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샵 Bill Schwab
여기 안개 낀 새벽, 디트로이트 공원 호수 위의 앙상한 나뭇가지를 찍은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빌 샵의 카메라가 그 아련하고 고독한 순간을 찾아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의 렌즈는 희미한 불빛이 켜진 건물들, 적막한 거리, 그리고 그 사이로 스며드는 미묘하고 꿈을 꾸는 듯한 분위기까지. 이 모든 순간을 시적인 언어로 담아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고향 디트로이트를 사진으로 담은 빌 샵의 시선은 한편으로는 차갑고 한편으로는 따뜻합니다. 흑백의 프레임 속에 담긴 풍경은 기록을 넘어, 깊은 사색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그의 디트로이트 시리즈는 쇠락한 도시의 모습을 담으면서도, 그 안에 숨겨진 도시의 생명력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새벽이나 해 질 녘, 세상이 가장 조용한 시간에 그의 작업은 시작됩니다. 어스름에 잠긴 분수대, 안개에 휩싸인 다리, 텅 빈 거리의 고요함. 이런 순간들은 마치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이 정적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달합니다.
빌 샵은 빛과 그림자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서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합니다. 색채 없이도 그의 사진은 풍부한 감정을 전달하며, 일상의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게 합니다. 그의 작품은 디트로이트라는 한 도시의 이야기를 넘어섭니다. 쇠락과 재생, 소멸과 희망이라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폐허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그의 시선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세상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에드워드 웨스톤, 안셀 애덤스, 이모젠 커닝햄 등의 f64 그룹을 추종했습니다. 그는 이 거장들을 따라 바위, 강, 나무 등 자연을 대상으로 찍었습니다. 하지만 사진이 너무 똑같아 보였고, 아주 지루해 보였다고 합니다. 자연을 아름답게 찍는 사람은 너무나 많았던 겁니다.
그래서 빌 샵은 자기 자신만의 세계로 눈을 돌렸습니다.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있는 디트로이트, 유일한 섬 공원인 벨 아릴(belle isle), 미시간 키위나 반도에 있는 오래 방치되어 폐허가 된 구리 채광산, 근대 자동차 산업 탄생지인 미시간의 포드 자동차 루즈(roege) 공장의 황폐한 산업 풍경 등. 특히 포드 자동차의 루즈 공장지대는 공장 굴뚝과 오염된 강과 하늘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내가 보기 시작한 것은 인간이 망쳐 놓은 그곳에서 이상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이곳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 더 평화로울 수 있었다." 아름다움이란 개념 안에서 매번 작업하지만, 그의 아름다움은 단지 예쁜 것만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은 수많은 단계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단순하면서도 날카롭고 유머러스하면서 신비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사라져 가는 것들 속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빌 샵의 사진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그의 작품을 보며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마음으로 세상과 교감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작업실 서재 한편에 빌 샵의 작품집 한 권이 꽂혀 있습니다. 빌 샵은 사진을 해 오면서 가장 동경했던 작가 중 한 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학을 하고 사진을 만나면서 결코 서정성을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시를 공부했던 시절에는 송수권 시인, 곽재구 시인이 제 곁에 있었습니다. 함께 여행하며 시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하면서 늘 가슴속에 담아왔던 작가 빌 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동경했지만 저의 작품 세계는 그와 아주 다르게 전개되었습니다. 살아온 삶의 방향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품에는 작가 본인의 모든 심성이 담기게 됩니다. 사진은 결코 거짓을 말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