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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심연을 담아낸 시적 연금술

마이클 웨슬리 Michael Wesely

by JI SOOOP

시간의 심연을 담아낸 사진, 마이클 웨슬리의 시적 연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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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웨슬리 Michael Wesely의 사진은 찰나의 현실을 포착하는 전통적인 사진의 개념을 초월하여, 시간의 심연을 담아내는 연금술과 같습니다. 그의 작품은 마치 시간 자체가 캔버스 위에 펼쳐진 듯, 과거와 현재, 미래가 흐릿한 경계 속에서 공존하며 몽환적인 풍경을 자아냅니다. 특히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재개관을 담아낸 그의 3년간의 기록은 단순한 건축물의 변화를 넘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덧없이 변모하는 세상의 단면을 묵묵히 응시하는 듯합니다. 웨슬리의 사진은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예술적 잠재력과 사회적 의미를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웨슬리의 작품은 시간을 '기록'하는 사진의 본질적인 기능을 극대화합니다. 그는 긴 노출 시간 동안 빛의 입자를 섬세하게 쌓아 올려, 시간의 흔적을 이미지 속에 새겨 넣습니다. MoMA 공사 현장의 사진을 예로 들어보자면, 그곳에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인 먼지와 소음, 노동자들의 땀방울, 그리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건축물의 형태가 녹아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기록이라는 사진을 넘어,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추상적인 회화와 같은 깊이를 선사합니다.


웨슬리의 사진은 현실을 '재현'하는 기존의 사진 개념에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그는 찰나의 순간이 아닌,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의 총체적인 모습을 담아냅니다. 이는 사진을 현실의 단순한 복제가 아닌,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하는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실험입니다.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사진이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포착하고, 이를 통해 현실을 새롭게 해석하는 예술적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마치 오래된 유적지에서 과거의 삶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처럼, 웨슬리의 사진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에게 잊힌 기억과 감정을 되살려줍니다.


웨슬리의 작품은 사진이 지닌 '매스 미디어'로서의 기능, 즉 사회적 현상을 기록하고 소통하는 능력에도 주목하게 합니다. 현대미술관 공사 현장의 사진은 미술관 건물의 변화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도시의 변화와 발전, 노동자들의 삶, 사회적 활동 등 다양한 사회적 맥락을 담고 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축적된 이미지는 도시의 역동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연대기와 같으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줍니다.


웨슬리의 사진은 사회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풍경을 통해 사회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드러냅니다. 이는 사진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의 작품은 사진이 직접적인 보도나 선전의 도구가 아니더라도, 시간의 흐름을 포착하고 변화를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의미를 지닌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마치 고고학자가 땅속에 묻힌 유물을 발굴하듯, 웨슬리는 시간 속에 잠겨 있던 사회의 기억을 되살려 우리에게 전달합니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의 사진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성찰하며 미래를 상상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사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남기는 예술의 힘을 보여줍니다.




2020년, 세계에서 노출 시간이 가장 긴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 한 장이 공개됐습니다. 노출 시간이 무려 8년 1개월인 태양 궤적 사진을 영국 하트퍼드셔대가 공개했던 것이죠. 이 사진은 영국 하트퍼드셔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던 예술가 레지나 발켄버그가 촬영한 것으로, 그녀는 렌즈 대신 바늘구멍을 뚫어 사용하는 핀홀카메라라는 고전적인 기술을 사용한 사진 촬영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그녀는 맥주캔에 인화지를 부착해 핀홀카메라를 만든 뒤 이 대학의 교육 천문대인 베이포드버리 천문대에 비치돼 있는 한 망원경 위에 설치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설치한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고 맙니다. 오랜 세월 잊고 있던 맥주캔 핀홀카메라 속 인화지에는 2953일 동안 태양이 뜨고 지는 궤적이 겹겹이 쌓여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었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찰나를 기록하는 것이 사진입니다. 하지만 단 1초만 기록하여도 장노출이라고 말합니다. 사진에 있어서 1초는 아주 긴 시간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잠시잠깐의 순간들이 축적되면서 사진은 대기의 공기와 우리의 삶을 담는 하나의 그릇이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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