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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ythingbut Oct 05. 2023

being

(9화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듬해 나는 시카고로 떠났다.


유학이기도 했고, (가만히 누워서 밖을 응시하다 분명 창 너머에는 다른 세계가 있기를 바라온 탓에) 혼자 다짐한 이민이기도 했다.


영화에 푹 잠겨있던 나는 자연스럽게 ‘film video and new media’ 학과에 지원을 했다. 포트폴리오가 좋은 평가를 받아서 다행히 일 년 남짓 교과목을 듣고 학점을 이수하면 졸업을 하는 조건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타국의 교실은 한국의 것과 사뭇 달랐다. 유명한 이들의 작업 결과물들에 대한 설명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여기서는 정반대였다.


몸을 카펫 바닥에 길게 밀착시켜도 좋을 만한 느슨한 분위기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는, 신발장에 신발이 몇 켤레가 있는지 묻는 질문으로 수업이 시작되었고, 나는 신발장의 사정을 어림잡아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예술대학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당혹스럽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진지한 태도로 내어주는 경청에 나는 점차 동화되어 갔다. 그리하여 나는 유창하지도 않은 영어로도 부끄러움 없이 무언가를 말해볼 수 있었다.


이런저런 수업들을 듣다 보니, 어느새 들기에도 버거운 필름 무비 카메라를 내려두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마우스를 쥐고 있었다. 신기가 발동하였는지, 나는 무엇이든 예술의 도구가 될 수 있다며, 과감히 표현하기 시작했다(이런 활동을 ‘웹아트’라고 간주한다).


하나의 돌멩이조차도 자신의 기분과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고 믿게 된 시기였다.


나 자신을 점점 파고들수록, 양 귀, 양 눈, 그리고 뒤통수 사이의 미지의 공간에 닿아갔고, 결국에는 깊이 잠겨버렸던 말들이 손끝에서 흘러나왔다. 그것은 생경한 경외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순수한 원형도 없는 것만 같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감각들이 형태를 이루었고, 그런 것의 처음과 끝 모두가 예술로 간주되었다. 나는 태연히 세상의 일부가 되었다.






옷을 겹겹이, 다섯 겹까지 껴입어도 바람 끝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영하 삼십 도의 땅에서 문득 고독을 깨우친 날들이었지만, 나는 살아생전 여느 때보다도 진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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