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일 년 간의 남은 학기를 채웠다.
졸업을 2주 앞둔 봄이었다.
추위에도 싹을 틔우며 피어나기를 기다리며 생을 머금은 꽃봉오리들이 잠들어있던 그 계절에 친구는 자살했다.
비보를 듣고도,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영문 모를 거짓말로 시간을 끌다가, 그래도 장례식장에는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검은 옷가지를 챙겨 입고서 황급히 집을 나섰다.
그때부터였나, 나의 기억은 파편처럼 흩어져버렸다.
택시를 잡으려다 도로 밖으로 먼저 튕겨져 나가 버린 두 발. 끼익 소릴 내며 멈춰 선 택시. 딸의 영정 사진을 지키는 엄마의 초점이 없는 두 눈. 휑하니 놓인 야속한 흰 꽃 들. 어떻게 죽었는지 술렁이는 목소리들. 공간을 채워대는 울음, 그보다 더 크게 배어든 공허.
한 데 모아지지 않는 조각들에 마음이 까끌거렸다.
그러다 유리창 앞에 섰다.
그 너머로, 관이 보였다.
사람 하나가 너끈히 들어갈 만큼 커다란 것.
관이 불길에 타오르던 순간, 차오른 슬픔이 터져버렸고, 그것은 쉽게 멈춰지지가 않았다.
겨울보다 추운 봄이었다.
장례식이 있었던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서 집으로 돌아오던 장면들이 다 세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떤 것 하나가 유독 새파랬다.
집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관문처럼, 전철에 올라타 멍청이 앉아있는데, 여자아이 하나가 올라탔다. 엄마 손을 꼭 붙잡은 그 아이가 내 앞에 섰다. 그러고는 무엇에 그렇게 신났는지 엄마를 붙잡은 작은 손을 연신 앞뒤로 세차게 흔들어댔다. 그런데 그 모습이 하나도 귀엽지가 않았다. 스스로가 무서울 지경이었다.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기대와 설렘, 그리고 엄마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실린 공중그네는 점점 더 높이 솟구쳤다. 마치 그러한 일들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양.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다.
나는 그날부터 유진이를 생각했다.
돈가스와 돌솥 비빔밥을 시켜서 같이 나누어 먹고, 같이 압구정동에 가고, 밤을 지새우며 조과제를 하고, 같이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던 그날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결국은 왜 그랬는지만 묻고 싶어졌다.
대답하여 줄 사람도 없는데도 그렇게 되어버렸다. 천장에 공허한 질문들이 새겨졌고, 아침이 찾아왔다. 그 아침도 그다음 날의 아침에도 나는 빈칸을 채울 수가 없었다. 유진이가 더 이상 내가 알던 유진이가 아닌 것 같아서, 미안하기만 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에게 다정해서 별명이 ‘엄마’였던 유진이는 그렇게 산산조각이 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