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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비 Jun 22. 2024

나도 킹메이커?!

두 분의 대통령 후보자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다

저의 전직장인 정당 대변인실은 다른 부서에 비해 상당히 역동적이고 활발한 곳이었다. 처음에 커리어를 시작했던 곳은 야당 대변인실이었는데, 그곳에서 경험한 여러 일들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야당 후보인 김대중 후보가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새정치국민회의는 집권 여당이 되어 나는 '여당' 대변인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정당 대변인실이라는 곳은 정당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부서로, 국민 앞에 매일 보이는 부서다. 때로는 "정당의 꽃"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여기서는 정당의 정책, 공약, 주요 활동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홍보하는 역할을 한다. 언론 보도와 온라인 채널까지 포함하여 정당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곳이다. 언론사의 취재 요청에도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하며, 원활한 소통을 위해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도모한다. 특히 당 지도부의 모든 행동이 취재 대상이므로, 정당 내외에서 발생하는 위기 상황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당의 입장을 정리하여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매일 저녁 당으로 미리 배달되던 가판을 점검하며 우리의 메시지가 정책 등이 제대로 보도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주요한 업무였다. 정당 대변인실은 정당과 언론, 국민 간의 다리 역할을 하며, 정당의 정책과 활동을 효과적으로 알리고 여론을 관리하는 핵심적인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대변인실에서 일한 경험을 통해 대중 앞에 서는 능력과 사회적 이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배울 수 있었다. 정치, 행정, 공공분야에서 일한 17년의 경험 무수한 크고 작은 경험들을 했지만, 대변인실에서 일한 5년간의 경험은 내게 기분 좋은 추억을 가져다준다. 


대변인실에서 4년 차에 접어들었을 당시가 2002년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였다. 당에서는 2002년 2월 1일부터 5월 3일까지 진행되는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이인제 후보 간의 치열한 경선 경쟁이 펼쳐졌다. 노무현 후보는 당시 인터넷 지지층인 '노사모'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었고, 이인제 후보는 당내 실세 및 기성 정치인들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나는 기자들과 전국을 돌며 경선에 참여를 했고, 경선은 막판으로 갈수록 양측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노사모 조직의 적극적인 온라인 활동과 오프라인 집회로 노무현 후보의 지지세가 크게 확산되었고, 결국 노무현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새천년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이는 당시 정치 신인이었던 노무현 후보가 인터넷과 시민 사회의 열렬한 지지를 바탕으로 기성 정치인들을 제치고 승리한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받았다. 경선 과정은 재미난 축제와 같은 시기였다. 이때 보여준 노사모의 활약과 노무현 후보의 돌풍은 이후 대선 과정에서도 큰 영향을 미쳤고, 한국 정치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당에서는 경선이 진행 중인 시기인 3월 13일 중앙당 차원의 선거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켜 경선 후보자가 당선되면 바로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노무현 후보자가 공식적으로 새천년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가 되고, 후보자에게 맞춤형 선거 전략들을 세우고 선거에 돌입하게 되었다. 본격 선거 캠프가 꾸려지고 나는 정무 2팀으로 발령이 났다. 정무 1팀은 노무현 대통령 후보자를 수행보좌하는 팀이었고 정무 2팀은 권양숙여사님을 수행보좌하는 팀이었다. 나는 대변인실의 경험으로 여사님의 홍보와 연설문을 맡았다가 뒤에는 수행 보좌업무를 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처음부터 정무 2팀으로 추천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정무 2팀으로 추천을 받은 당직자는 따로 있었다. 노무현 후보는 정치 신인으로 정식 후보가 되었지만, 새천년민주당 내에서는 전통적인 정치인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 후보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자, 당내 주류 세력들은 이를 반기지 않았다. 특히 정몽준 후보와의 경선에서 승리한 노무현 후보는 당내 기존 세력들과 갈등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노무현 후보는 정식 후보 확정 이후에도 당내에서 완전한 지지와 환영을 받지 못했는데, 처음에 추천받았던 사람은 발령을 고사했다고 들었다. 


나를 추천해 준 사람은 이창우 전 동작구청장이었는데, 대변인실 선배로서 친하게 지냈다. 내가 대변인실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여사님 팀으로 추천을 한 것이다. 마침 여사님 팀에도 홍보 업무가 필요했고 대변인실에서 4년을 일했던 내게 딱 맞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노무현 후보를 좋아했기에 기회가 그저 감사했다.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고, 나는 여사님께서 참여해야 하는 행사들의 연설문을 쓰기도 했고, 대변인실 업무를 하게 되었다. 수행을 하던 이은희 실장님을 대신해서 몇 번 여사님 수행을 하면서 내 업무 스타일을 여사님께서 잘 봐주셨다. 1997년 첫 대통령선거에 대학원 박사 논문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참여관찰로 들어왔던 자원봉사자가 2002년 대선에서는 정식 직원이 되어서 다이내믹한 선거판 한가운데서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기여하고 있었다. 노무현 후보라는 정치 신인의 부상, 양당의 치열한 정책 경쟁, 온라인 선거운동의 확산 등 다양한 특징들이 나타났던 매우 흥미로운 선거였다. 유권자들의 높은 관심 속에서 역동적인 선거 과정이 펼쳐졌던 곳에서 직접 보고 배우고 느끼며 진정한 참여관찰을 하고 있었다. 


개인적인 인연이 없이 당에서 발령을 내서 합류하게 된 정무 2팀이 또 나의 커리어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정무 2팀에서 일한 것을 계기로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에 노무현후보가 당선되면서 나는 계속 노무현대통령 내외분을 청와대 부속실에서 모시게 되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선거가 승리하고 공식 선거대책위원회가 12월 19일 해단을 했다. 나는 당 대변인실로 복귀를 했다. 97년 대선 후도 그랬지만, 2002년 대선도 선거가 승리하고 나니 정권 인수위가 꾸려지면 더 바쁘게 되었다. 나는 선거 후 첫 주말에 종로 3가 서울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던 길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 뒤 나는 인수위 기간 동안 사저로 출근하며 참여정부 출발을 준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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