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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ythingbut Oct 06. 2023

할머니의 미소

(10화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시카고가 들썩였다.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기 때문이었다. 고정불변의 것이 무너질 때에 차오르는 환희가 나에게도 전해졌다.


하지만, 나는 미국 시민이 아니었다.


오바마가 당선되던 해의 미국의 경기는 나빴다. 그 결과 자국민 일자리 창출을 위하여 외국인들의 취업이 제한되었다.  졸업 후 미국에 머물며 면접을 보며 지낼 수 있는 일 년 간의 체류 기간은 삼개월로 줄었고,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 미국 시민이 되려던 나의 계획은 순식간에 현실성을 잃었다(하필 그때가 졸업이었다).






나는 엉겁결에 짐을 싸서 한국에 돌아왔다.


그래도 일 년 남짓한 시간의 경험으로 조금은 단단해진 탓인지 그다지 암울하지는 않았다.


심지어는 구인 중이지도 않은 회사를 찾아가기도 했다 - 집에서 먼 파주였다.


규모는 작아도 시야는 넓어 보이는 회사였다. 무어, 결론적으로는 나의 순진함이었다. 아무런 성과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건물 밖으로 나가 새삼스레 주변을 살피니 도로가 텅 비어있었다. 


하는 수 없이 기다리는데, 버스 한 대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정차했다. 그것에 몸을 실으니, 스르륵 긴장이 풀리며 두 눈에 풍경이 담겼다. 그런데 인적과 구조물이 줄어들며 무성히 자라 버린 짙은 녹음이 늘어갔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버스는 유유히 차고지에 정차했다.


다급히 버스 앞으로 나가보았지만, 버스 기사는 나와 같은 사람이 한둘이 있어왔는지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그냥 앉아서 기다리면 다시 돌아나갈 거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긴장을 조이고선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파주는 참 먼 데라는 생각을 할 즈음에 버스가 다시 움직였다. 창 너머로 지나쳐온 풍경들이 거꾸로 돌아가는 테이프처럼 되감겼다.


그런데 어떤 단내가 코끝으로 흘러들었다. 어디선가 맡아본 적이 있는 끈적임이었다. 냄새를 따라 고개를 돌리니 버스 맨 뒤편에 앉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몸집도 소리도 동작도 큰 탓에 버스가 방금 전에 어느 보호시설에 정차한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 단내에 할머니가 실려왔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여태껏 할머니를 단순히 서류상의 관계로 여겨왔기 때문이었다. 원하던 남자아이가 아니라며 돌잔치에 오지도 않은 무정한 양반에게 정을 느껴지지 않는 편이 더 자연스러웠고, 우리 사이에는 엉켜버린 매듭을 풀어낼만한 추억도 없었다.


그나마 뭔가를 회상해야 한다면, 그 기억에는 고양이가 있었다. 어릴 적 나는 할머니 집에 갔을 때 고양이가 무서워서 대문을 잠갔고, 할머니는 고양이는 나무에도 뛰어오른다며 웃었다.


다른 기억 속 할머니는 냉담한 표정이었다. 할머니들은 대개 손주를 이뻐한다는데 내가 본 할머니는 그렇지가 않았다. 걸터앉으려면 발끝에 잔뜩 힘을 주어야 하는, 비스듬한 경사 가진 나무 밑동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할머니가 쓰러졌다.


혼자 살던 할머니는 풍으로 욕실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며 고꾸라졌고, 발견되었을 때는 생명이 위독하였다. 할머니는 그래도 아빠의 지극정성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돌아 나왔다. 퇴원 후에는 일 년 정도 우리 집의 안방에서 지냈는데, 별다른 미동도 없이 누워서 가끔 소릴 내어 필요한 것들을 가리키기만 했다.


마지막 거처는 요양원이었다. 






할머니를 보는 날은 명절날이었다.


요양원에 마련된 가족 쉼터의 테이블 위로 싸들고 간 음식들을 펼쳐놓고 휠체어에 탄 할머니를 중심으로 가족 모두가 원을 그렸다.


하지만 넘어질 때 머리를 크게 다친 할머니는 기억을 잃고 있었다. 손녀들의 이름과 손녀라는 사실을 잊었고, 며느리의 존재도 잊었다. 종국에는 제 아들들마저 잊은 듯보였다.


불과 몇 년 새에 아이가 되었는데, 할머니는 그러한 일에도 이점이 있다는 양 호기롭게 작아졌다. 시시때때로 온갖 감정을 다 얼굴에 드러냈다. 매 순간 들이마신 공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팽창하고 줄어들기를 반복하는 고무풍선처럼.


어떤 날에는 방문객들이 마냥 낯설게 느껴졌는지, 연신 두리번거리며 사방을 경계기도 하였고, 무엇이 제 뜻대로 안 되는 날에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울먹이기도 했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손뼉을 치며 아마도 할머니가 어릴 적에 배웠을법한 노랫가락을 읊조렸다 - 그럴 적이면 나는 내심 할머니가 스스로를 완전히 망각한 게 아니라고 믿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할머니는 나를 바라보았다. 마른 얼굴 위로 드러난 커다란 두 눈망울로 나의 존재가 축복이라는 되는 양 더없이 맑게 웃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잦아지는 대소변의 실수를 가릴 요량으로 덮어지는 인위적인 단내는 점점 진해졌지만, 할머니는 미소는 점점 더 뚜렷해졌다. 






바로 그 내음이었다. 내릴 수 없는 버스 안의 내가 마주한 건, 할머니의 체취이었다.


(아마 나조차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 묻어둔, 몸내에 스민 미소는 달기만 했다. 마치 그저 태어났기에 받는 환대를 기다렸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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