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만일, 내가 어딘가에서 다시 태어났다면, 그곳은 맨해튼이었다. 나는 또 다른 표현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옷을 입는다는 일'로 자신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건 고등학교 때였다.
같은 반 친구였던 상은이는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 그 얘에게는 여벌의 교복이 있었다 - 자신의 몸에 맞추어 줄인 마의와 치마였다.
학교가 끝날 즈음이면, 상은이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깡마른 몸에 밀착되는 교복 차림에 바닥이 얇은 삼선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는 무표정하지만 세상사를 다 알고 있다는 뉘앙스의 얼굴로 교문을 나섰다. 마치 패션 화보지에 등장하는 모델 같았다.
체육복마저도 어디서 구했는지, 선배들이 입던 복고풍의 형광색 추리닝을 입었다.
상은이는 제 나름의 방법으로 모두가 똑같은 차림을 한 우스꽝스러운 배경에서 유유히 걸어 나왔다.
하루는, 상은이의 밝은 톤의 머리칼이 문제시되었다. 염색을 한 게 아니냐는 추궁이 집요하게 이어졌다. 모든 반 아이들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도 상은이는 동요가 없었다.
잠자코 있더니만, 상은이는 다음 날 새까만 색의 칼단발로 등장했다. 묵언의 시위자처럼 큰 소릴 내지 않고서도 얼마든 자신을 견지해 냈다 - 다시는 어떤 선생님도 그 아이의 머리칼을 지적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고, 나도 모르게 그 아이에게 호감을 느꼈다.
대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만큼이나 광장시장과 동대문을 열심히도 갔었다. 무언가를 처음 배울 때 초석이 되는 기본기를 익힌 - 나름대로 고맙고 정겨운 - 장소이었지만, 뉴욕의 백화점만큼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도 백화점은 있지만, 그곳에는 친절이 넘쳤다.
친절하다고 불평을 하려니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어떤 소비자들은 너무 친절하면 사지도 않을 옷을 괜히 입어보지 못한다. 눈치가 보인다.
그런데 뉴욕의 백화점들은 무인매장에 가까웠다. 점원들이 있다 한들 딱히 손님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어슬렁 원을 그리며 돌아다니다가, 지나가는 누군가와 호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안한 느슨함이 있었다.
누구든 옷들을 한 아름 안고서 탈의실에 들어갈 수가 있었고, 입어본 옷들은 제자리에 돌려놓을 필요도 없었다. 반납함은 언제나 수북했고, 그것은 나를 편안하게 했다.
나는 돌체 앤 가바나, 랄프로렌(블랙라벨), 켈빈 클라인,… 한국에서는 엄두도 낼 수 없던 옷들을 마구 집어 들고선, 장정 내 다섯 명도 너끈히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의 탈의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고작 열두 색의 색연필로 그림을 쥐어짜던 손아귀에 어떤 색이든 쏟아붓고 내키는 대로 섞어볼 수 있는 팔레트가 쥐어진 셈이었다. 나는 갈수록 대범해졌다 - 각기 다른 모양새의 옷들이 지닌 촉감과 색감을 양껏 누렸다.
나는 요즘도 기분이 울적한 날이면, 몹시 화려하거나 하양이 비집고 들어올 수 없는 새까만 옷을 입고선 거리를 활보한다. 그러면 민트티 한 잔을 마신 듯 개운했다. 어떤 연유로 내가 차마 내뱉지 못한, 움츠려든 말들은 그러한 방법으로 타인의 시선에 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