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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3_스트라스부르(프티프랑스), 바덴바덴

가이드북에도 없던 여행지였지만, 그날 또한 즐거웠다

다음날, 9시 반쯤 숙소를 나섰다. 그날은 프랑스와 독일의 경계선, 프랑스 관할인 스트라스부르 시에 있는 예쁜 명소라는 쁘띠프랑스와 독일의 온천 도시라는 바덴바덴을 다녀오기로 했다.

평일 오전 10시 40분의 독일~프랑스 경계선의 열차 안

카를스루에 역에서 스트라스부르 역까지는 1시간 반 정도.

천 년이 넘었다는, 대성당 앞에서. 사진을 남겨준 그녀에게 고맙다
스트라스부르 [ Strasbourg ]
요약: 프랑스와 독일의 경계에 위치해 있다. 라인강을 건너면 독일 도시인 케흘이 나온다.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이 도시는 음식, 언어, 문화 등에서 독일과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많은 비유럽 국제기구들의 소재지로, 파리 다음으로 국제회의와 심포지엄이 많이 개최되는 프랑스 제2의 도시다.

개요
스트라스부르는 비즈니스, 상업, 문화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트라스부르는 알자스의 주요 도시로서 전통적 역할 외에도 유럽의회, 유럽평의회, 유럽인권재판소 등을 포함한 많은 유럽의 기관 소재지이기도 하다. 스트라스부르에는 여러 개의 대학이 있다.

이 도시는 또 라인강 항법중앙위원회, 국제인권연구소와 같은 많은 비유럽 국제기구들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파리 다음으로 국제회의와 심포지엄이 많이 개최되는 프랑스 제2의 도시다.

스트라스부르는 프랑스-독일 문화가 혼재되어있는 도시로, 수세기 동안 프랑스와 독일 사이의 문화적 가교였고 특히 현재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스트라스부르 대학을 통해 가톨릭과 개신교 문화의 공존을 이루었다. 또 프랑스에서 가장 큰 이슬람 예배 장소인 스트라스부르 그랜드 모스크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는 제조업과 공학의 중요한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도로, 철도, 수로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스트라스부르 항은 독일 두이스부르크에 이어 라인강에서 두 번째로 크고 낭트, 루앙, 보르도에 이어 프랑스에서 네 번째로 큰 민물 항이다.

또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요하네스 멘텔린, 하인리히 에게스테인 등의 선구자들과 함께 인쇄 산업 최초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이 도시의 긴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는 1349년(스트라스부르 대학살), 1518년(창궐하는 전염병), 1793년(테러의 시대), 1870년(스트라스부르 포위), 그리고 나치가 점령한 1940~1944년(유대인 뼈 수집과 같은 악행) 등이었고 영국과 미국의 폭격도 있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트라스부르 [Strasbourg] (유럽지명사전 : 프랑스)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 이 도시, 다시 그 주변으로 간다면 도시 곳곳에 방문해 제대로 느끼고 싶은, 내가 특히 선호하는 도시이다. 지금 다시 이유를 생각해보니 이랬다. 일단, 운하가 있어야 한다. 예쁘기 때문이다. 둘째, 교통이 편리해야 한다. 셋째, 명소가 많아야 한다. 명소가 많다는 건 그 도시가 가진 사연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 아닐지. 이런저런 이유를 더 덧붙일 수 있겠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건,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 좋으면 앞의 내용이 다 상쇄될 수도 있다는 것... (응?)


아무튼, 이 도시 예쁘기만 한 줄 알았었는데 도시 정보를 찾아보니 그 이상이다. 매력있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쁘띠 프랑스 [ Petite France ]
스트라스부르의 대표적인 명소. 16~17세기에 지어진 목조 골재 건물이 남아있는 지역으로 구시가지에서 서쪽 방향으로 10분 정도 가면 나온다. 목조 건물은 중세시대 알자스 지방의 전통 건물로 독일 가옥의 영향을 받았다. 현재는 내부 리모델링 외에는 다른 일체의 공사를 할 수 없도록 보호되고 있다.

과거 이곳은 종교탄압으로 인해 개신교인들이 많이 거주했는데, 그 당시 힘든 직업 중 하나인 무두쟁이를 업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주택 대부분이 가죽을 말리기 좋도록 넓은 지붕으로 되어 있다. 이 지역의 이름은 쁘띠 프랑스(Petite France)로 '작은 프랑스'라는 귀여운 어감의 뜻이지만 이름의 유래는 그렇지 않다. 과거 쁘띠 프랑스가 있는 지역에 매독에 걸린 병사들의 병원이 있어 독일인들이 조롱과 비하의 의미로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다.

쁘띠 프랑스 지역을 산책하다 보면 재미있는 풍경이 있다. 유람선이 지나다니는 운하의 상 · 하류 수면 차를 맞추기 위한 갑문이 있는데 배가 지나갈 때마다 여닫으며 수위를 맞춘다. 쿠르베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17세기에 세워진 보방댐 풍경도 놓치지 말자. 운하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기념품 가게에서 'cigognes'이라 불리는 황새 인형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산책을 하다 보면 황새가 자주 보이는데 알자스 지역의 상징이라고 한다.

황새를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 건물 조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알자스에 300여 쌍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황새가 있다. 프랑스 중세시대에 매우 흔한 새였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황새의 수가 급격히 감소해 멸종 위기에 처했다. 프랑스 정부의 보존 조치가 수행되어 5개 지역에서 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스트라스부르 지역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쁘띠 프랑스 [Petite France]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여행)
날씨가 조금 흐렸지만 예뻤다
역에서 무거운 짐을 들어줘 고맙다는 한국 여자분이 줘서 맛 보았던 케익

이라고 전에 쓴 기록에 적혀있었다. '아하, 이미 역에서 만나서 같이 돌면서 여행을 했었던 거구나!' 그러니 내 사진도 있었고, 좋은 기분으로 여행을 했었고 그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었던 듯하다.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렇듯, 그때 어떤 사람과 시간을 보냈는지가 여행지의 좋고 나쁜 기억에 크게 좌우한다.

쁘띠프랑스 주변만 3시간 정도 관광을 한 이후 난, 그녀에게 인사를 한 후 독일 바덴바덴 도시로 향했다.



스트라스부르 역에서 바덴바덴 역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


바덴바덴 [Baden-Baden]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에 있는 도시.

슈바르츠발트의 오스강(Oos 江) 중류를 따라 자리잡고 있는 도시로 유럽에서 유명한 온천 휴양지 가운데 하나이다. 공원도 많으며 1821∼1824년 건설된 대규모 카지노도 있다.

3세기에 로마의 요새로 건설되었다. 광물이 함유된 온천수는 로마인들도 즐겨 사용하였으며, 로마 시대 목욕탕의 유적도 발굴되었다. 이들 유적은 황제 카라칼라(Caracalla) 시대에 스트라스부르성에 주둔하던 군대를 위해 건설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을은 한때 폐허가 되었으나 1112년 바덴 후작의 거성이 되어 18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1689년 철저하게 파괴되었다가 다시 재건되어 프랑스혁명 때는 난민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온천 휴양지로 유명해진 것은 1808년부터이지만 나폴레옹 3세 시대인 1850~1860년대에 유럽 귀족들의 휴양지가 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주요 건축물로는 카지노, 현대식 목욕탕, 후작들의 묘지가 있는 슈티프츠키르헤(Stiftskirche:지금은 교구 성당), 15세기 건설된 노이에스슐로스(Neues Schloss), 예전의 후작과 그뒤 대공의 궁전이던 성 등이 있다. 지금은 역사 박물관이 된 이 성의 유적 가까이에는 1254년 창립된 리히텐탈수녀원(Lichtental Convent)과 1863년 건립된 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1988년 제24회 올림픽경기대회를 한국의 서울에서 개최할 것을 결정(1981년 9월 30일)한 곳이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덴바덴 (두산백과)

역에서 내려, 주변 사람에게 길을 물으며 버스를 타고 관광지라는 곳으로 갔다.

시내에 이렇게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유럽 전역의 부유하고 유명한 이들이 모여드는 상류 사회 모임의 장소였다는 바덴바덴.

쿠어하우스는 이곳의 중심이었다고.


1988년 제24회 올림픽 경기대회를 한국의 서울에서 개최할 것을 결정(1981년 9월 30일)한 곳이 이 주변이라니, 분명 한국과도 유대가 있고 그때 굉장히 의미 있었던 때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88 올림픽 개최 때 세계만방에 대한민국 이름을 떳떳하게 알렸다. 당시 올림픽 개최 전을 후진국에서 개도국으로 넘어가는 시기, 개최 후를 개도국에서 더욱 성장하는 시기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6월 유엔 무역개발회의가 만장일치로, 개발도상국 중 최초로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격상시켰다. 이 사실을 알고 이곳을 다시 보니, 다시금 한국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이 때의 호수 이미지가, 온천 도시라는 이름에 맞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곳곳에 꽤 있었던 숙소

'온천도시'라는 이름에 맞게 숙소 내부에 온천 시설이 잘 돼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나에겐 상관없었다.

그저, 이렇게 시민들이 공원에서 대형 체스를 두고 있는 모습이 여유롭게 보였을 뿐.

내가 여행한 독일 여행지에서는, 이렇게 그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수도 베를린이나 대도시 프랑크푸르트, 뮌헨 등의 업무 중심지에서 열 일하는 독일인을 보고 그들과 소통을 할 때 그들이 나에게 어떻게 대할지는 모른다. 독일인이 가진 진정한 여유란, 아마 그때 나를 대해주는 모습에서 내가 정확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내가 조금 경험한 나라, 도시, 사람 가지고 그 나라, 도시, 사람의 성향을 판단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고 전체를 본 후 그에 근거에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곤  다시 카를스루에 역으로 돌아와
경전철 같은 것으로 갈아탄 후

초저녁쯤 숙소에 도착. 오늘 저녁은 또 사장님께서 정성스레, 백숙과 와인을 준비해주신다고 했었다.

당시 고추가루 등 한식 식자재는 귀했다 / 독일에서 와인은 맥주와 더불어 저렴하고 맛이 좋다
잘 익은 백숙과 와인에 행복했던 그날 저녁

전라도에서 오셨다는 사장님께서는, 서울 촌에서 온 이 유럽여행 초짜 청년을 그날 저녁도 만찬으로 차려주셨다. 맛있는 식사와 더불어 사장님과 나눴던 그날 저녁의 이야기 역시,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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