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북에도 없던 여행지였지만, 그날 또한 즐거웠다
스트라스부르 [ Strasbourg ]
요약: 프랑스와 독일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라인강을 건너면 독일 도시인 케흘이 나온다.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이 도시는 음식, 언어, 문화 등에서 독일과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많은 비유럽 국제기구들의 소재지로, 파리 다음으로 국제회의와 심포지엄이 많이 개최되는 프랑스 제2의 도시다.
개요
스트라스부르는 비즈니스, 상업, 문화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트라스부르는 알자스의 주요 도시로서 전통적 역할 외에도 유럽의회, 유럽평의회, 유럽인권재판소 등을 포함한 많은 유럽의 기관 소재지이기도 하다. 스트라스부르에는 여러 개의 대학이 있다.
이 도시는 또 라인강 항법중앙위원회, 국제인권연구소와 같은 많은 비유럽 국제기구들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파리 다음으로 국제회의와 심포지엄이 많이 개최되는 프랑스 제2의 도시다.
스트라스부르는 프랑스-독일 문화가 혼재되어있는 도시로, 수세기 동안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문화적 가교였고 특히 현재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스트라스부르 대학을 통해 가톨릭과 개신교 문화의 공존을 이루었다. 또 프랑스에서 가장 큰 이슬람 예배 장소인 스트라스부르 그랜드 모스크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는 제조업과 공학의 중요한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도로, 철도, 수로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스트라스부르 항은 독일 두이스부르크에 이어 라인강에서 두 번째로 크고 낭트, 루앙, 보르도에 이어 프랑스에서 네 번째로 큰 민물 항이다.
또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요하네스 멘텔린, 하인리히 에게스테인 등의 선구자들과 함께 인쇄 산업 최초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이 도시의 긴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는 1349년(스트라스부르 대학살), 1518년(창궐하는 전염병), 1793년(테러의 시대), 1870년(스트라스부르 포위), 그리고 나치가 점령한 1940~1944년(유대인 뼈 수집과 같은 악행) 등이었고 영국과 미국의 폭격도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트라스부르 [Strasbourg] (유럽지명사전 : 프랑스)
쁘띠 프랑스 [ Petite France ]
스트라스부르의 대표적인 명소. 16~17세기에 지어진 목조 골재 건물이 남아있는 지역으로 구시가지에서 서쪽 방향으로 10분 정도 가면 나온다. 목조 건물은 중세시대 알자스 지방의 전통 건물로 독일 가옥의 영향을 받았다. 현재는 내부 리모델링 외에는 다른 일체의 공사를 할 수 없도록 보호되고 있다.
과거 이곳은 종교탄압으로 인해 개신교인들이 많이 거주했는데, 그 당시 힘든 직업 중 하나인 무두쟁이를 업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주택 대부분이 가죽을 말리기 좋도록 넓은 지붕으로 되어 있다. 이 지역의 이름은 쁘띠 프랑스(Petite France)로 '작은 프랑스'라는 귀여운 어감의 뜻이지만 이름의 유래는 그렇지 않다. 과거 쁘띠 프랑스가 있는 지역에 매독에 걸린 병사들의 병원이 있어 독일인들이 조롱과 비하의 의미로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다.
쁘띠 프랑스 지역을 산책하다 보면 재미있는 풍경이 있다. 유람선이 지나다니는 운하의 상 · 하류 수면 차를 맞추기 위한 갑문이 있는데 배가 지나갈 때마다 여닫으며 수위를 맞춘다. 쿠르베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17세기에 세워진 보방댐 풍경도 놓치지 말자. 운하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기념품 가게에서 'cigognes'이라 불리는 황새 인형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산책을 하다 보면 황새가 자주 보이는데 알자스 지역의 상징이라고 한다.
황새를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 건물 조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알자스에 300여 쌍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황새가 있다. 프랑스 중세시대에 매우 흔한 새였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황새의 수가 급격히 감소해 멸종 위기에 처했다. 프랑스 정부의 보존 조치가 수행되어 5개 지역에서 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스트라스부르 지역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쁘띠 프랑스 [Petite France]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여행)
바덴바덴 [Baden-Baden]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에 있는 도시.
슈바르츠발트의 오스강(Oos 江) 중류를 따라 자리잡고 있는 도시로 유럽에서 유명한 온천 휴양지 가운데 하나이다. 공원도 많으며 1821∼1824년 건설된 대규모 카지노도 있다.
3세기에 로마의 요새로 건설되었다. 광물이 함유된 온천수는 로마인들도 즐겨 사용하였으며, 로마 시대 목욕탕의 유적도 발굴되었다. 이들 유적은 황제 카라칼라(Caracalla) 시대에 스트라스부르성에 주둔하던 군대를 위해 건설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을은 한때 폐허가 되었으나 1112년 바덴 후작의 거성이 되어 18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1689년 철저하게 파괴되었다가 다시 재건되어 프랑스혁명 때는 난민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온천 휴양지로 유명해진 것은 1808년부터이지만 나폴레옹 3세 시대인 1850~1860년대에 유럽 귀족들의 휴양지가 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주요 건축물로는 카지노, 현대식 목욕탕, 후작들의 묘지가 있는 슈티프츠키르헤(Stiftskirche:지금은 교구 성당), 15세기 건설된 노이에스슐로스(Neues Schloss), 예전의 후작과 그뒤 대공의 궁전이던 성 등이 있다. 지금은 역사 박물관이 된 이 성의 유적 가까이에는 1254년 창립된 리히텐탈수녀원(Lichtental Convent)과 1863년 건립된 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1988년 제24회 올림픽경기대회를 한국의 서울에서 개최할 것을 결정(1981년 9월 30일)한 곳이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덴바덴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