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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ythingbut Sep 20. 2023

쓰는 동물

글자를 나열한다.


이유는, 글쎄 모른다.


그저 쓰고 쓴다.


오랜 습관처럼.






아마, 목화꽃 보다 작은 손으로 크레용을 붙잡았을 때부터였나. (다소 거창한 표현이지만) 그것이 나의 쓰기의 기원이었다.


나는 종종 그 어설픈 말들이 궁금해진다.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그저 먹고 싸고 자는 단순한 일들을 글자로 표현하려 했는지, 그도 아니라면 심오하고 오묘한 감정들을 내뱉으려 했는지,…


이제 막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어떤 힌트라도 얻을 수 있겠지만, 그 또래의 아이들은 그러한 걸 일목요연하게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이니 결국 영영 모를 일이다.


아무튼 기억 속의 나는 마치 대단한 할 말이 있는 양, 열심히도 글자들을 써댔다.


스케치북에 담던 글자들은 순차적으로 네모 반듯한 깍두기공책으로 이사를 했다.


띄어쓰기를 익히며, ‘아버지가가방에들어가신다’는 일을 막았다. 그래서일까. 아빠는 꼬박꼬박 방에 들어가 버렸고, 나는 차라리 아빠가 가방에 들어가는 게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다행히 고된 연습 끝에 사이에 나는 글자 사이로 틈을 주어 숨을 내쉴 수 있게 되었다.


공책에 그어진 가로 줄들은 점점 더 빼곡해졌고, 나는 점점 더 길게 말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색의 펜으로 글을 쓰는 버릇 탓에 당시의 나의 일기장들은 미적감각은 개에게 줘버린 듯이 알록달록하기만 하다.


그래도 색을 부여한 다는 일이 중요했는지, 나는 다시 무제 노트를 펼쳤다. 하얗게 드넓게 펼쳐진 종이의 표면 위로 촌스러운 색감들을 펼쳐 넣었다 - 마음에는 언어로만은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나는 테두리로 색을 가두어 이미지를 그려댔다. 다시 그림일기장으로 회기 했다.


일기라고 부를 만한 마음의 최종 정착지는 컴퓨터이고, 휴대폰이었다.


이래도 저래도 썼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거나, 발바닥 밑으로 하염없이 꺼져버렸을 때조차도 나는 쓰기를 멈추지 못하고, 악담 같은 것들을 어딘가에 글자로 잔뜩 늘어놓았다. 스스로를 다시 저울질하게 될만한 보잘것없음을 거리낌 없이 적어나갔다. 마치 그것들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대신에 나의 내부에 되새김질하며 아픔을 단단히 고정시키려는 사람처럼 그랬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카페의 창가 자리에 앉아서 귓가에 스치는 재즈선율과 사람들의 재잘거림을 등지고서 글을 쓴다.


만일 지금껏 쓴 글자 하나하나에 무게를 부여한다면, 그것은 나의 몸무게를 월등히 능가할 테다.


맞춤법 검사기의 버튼을 누를 때마다 붉어지는 단어들을 보면 붉은 비가 내리던 어릴 적의 받아쓰기가 자동연상 되는 점을 감안하면, 그다지 글쓰기 실력이 일취월장한 일도 아닌 듯 하지만 그 활동은 무심결에 친근해졌다. 


그랬다. 먹고, 씻고, 자고, 꿈꾸고, 걷고, 숨 쉬는 일 사이에 언제나 '쓰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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