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공모전, LG패션 마케팅 공모전
오늘은 2014년 3월 2일, 전역 후 막 복학을 한 시기였다. 나와 병기-병기는 대학에서 가장 먼저 친해진 친구이다. 차차 멀어졌지만.-는 전역 이후 취직에 대한 압박을 빠르게 느꼈다. 패션을 전공하고 예술성이 넘치는 아이들 사이에서 취직이라는 현실적인 목표를 조금은 빠르게 느낀 상태였다. 사실은 모두가 취직에 대한 생각은 있었지만 우리 둘이 유난이었던 것이다. 한참을 부족한 학벌, 영어점수 등 많은 것들에서 부족함을 느꼈고 그중에서는 '수상 실적'이라는 항목도 있었다.
"야 공모전 한 번 해볼래?" 병기가 내게 먼저 제안했다. LG패션(현 LF)에서 주최하는 대학생 마케팅 공모전이었다. 패션인을 대상으로 한 콘테스트는 많았지만 대부분이 디자인이었고, 그중에서 비즈니스와 마케팅을 다루는 공모전은 가뭄의 단비였다. 적어도 그때 나와 병기는 MD를 꿈꾸고 있었고 MD의 역량 중에 기획력을 채울 공간이 필요했다. 학교 종합관 복도에서 둘은 그렇게 호기롭게 공모전에 참가하기로 했다.
군대를 다녀오면 뇌가 리셋된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뇌가 너무나도 철저히 리셋되어서, 리셋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지식은 끊긴 지 오래고 주변에 조언을 구할 만한 네트워크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 와중에 디자인과 예술을 추구하는 전공 내부 인원들과는 왠지 모를 벽을 느꼈고, 그렇다고 토익이나 학점 관리에만 집중하는 것은 또 답답했다. 겉으로는 발전을 추구하면서 속으로는 답답했던 게 공모전의 도전 이유였다.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공모전이 아닌, 도피하기 위한 선택이었기에 사실 결과는 뻔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호기롭게 도전했다. 벚꽃이 피는 시기에 광화문 스타벅스에서 무거운 노트북을 챙겨 만났다. 화면에는 포스터를 띄워놓고 노트를 펴고 아이데이션을 진행했다. 지금에서야 시장 조사, 경쟁사 분석, 타깃 조사 등 마케팅의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있지만 그때는 과제 한 가지 만을 생각했다. <LG패션의 브랜드를 하나 선택하고 마케팅 전략을 구상하라.> 목적에만 집중하는 자세는 중요하지만, 다른 모든 것들을 열심히 분석한 뒤에 하는 것과 아무것도 없이 목적만 생각하는 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헤지스'를 선택했다. 이유도 불명확했다. 그냥 들어본 브랜드였고, 그나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여기서 말하는 가능성은 우리가 흔히 아는 가능성과는 달랐다. 철저한 논리와 분석을 통해 얻게 된 희망이 아니라, 그냥 잘 될 것 같은데? 하는 감각. 그 감각도 경험과 직관으로 출발했으면 좋았겠지만 우리의 감각은 아무런 근거도 확신도 없었다. 그냥 기분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기분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실행력이 좋았던 덕분에, 헤지스 브랜드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모르지만, 그때 당시에는 판매 경로가 부족해 보였다. 그리고 구매를 자극하기엔 단순하게 제품과 가격표만 붙어 있었다. '야 이건 헤지스를 좋아하지 않고서야 구매하지 않겠는데? 근데 헤지스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나?'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문제만큼은 제대로 짚었던 것 같다. 다만 그게 왜 문제인지를 몰랐을 뿐이지. 광고를 비롯한 문과의 영역이 이래서 문제다. 무언가 도입에 들어가긴 쉽다. 하지만 어떤 경지에 오르기가 너무 어렵다. 자격증이나 기술로 측정되지 않고 오직 결과로만 판단된다. 한마디로 운이 좋던, 실력이 좋던 결과가 증명할 뿐이다. 우리도 꽤나 그럴듯한 문제를 파악했고, 온라인이라는 한정된 시장을 타기팅했으나.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는 생각하지 못했고,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나온 아이디어는 "온라인 판매 전략을 강화하자."였다. 웃음이 나올 것이다. 근데 중요한 건, 그때 당시 우리는 이 전략을 내고 매우 뿌듯해했다. 학교 수업이었으면 꽤나 준비를 잘 해왔다고 칭찬을 들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았어야 했다. 그때 당시의 학과 분위기는 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기에, 마케팅 수업에서는 참가자들의 열의도 실력도 지식도 부족했다. 그 사이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니 그 와중에서도 1등은 못한 우리가 가질 자부심은 아니었다.
세부적인 전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1.2.3. 이런 식으로 번호를 매기고 전략을 써둔 것이 전부였다. "야 잘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끼리만 만족하는 기획서를 만들었다. 세상에 어떤 기획서가 있는지도 모르고, 세상에 수많은 마케팅 지원자들이 어떤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를 알지 못한 채. 그냥 내가 해 본 경험 안에서 무언가를 완성해 본 적이 처음이라 뿌듯했고 만족했다.
제출을 앞두고 친구가 조심스레 내게 말을 건넸다. "야 근데 이렇게 하는 거 아닌 것 같아." 나도 어렴풋이는 느끼고 있던 허접함을 직면한 순간이었다. "어쩌겠어, 일단 제출했으니까 기분은 좋다." 미소를 띠며 등짝을 쳤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런 것으로는 수상할 수 없다는 것을, 아니 이딴 것으로는 제출에 만족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공모전 강의를 진행하며, '목적에만 집중해라.'라던가 '형태에 갇히지 말아라.'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렇지만 그 전제조건은 '목적 외의 다른 것들을 충분히 알아봤고 형태를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상태'였다. 알고서 하는 선택과, 뭐가 나은지도 모른 채로 하는 선택은 차원이 다르다. 지혜는 많은 것들을 알고 난 뒤 더 나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다. 운이 좋았다면 더 나은 것을 만들 수 있었겠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운은 다가오지 않는다.
제출을 하고 우리는 가볍게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그 뒤로 공모전 이야기를 주고받는 일은 없었다. 병기는 자신의 목표를 벤더사 취업으로 잡고 섬유와 무역 공부에 힘썼다. 나는 회계사를 목표로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다가 회계사 수험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휴학 신청을 했다. 가볍게 생각한 공모전이지만 우리는 확실히 잘못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 스텝만큼은 잘못하지 않기 위해 서로가 더 철저히 준비하는 방향을 택했다. 그날 우리가 함께 했던 실수는 우리를 더 열정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다음은 없었다. 각자의 길에서 우리는 그렇게 멀어졌고, 병기와 연락을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평생에 있을 내 마지막 공모전일 줄 알았다.
공모전 tip.
흔히들 공모전을 시작할 때 바로 기획에 들어가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교수님을 만나고,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광고인들의 인터뷰를 찾아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보통의 인터뷰와 교육들은 초짜를 위한 교육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 공모전의 포맷과 경험을 가진 예비 마케터들을 위한 교육이죠. 그렇기 때문에 뜬구름을 잡는 것처럼 들리거나, 머리로는 알아도 실제로 적용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욱 기존의 포맷과 형태를 분석하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수상작 몇 년 치를 꼭 뜯어보세요. 제일기획, HS애드, 대홍기획 등 국내 유수의 광고회사들이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그 수상작들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숨겨진 속뜻을 이해하기 이전에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세요. 글을 쓰기 전에 문법과 맞춤법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때로는 단순하게 기초를 습득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억하세요. 관습에 갇히지 않고 본질에 집중하려면 관습을 알아야 하고, 껍데기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