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맥카우 Chris McCaw
여기 크리스 맥카우의 선번 SunBurn 사진이 있습니다. 태양은 맥카우의 캔버스 위에서 파괴자이자 창조자가 되고 맙니다. 눈부신 햇살로 인화지를 태우고 녹여, 예측 불가능한 추상적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그을린 표면 위로 번지는 어둠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을 빠지고, 빛의 흔적은 희미하게 빛나는 별들의 궤적을 닮았습니다. 우리는 이 이미지 속에서 우주의 기원과 소멸, 그 영원한 순환의 고리를 엿보게 됩니다.
빈티지 인화지 위에 새겨진 흉터와 균열은 강렬했던 빛의 기억이자, 덧없이 스러져간 순간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는 사진의 연금술사처럼, 빛과 어둠, 소멸과 생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주의 숨결을 담아냅니다. 맥카우의 작업은 디지털 시대에 대한 아날로그적 반항일까요? 그는 빛과 시간, 그리고 물질의 우연적인 만남을 통해 디지털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깊이와 울림을 만들어냅니다. 섬세하게 조절된 빛의 노출은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인화지를 어루만지며, 그 위에 독특한 세계를 새겨 넣습니다. 마치 고대의 연금술사가 불과 흙, 물과 공기를 이용하여 새로운 물질을 창조하듯, 맥카우는 태양빛과 낡은 인화지를 도구 삼아 시간의 흔적을 시각화합니다.
작품 속 어둠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빛이 부재하는 공간, 잠재된 가능성의 영역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삶과 죽음, 존재와 무(無)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빛줄기는 희망의 불씨이자 깨달음의 순간을 상징하며,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를 인도합니다.
“인화지를 태우는 작업은 시간과 아날로그 사진 도구를 연결하는 실험이자 모험입니다. 지구의 어느 시공간에 어떤 방향과 형태를 그리는 빛의 궤적을 얻을 수 있을지 계속 연구하죠. 마법 같은 장면을 기대하지만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연구합니다. 일직선을 그리며 뜨고 지는 태양의 궤적을 얻으려면 직접 그 시공간으로 가야 합니다. 조작할 수 없죠. 그 과정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라고 크리스 맥카우는 말합니다.
그래서 '선번'은 우주의 언어를 담은 철학적 메시지로 읽습니다. 그는 빛과 그림자, 시간과 공간,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도록 이끕니다. 그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찰나의 아름다움과 영원한 진실을 발견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타오르는 시간 속에서 스러져가는 이미지, 그 역설적인 아름다움이 오랫동안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크리스 맥카우는 사진을 촬영하다가 잠이 들고 말았답니다. 일어나 보니 이미 태양이 중천에 떠 있었죠. 작업을 망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실수가 선번 SunBurn 시리즈로 탄생하게 됐습니다. 한 번의 실수가 역사를 바꾸고 실수가 대작을 만들어 냅니다. 실수가 없었다면 크리스 맥카우도 그저 그런 작품을 하는 작가로 남았을지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