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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ythingbut Oct 10. 2023

(11화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30. 종국에는 사라질 젊음에 대한 불안과 집착을 동반한 나이였다.


나는 그즈음에 수영을 배웠다. 몸치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운동에는 소질이 없었다 - 걷기만 가능했다. 결국 헤엄치기도 잠시 어푸어푸 물만 마시다 관두었다.






그것에 다시 애정을 느낀 것은 ‘웹아트(아티스트가 되기)’를 단념했을 때였다.


한국에서 와서도 나름 애를 썼다. 퇴근 후나 주말에 작업할만한 여유를 만들어 뭔가를 해보려 하기도 했다.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시간을 더 누려보려고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모드가 전환되지 않았다. ‘자, 이제 작업을 해볼까,’ 하고서 무언가를 뚝딱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그것에 온전히 몰두를 하려면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웹아트는 전시관에 걸릴 수 있는, 판매가 가능한 물리적 산물이 아니었던 탓에 무턱대고 그것만 고집할 수는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만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신변 정리를 하듯이 컴퓨터 파일들을 정리하고 나니 헛헛했다. 영혼까지 탈탈 털린 기분이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대분분의 일들에서도 흥미를 잃었던 탓에, 마음에 무얼 두고 살아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겨우 관심이 생겨난 일은 클라이밍이었다. 차라리 절벽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생존하는 찰나라면 나는 모든 걸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만약 사는 곳 근처에 우람한 바위산이 있었더라면 절벽을 탔겠지만, 아파트와 아파트로 이루어진 주변에는 작은 실내 수영장이 있을 뿐이었다(수영가방과 수영모와 수영복과 수경이 있기도 했다).


단지 그 이유에서 나는 수영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저녁의 수영 강습에 가보니, 중년의 아저씨, 할머니, 직장인, 대학생 등등 모두가 수영모를 쓴 채로 둥근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걸음마를 떼듯이 미끄러운 타일 위를 살금 걸어가 물속에 퐁당풍덩 빠져들었다.


물결이 느껴질 정도로 착 달라붙는 수영복도 낯설었지만, 이내 나의 모든 감각은 숨쉬기에 머물렀다.


물속에서 '음' 소리를 길게 내며 코로 숨을 내뱉고 물 밖에서 '파'하고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호흡을 게을리하면, 입안으로 물이 들어왔다. 아니면, 제 속도를 내지 못했다. 뒷사람의 손이 내 발끝에 닿았다. 


'음파-음파-음파,...' 온통 숨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내가 간과한 사실이 있기도 했다. 그간 신체적 활동을 자체해온 터라서 나의 몸은 단번에 깨어났다. 절벽에 매달릴 필요는 없었다.)






오십 분의 수영 강습이 끝나면 허기가 몰려왔다. 


발길이 저절로 집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편의점으로 향했다.


우유 500ml를 단숨에 마시기도 하고, 어떤 날은 컵라면을 후후 불어 먹었다. 가끔은 맥주 한 캔과 소시지를 사서 집으로 갔다. 대단히 진귀한 음식도 아니었지만, 그것들이 치아나 혀끝에서 잘게 부서져 식도를 지나쳐 위장에 머물를 때면 기뻤다. 


규칙적인 운동을 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살이 쪄버리기도 하였지만 나는 도리어 그 단순한 패턴이 밉지 않았다. 감고 말리기 편하도록, 목덜미가 드러날 정도 짧게 머리를 자르고 기다란 후드티를 샀다. 영락없는 운동인의 모습이 되었다. 

 

서른. 숨을 쉰다는 자각이 물결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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