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기도 전에 플랜 B를 준비하는 태도가 싫다.

솔직한 호불호

by 최광래

취준생 시절, 친구 B는 단 두 곳에 지원서를 냈다. 일반적인 영어 점수 하나 없이, 학점은 3점대 초반, 그 외의 경험과 능력이 탁월한 친구였지만, 그래도 두 개의 지원서는 불안했다. 그런 내 불안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두 번의 면접장에 들어섰고, 그중 한 곳의 회사에 합격해서 이제는 3년 차 사원이 됐다. 대한민국 최대, 최고 기업의 최고 경쟁률을 자랑하는 자리에 당당히 합격해서 다니고 있다.


반면 그 시절 나는 지원서만 70개를 썼다. 한 손으로는 서류를 쓰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필기시험을 준비하며, 머리로는 면접을 생각했다. 서류가 떨어질 경우를 대비해 일정 서류를 세이브해놓는 것이 내 전략이었다. '아직 발표가 안 난 7개의 서류를 남겨둔다.'는 전략을 위해 매일 꾸준히 서류를 써야만 했다. 어쩌다 필기와 면접이라도 잡히면, 그 사이에 필기와 면접 연습을 끼워 넣는다. 분명 괜찮은 전략이고 꽤 쓸모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자꾸만 플랜 B를 세우는 버릇이 면접장에서도 드러났다. 친구들이 후회 없이, 미련 없이 기회를 쟁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나는 떨어지고 난 뒤를 상상했다.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떨어지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까.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떨어지고 난 뒤를 준비하느라 머리를 쓰곤 했다. 생각은 태도에 드러난다고 한다. 나는 항상 그런 태도를 들켰다. 완벽히 준비하지도 못할 플랜 B 때문에 눈 앞의 플랜 A에 몰입하지 못한다.


내 주변에는 B와 같은 친구들이 더러 있다. 한 회사만을 목표로 준비하는 시대에 안 맞는 전략을 취하고, 중요한 일이 있으면 나머지 상황은 신경 쓰지 않고 몰입한다. 눈 앞에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지금껏 이들의 단점이 리스크 관리라고 생각했다. 리스크를 진단하지 않고 돌진하는 것. 실패했을 때를 대비하지 않으면 크게 다칠 것이라고 염려했다.


하지만, 실전은 달랐다. 몰입은 가장 좋은 리스크 관리법이었다. 지금의 기회에 최선을 다하는 것. 눈 앞의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 찾아오지도 않은 실패 이후를 생각하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 더 리스크였다. 관리랍시고 하던 행동들이 사실 걱정일 뿐이었다.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걱정하느라 에너지를 써버리는 타입. 치열하게 현재를 살라는 니체의 말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가 머리에 가득했다. 어쩌면 이렇게 비관적인 미래를 그리다 보니 신이 소원을 들어준 것일지도. '그토록 바라던 너를 위해 준비한 비관적 미래란다!', 오 젠장.


삶은 레이스가 아닌 마라톤이다. 하지만, 순간은 레이스일 수도 있다. 그 순간에 달리기 위해, 휴식을 취하고 여유를 가지던 것 아닌가. 요즘 운동을 하며 부족한 내 전완근이 매일 아쉽다. 광배근은 조금 더 운동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전완근에 힘이 풀려서 철봉을 잡지 못한다. 이두와 삼두는 아직 자극을 받지도 못했다고 아우성을 하는데, 전완근은 쉬고 싶어 안달이다. 전완근에 힘이 부족해 꽉 움켜쥐는 일을 잘 못하는 것. 플랜 B를 핑계로 느슨하게 살아왔던 내 책임이다. 나는 이게 싫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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