한식을 잘 재현해주었다.


촘롱에선 와이파이도 잘 터져 며칠 만에 트레킹 소식을 SNS에 올릴 수 있었다.
촘롱 Fish tale Guest House 실내

마침 라즈 친구가 롯지 대표라 하길래 남은 라면 등의 음식들과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었더니, 그는 인삼차를 챙겨주었다. 이 인삼차 하나로, 물의 섭취와 인삼에 든 성분을 통해 내 심신을 달래주었다.


라즈 & 그의 친구 Gurung 구룽족 Bijaya와 함께

맛있게 저녁을 다 먹고 라즈, 비자야와 함께 여러 이야기를 더 나누면서 다시 언제 올지 모를, 히말라야 트레킹의 마지막 날 밤을 아쉬워했다. 또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되면 이곳으로 다시 오겠다는 말과 함께. 이 높이에선 별은 잘 보이진 않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히말라야 산맥의 밤하늘을 보며 감사했던 그날을 여전히 난 또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이날 역시 아버지도 행복한 추억으로 가슴 한편에 두고두고 담아두실 것이다. 그래. 그거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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