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나는 더 멀리 갔다.
공부를 하겠다는 구실은 그럭저럭 통했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기로 하였다.
실제로 외국어 혹은 여타의 문자를 좋아하기도 했다. 지금도 책상 위에 상형문자 책이 두 권이나 있다 - 나만 알법한 언어를 영위한다는 일에는 묘한 안도감이 있다.
그렇지만 그런 일에 비하면, 나의 외국어 실력은 시시하다. 영어로 유창하게 대화를 나눈다거나 영어로 긴 문장들을 줄줄 써나가거나 영문으로 된 책을 술술 읽어 내려가지도 못한다.
나에게 있어 모국어가 아닌 언어는 일종의 저장소이다. 개인의 고유성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감정이나 생각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데까지만 활용하는 되는 쪽이다. 가령 얼토당토않은 꿈들을 이야기할 때면 영어 단어가 먼저 튀어나온다. 자아가 과하게 포장된 현실성이 없는 꿈일지라도, 그것을 영어로 써두면 이루어 질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스물둘.
나는 휴학을 하고 뉴욕에 갔다.
그곳은 각지에서 온 타지인들이 제 나름의 억양과 느낌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작고 큰 도시였다.
이상하게도 말이 통하지 않아도 즐거웠다.
이방인의 영어에서는 정체성이 묻어났다. 사투리처럼 말하기의 모양새에서 살아온 장소가 드러났다. 서로의 다름이 감지되면 언어의 충돌은 소강상태를 맞이했다. 공존을 위하여 상호 존중을 선택한 일처럼 느껴졌다 - 저 사람이 나와 달라서 나 자신이 유일한 존재가 되었고, 저 사람 또한 나와 다르기 때문에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첫사랑이 있었다.
뉴욕에서 지낸 일 년 간의 감정이었지만, 그것은 칼라풀한 장면으로 나의 마음에 새겨졌다.
아마도 당연하다는 태도로 내게 물어온 말들 덕분이었다.
붉은 벽돌의 집들이 길게 늘어선 길에서도, 농익은 세월에 우람해진 나무들이 빼곡한 센트럴파크에서도, 멋스럽고 감각적이었던 첼시의 쇼윈도 앞에서도, 이런저런 냄새가 풍기던 지하철 안에서도, 그리고 나의 마음 안에서도 그 사람은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를 묻고 물었다.
지금껏 누구도 이렇게까지, 혹은 시시때때로 그랬던 적이 없었던 탓에 나는 적잖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내 적응을 해버렸다.
나는 그런 다정함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살고 나서 돌아보니 뒤로하게 되는 기억들이 있었다 - 어떤 것은 저절로 소멸되었고, 어떤 것은 상대적으로 버거워서 멀찍이 밀어두었다. 하지만 첫사랑의 시간은 힘겨운 헤어짐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좋았던 일로 남아버렸다. 그리하여 나는 이런 게 진짜 사랑이구나 했다.
뉴욕에서, 나는 이래저래 '숫자 둘'의 이로움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