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에서 시작한 5년간의 청와대 생활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시간들을 잘 지낼 수 있는 이유였다. 나는 부속실로 발령을 받아 내외분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특히 노무현대통령님과 권양숙여사님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잘해주셨기에 일하면서도 편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모신다는 것은 '누군가'의 성향이나 인성, 성품 등에 대해 영향을 많이 받는다. 어느 조직이건 윗사람의 스타일에 따라 참모진과 비서진의 일의 강도나 스트레스가 달라진다. 윗사람 때문에 힘든 이유는 상상 초월하기 어려운 것들도 많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그분들과 함께 일하면서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는 것은 지금도 늘 큰 축복이라 생각한다.
정권마다 조직 운영 체계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참여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을 모시는 제1부속실과 영부인을 모시는 제2부속실로 나눠졌다. 부속실은 청와대 본관에 위치해 있었는데, 제1부속실은 2층에, 제2부속실은 본관에 들어가면 만나는 중앙 계단 옆 1층 오른쪽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제2부속실에 소속되어 본관과 관저를 오가며 일을 했다. 공식 일정은 물로 비공식 일정까지 책임져야 함을 의미했다. 대변인실에서 일해던 내가 부속실로 발령이 났을 때는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나도 청와대에 들어간다면 '춘추관'쪽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고민들이 있었지만, 결국 나는 제2부속실에서 여사님을 모시는 일을 시작했다. 임기 중반에는 제1부속실로 발령이 났고, 마지막에는 관저부속실로 발령이 났다. 모든 부속실을 오가며 일한 것은 내가 유일했다. 특히 관저부속실에서 일을 하면서 공식은 물론, 비공식 행사까지 수행하고 보좌하는 역할을 했기에 공휴일이나 명절 등은 반납하며 일했다. 한 번은, 유학 때 만난 일본인 친구가 결혼을 하게 되어서 일본에 2박 3일 일정으로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주변에서 "박국장이 3년 만에 처음 휴가를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에 빠져서 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을 정도다.
그렇게 '일'만 했던 것은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생각으로 미련하게 일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의 "상사"였던 노무현대통령과 권양숙여사님께서 우리가 일에 몰입하며 일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셨기에 가능했다. 아랫사람이었지만 단순 지시로 일하지 않도록 했다. 사람에 대한 신뢰와 존중, 배려가 일하게 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도 즐거웠다. 업무의 특성상 지위를 막론하고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기도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통해 대통령 내외분의 이야기를, 의중을 알고 싶어 하기도 했다. 공식, 비공식으로 일정을 잡고 싶어 하는 분들도 많았다. 그럴수록 내 입은 굳게 다물게 되었다. 귀는 열려있으나 입은 굳게 다물었다. 내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함께 일하는 부속실, 의전실, 경호실 등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교류가 더 돈독해졌다. 내외분을 가까이에서 모시다 보니 대화의 공통점도 있었고, 함께 보내는 물리적인 시간들도 엄청났다. 일하면서 있을 수밖에 없는 애환들을 서로 나누며 이해하고 공감과 조언도 해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팀워크(Teamwork)'였다. 5년간 청와대에서 대통령 비서실에서 한시적으로 일하게 된 팀으로서 하나의 팀으로 뭉쳐 일했다. 공동의 목표도 있었다. 노무현대통령을 보좌하여 참여정부가 국정을 잘 운영해야 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물론 성과가 나서 국민의 삶이 편안해지고 풍요로워지게 하고 싶었다. 그곳에 들어온 우리 모두는 한 마음으로 일했다. 물론 우리가 그런 마음으로 일하는 것과 별개로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과 결과는 다를 수 있다. 부족한 부분도 많았지만, 일하는 동안 우리의 그런 마음은 진심이었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일했다. 이런 목표를 갖고 우리가 하나의 팀으로 팀워크를 발휘하며 일하니 즐거웠다. 때로는 새벽일정도 많았고, 국내외 출장들도 많은 업무 강도가 높았지만, 출근하는 것이 즐겁고 당직을 서도, 쉬는 날이 없어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함께 하는 사람들의 '팀쉽(Team ship)'이 잘 발휘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금은 더 알게 되었다. 노무현대통령이라는 리더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몸소 '수평적 리더십'을 보여주셨기에 대통령 비서실에 있는 직원 모두가 그렇게 보고 배웠다.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 좋은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내가 리더로 일하면서 대통령의 리더십이 미치는 영향이 컸다는 것을 깨달았고, 코치로서 '리더십 코칭'의 중요성을 강의하기도 한다. 미국 갤럽에서 직원 몰입도(Gallup's Employee Engagement)를 측정하는 Q12라는 진단 도구가 있다. 직원들의 업무 몰입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로 직원들의 몰입도를 측정하기 위해 12가지 질문을 사용한다.
Q1. 나는 직장에서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안다.
Q2. 일을 제대로 하는 데 필요한 재료와 장비를 가지고 있다.
Q3, 직장에서 매일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할 기회가 있다.
Q4. 지난 한 주 동안 일을 잘했다고 인정 또는 칭찬을 받았다.
Q5. 상사 또는 직장의 누군가가 나를 한 인간으로서 배려한다.
Q6. 직장에 나의 발전을 격려하는 사람이 있다.
Q7. 직장에서 내 의견은 중요한 것 같다.
Q8. 회사의 사명이나 목적은 내 일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한다.
Q9. 동료 직원들은 일을 잘하기 위해 전념한다.
Q10. 직장에 친한 친구가 있다.
Q11. 지난 6개월 동안 직장의 누군가가 나의 발전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Q12. 지난 1년 동안 직장에서 배우고 성장할 기회가 있었다.
- <강점으로 이끌어라>에서 발췌 -
위의 12가지 질문을 통해 직원들의 몰입도를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직원 참여도와 생산성 향상을 위한 조직문화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간단하지만 강력하다. 각 문항에 5점 기준이라면 나는 모두 5점을 주었을 것 같다. 당시는 내가 몰입도라는 개념을 알기도 전이었지만, 지금 빗대어 봐도 몰입도가 강한 조직이었다. 청와대라는 특성상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리더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조직을 이끄는가가 팀워크를 만들고 팀쉽으로 일하게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좋은 리더 덕분에 좋은 조직문화 경험을 했고, 나의 기준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