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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비 Jul 01. 2024

새로운 시작, "야~ 기분 좋다!"

'돼지국밥'을 처음 먹어봤다. 음식을 크게 가리지는 않는 편인데, 유달리 "물에 빠진 고기"가 들어간 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얀 고기 국물이 입맛을 자극하기는커녕 뽀얀 국밥을 보면 식욕이 생기지 않는다. 내가 봉하마을에 내려와서 돼지국밥을 내 입에 넣고 있을 줄 몰랐다. 역시 사람이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나 보다. 그 싫어하는 국밥을 먹고 있으니 말이다. 5년간 부속실에서 노무현대통령 내외분을 모시고 퇴임 이후의 삶도 함께 하게 되었다. 임기 중반이 넘어가면서 대통령 내외 분께서는 자연스럽게 퇴임 이후의 거처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전직 대통령 비서실을 어떻게 꾸릴지 준비를 하셨다. 대통령에 당선되시고 청와대로 들어오시면서 명륜동 사저는 정리하고 오셨기에 퇴임 후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부속실 차원에서 대통령님 내외분과 여러 대안을 검토하고 결정한 곳은 고향인, "봉하마을"이었다. 사저 공사를 시작으로 많은 준비를 거쳐서 '지붕 낮은 집, 봉하 사저'가 완공이 되었고, 퇴임하는 날 많은 분의 배웅과 마중을 받으며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밀양역에 도착하여 버스로 봉하마을까지 달려오셨고, 그 길에 나는 함께 하게 되었다.


현직 대통령이 퇴임을 하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직 대통령의 예우와 지원에 대해 규정을 한다. 즉, 전직 대통령에게는 연금, 비서관(3인) 및 수행기사(1인), 사무실, 경호와 경비, 의료지원 서비스 등 전직 대통령으로서 필요한 예우를 받게 된다. 3명의 비서관은 1급 상당 비서관 1명, 2급 상당 비서관 3명으로 별정직 국가 공무원이다.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소재의 봉하마을로 가시는 일이기에 함께 할 비서관 선정도 고민이 되시는 일이셨을 것이다. 서울에 거처를 마련하신다면 다들 출, 퇴근하며 일하니 고려하지 않을 부분이지만, 경남 김해까지 내려가시는 일이니 가장 크게 고려할 부분 중 하나가 "비서관들의 가족"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주말 부부 형태로 살거나 가족 모두가 함께 이동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님께서 비서진을 얼마나 세심하게 배려하며 일하셨는지 알 수 있다. 비단 이 일뿐만이 아니다. 봉하마을로 내려가기 위해 고려해야 할 수많은 부분들에 대해 결정할 때도 늘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다들 누가 내려갈지도 궁금해했다. 내외분을 가까이에서 모시고 있던 사람으로서 나 역시 고민이 많았다. 함께 내려가는 일은 감사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나의 고민은 거처를 이동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 '커리어'였다. 함께 내려간 비서관들은 각자 고민을 했겠지만, 다들 "함께 하자"는 말씀에 흔쾌히 수락했다. 우리가 서로 왜 내려가는지에 대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퇴임 후에는 오히려 더 하실 일이 많고, 하고 싶으신 일이 많다는 것을 말이다. 그 일을 하시는데 보좌하는 것이 얼마나 보람되고 의미 있고, 재미있을지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퇴임하시고 전직대통령이 되시는 순간부터 일어났다. 서울역에 몰린 인파와 밀양역에서 마주한 반갑게 환영하시는 수많은 인파, 봉하마을에 미리 도착해서 축제를 벌이고 계신 분들까지 모두가 활기차고 희망차 있었다. "야~ 기분 좋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봉하마을로 귀향 후 축하해 주시는 지지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하신 인사말이다. 나는 가끔 이 멘트를 건배사에 쓰기도 한다. 말할 때마다 그 순간의 감동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막중한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했던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고향으로 돌아와 편안한 마음으로 지지자들과 함께 하는 순간의 기쁨과 안도감을 표현하셨을 것이다. 대통령 비서실에서 일했던 나도 5년의 시간이 참으로 무겁고 조심스러운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그 무게를 고스란히 갖고 계셨을 대통령 내외분의 마음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한 사람으로서 고향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날부터의 봉하마을의 일상은 대통령 내외분을 포함, 모두가 예상했던 그림은 아니었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새로운 시작을 차분하게 시작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매일 "대통령님 나와주세요~"를 외치는 틈 속에서 정신없이 열흘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휴가차 서울로 와서 파스타를 먹을 수 있었다. 국밥을 먹다가 열흘 만에 먹는 파스타의 맛이라니! 무엇보다 내가 국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놀라온 변화, 새로운 시작, 기분 좋은 변화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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