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결혼을 했다.
그리고 잠시 제주도에서 살았다.
(다소 망설이게 되는 이야기지만) 나는 콩나물이 밭에서 자라는 줄로만 알았다. 너른 들판을 채운 노란 콩나물 대가리를 상상했었고, 간혹 마트에서 시루에 담긴 콩나물 더미를 보아도 밭에서 한 움큼 날라다 놓았구나 했다.
제주에서는 늦은 시각이 아니어도, 현문을 열고 밖을 나가면 하늘이 어둑했다. 외국에 산 몇 년보다도 낯설었다.
그곳에는 싱숭생숭한 기분에 걷게 되는 공원길도, 무심히 섞여 들여가면 그만이던 도심의 무심한 인파도, 제각기 홀로 모여든 이들로 가득한 카페도 없었다. 적당히 익숙한 공간이 사라진 시기였다.
결국은 운전대를 잡았다. 도심보다는 훨씬 한산한 도로였기 때문에 나는 - 좁은 골목길에 들어서지 않는 한 - 능숙한 운전자였다.
속도를 내어 달리고 보니, 제주는 어디든 푸르고 파랬다. 야트막한 돌담을 이룬 집 속에 사람이 살았고, 창을 열면 돌과 돌 사이로 바람이 불었고, 바람 끝에는 바다내음이 걸려있었다.
걸을 만한 숲에도 자주 갔다.
계절을 따지지 않고 다니다 보니, 그것의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보게 되었다.
봄꽃들의 채워지는 생의 기운도, 하얗게 피어나는 추위도, 울긋불긋 제 색깔의 찾아가는 잎사귀들의 묵묵함도 좋았지만, 끝내 남은 것은 여름 숲의 푸르름이었다.
풀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무들이 높아만 진다. 푸르른 머리 위로 열기를 머그음 느릿한 여름 하늘이 펼쳐진다. 구름이 유난히 하얗다. 숲의 한 복판에 들어서면 어둠이 내리 운다. 하지만 이내 구름에 가리어진 강렬한 빛이 쏟아진다. 나무들은 하나가 되어 빛을 맞이한다. 극명한 밝음도 어둠도 품는다. 바람이 불어오면, 그것마저 품어버린다. 하나의 덩어리로서.
나는 빛과 바람이 뒤섞인 여름의 푸르른 나무들을 바라보노라면, 절로 한 폭의 추상화가 떠올랐다.
별반 단서가 없어 난해하기 그지없는 그것.
어쩌다 보니 대체로 추상화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추상화의 묘미를 알게 된 것은 김환기의 그림들 덕분이었다.
처음 그의 그림을 보았을 때 나는 그저 경이로웠다. 붓끝에서 번지는 짙고 연한 파랑들이 한없이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그가 하나하나 공들여 찍어낸 점들을 눈으로 좇았다. 그가 무얼 말하려 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리하였는지 궁금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이내 커다란 캔버스를 가득 매운 색들의 집합체는 비경이 되어 나의 마음을 들추어냈다.
몇 번을 보아도 그렇게 되었다. 번번이 무한한 공간감에 빠져들었다.
여름의 숲은 멈추는 법이 없었다. 단일한 푸르름이 되어 시시각각 색을 달리하고, 모양을 달리 했다. 그것은 '마음'이라는 기관과 닮아있었다.
(모기들에게 인기를 누리는 체질인 탓에) 등가교환처럼 피를 내어주기는 했다.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름의 숲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