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주문하지 않으신 우울입니다.
우울함이 찾아오면 화나기보단 당황스럽다. 나는 두리안을 싫어하는데. 마치, 시킨 적 없는 두리안이 우리 집에 배달 온 느낌이다. 문을 열어주지도 않았는데 내 방 가장 깊은 곳까지 찾아와 가장 안락한 공간에 모셔두고 간다. 가만히 놔두자니 냄새가 심하지만 도저히 먹을 수는 없을 때. 꾸역꾸역 매일을 토할 듯 조금씩 먹어치우는 것이다. 버려버리고 싶지만, 애초에 버리는 방법을 모르는 일이다. 두리안을 버려본 적이 없거든, 한 번도 버려본 적이 없는 물건을 버린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냉철한 판단으로 방법을 찾고 싶지만, 찌를 듯한 악취가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나는 우울함을 두리안이라고 생각한다. 내 방 침대, 가장 안락한 자리에 찾아온 두리안. 그러니까 화가 나는 게 아니고 당황스러운 것이다. 이게 대체 뭔가 싶어서.
성과는 운의 영역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는 것과 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실천해보기 전까지는. 성과가 운의 영역이니 초연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다짐해도, 계속 성과가 나지 않으면 최선을 다하기란 어렵다. 물론 세상이 조금은 따뜻해서 노력과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는 긍정적인 시그널이 흐르는 편이다. 그러나 그건 노력 자체의 결과라기보단, 노력하는 모습이 여기저기 비치며 일어나는 사회적 화학반응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만의 노력으로 뭔가를 이룬다는 게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왜냐면 애초에 기대를 주지 않으니까. 노력이 무언가를 해준다고 말하고, 안 해주면 배신이지만, 저 문장의 너머에는 노력의 보상이 따로 서술돼있는 듯하다. 노력하면 몸이 상한다. 노력하면 내가 아는 게 많아진다(전보다). 노력하면 주위 사람들이 알아차린다. 정도? 그게 노력에게 주어지는 몇 가지 포상이다. 노력은 절대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노력이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노력하면 성공한다가 아니라. 그냥 노력은 배신만 하지 않을 뿐이다. 우물에서 물을 떠 오는 시절처럼 우물에서 물을 떠 오는 과정은 배신하지 않는다. 많이 떠오면, 많이 쌓인다. 그게 노력이다. 우물에서 물을 열심히 떠 온다고 해서, 물이 넘치지는 않는다. 떠온 만큼만 쌓인다. 그게 노력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증발이라는 배신이 존재한다. 물을 떠 오는 일 조차, 아웃풋이 100%가 아니다.)
2020년, 가만히만 있는 나를 보며 한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해한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냥, 그렇게 된 것이었다. 나도 몇 개의 성공기를 적어 두었던 적이 있었다. 최종 합격을 앞두고, 그간의 과정을 서술하며 감회를 새로 잡는 일기를 써둔 적도 있고, 입상을 기대하며 활동 후기를 적어둔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아마, 나처럼 적어두었다가 세상에 나오지 못한 성공기들이 참 많을 것이다. 실패기는 기록하기가 힘들거든. 확증 편향에 따른 자기 보호인 걸까. 아니면 수요가 없는 글에 대한 필자들의 선택인 걸까. 나는 그러한 기록이 세상을 한쪽으로 쏠리게 만든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그쪽에 서있고 싶었다. 무너지기 직전의 시소였음에도 가득한 찬미와 감사의 영역에 내 몸을 싣고 싶어 하는 꼴, 그러나 그때 그곳에는 딱히 내 자리가 없었다.
"나는 노력이 부족한 것이어야 한다." 미생에서 장그래가 외치는 독백처럼, 과연 내가 노력이 부족했던 걸까. 노력이 부족했을 때도 있고,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을 때도 있을 것이다. 다만, 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노력은 부족했다. 2년이라는 세월이 그랬다. 취업이라는 순간에 내가 세운 목표, 그리고 닿을 것만 같았던 세계에서 철저히 배제당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긍정의 힘을 믿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싶은데. 너무 많이 맞아서 뼈가 드러났던 것뿐이다. 잠깐 쉬고 싶었고, 잠깐 기대고 싶었는데. 그런 자신을 인정하지 못한 찌질함도 한몫했다. 쉬고 싶으면 제대로 쉴 것이지, 머리로는 성과를 이루고 싶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은 질투와 변명뿐이었다. 머리와 마음이 다른 곳에 있었다. 스스로 만들어낸 불협화음이 세상에 섞이니 악몽이 됐다. 물감에 색이 너무 많이 더해지니 짙은 회색이 되어버렸다. 투명하거나 솔직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아쉬움이다.
우울은 아마 우매한 울림일지도 모른다. 마음과 머리가 서로 따른 생각을 하니까 충돌음이 나는 것. 내 마음 하나 모르는 우매한 상태로 내는 소리가 우울이라고 생각한다. 주문한 적 없다고 생각한 우울이었는데. 당연했다.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이었으니까. 주문한 적은 없다. 스스로 만들었을 뿐. 머릿속에 여러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추억의 영사기를 틀어놓고 있는 하루가 많아질 때쯤. 다시금 생각한다. '그런 영화는 개봉한 적이 없다.'(이동진의 라라랜드 평론 마지막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