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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ythingbut Oct 04. 2023

밤과 밤

(7화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불안했다.


나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현관문을 잠그지 않은 듯한 기분을 뿌리치지 못하고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문은 이상하리만큼 굳게 잠겨있었다. 손잡이를 두어 번 더 돌려보았는데도 열리지 않았다.


불면이 시작되었다.


어쩌다 두 눈을 감아도 두어 시간이면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걸으면 스르륵 해결될 줄 알았다. 밥도 잘 챙겨 먹었는데 몸무게는 점점 줄었고, 잠은 여전히 오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 엄마는 우스운 일이 생각났는지 몸을 흔들어대며 이야기를 꺼냈다. 식탁 위에 참외는 노랗고 길게 둥그랬고, 엄마의 손에는 과도가 쥐어져 있었다.


엄마는 참외를 깎으며, 어느 밤을 되짚었다. "자다가 목이 말라서 방 밖으로 나갔는데 네가 서 있는 거야. 하얀 치마 잠옷을 입고서. 그 꼴이 딱 귀신이야.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아주 기겁을 했잖아." 그러고는 웃었다. 그러고는 참외를 먹었다.


집안의 공기를 타고 나에게 전해진 그 말들은 어째서인지 내 안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겉을 돌았다. 나는 참외만, 오직 참외만 보려고 했다. 하지만 엄마 손에 쥐어 든 칼날에 심장이 쓸리는 듯했다. 


나의 기억 안에는 그날 밤이 존재하지 않았다. 생뚱맞게 부모의 방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엄마를 놀라게 했다는 아이의 밤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기억한 어떤 것은, 여섯 살이 되던 해의 여름밤이었다.






유치원 캠프였다. 일박 이일로 진행되는 수련회였다. 아이들은 금세 곯아떨어졌지만, 나는 잠들 수 없었다. 양 무릎을 감싸 앉은 채 그저 웅크려 앉아있었다. 네모난 이불속에 쏙 들어간 친구들이 사방으로 격자무늬를 이루었고, 나는 그 수가 너무 많아서 놀랐다. 가만히 밤을 지새우는데, 유치원 선생님이 나에게로 다가왔다.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그러한 호응으로 감정과 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진 탓인지, 나는 그날부터 세상을 인지하고 기억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를 테면, 하얗게 빛나던 선생님의 다정한 얼굴에 비친 나. 






나에게 밤은 유난히 길다.


그렇지만, 어떤 연유로 그렇게 된 일인지 사정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 이전에는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전해 들은 말을 옮겨보면, 우리 집 식구들은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날에 큰집에 갔었다. 때마침 잠들어 있던 갓난아이는 두고 내렸는데 돌아와 보니 경기를 일으키며 울어댔다고,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감정이 부재한 건조한 음성으로 들어버린 간추려진 이야기로는 나를 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자라며, 나는 원하던 남자아이가 태어나지 않아서 나의 돌잔치에는 오지 않았다던 할머니를 알게 되었고, 자신의 어머니와 형에게는 한없이 우호적인 아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성별을 드러나지 않도록 딸아이게게 중성적인 이름을 붙여버린 엄마를 알게 되기도 했다.


인물들이 한데 모이니, 어떤 일이 벌어졌다. 


우리 집 식구들이 딸로 태어난 두 번째 아이를 데리고 간 큰집에는 나보다 먼저 태어난 남자아이가 있었다.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에는 우연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무지에 가까울 정도로 어둠 속에서도 살아 숨 쉬었던 아이의 마음을 모른다. 차 안에 홀로 남겨져 온몸이 들끓을 때까지 울어대던 갓난아이의 마음을 모르고, 또다시 버려진 듯한 공포에 쫓겨 잠들지 못하고 부모의 방문 앞에 섰지만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가만히 멈춰버렸던 아이의 마음도 모른다.


하지만, 온몸으로 온 밤을 겪어낸 나의 몸은 달랐다. 


내가 망각한 그 어둠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양 반응했다. 


지독한 불면은 불안에 대한 기나긴 몸짓이었고, 나는 그러 불면이 으면서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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