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Unlock 08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비 May 26. 2024

박박사! 순발력이 뛰어나!

지금은 미국 갤럽(GALLUP)의 공식인증 강점코치이지만, 원래부터 사람의 강점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람이니 내게도 개선하거나 보완해야 할 단점, 약점 등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강점에 집중하고 싶은 성향이다. 기분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야 신나서 동기부여가 되어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K-장녀로 어렸을 때부터 생각이 조숙했다. 열심히 일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집안일을 도와주려고 하거나 동생을 돌보는 일을 많이 도와드렸다. 방학 때 고모네 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도와드리니 "어쩜 그렇게 속이 깊으니. 너처럼 속 깊은 딸이 있어 좋겠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 칭찬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성격을 잘 파악하신 큰고모님의 말씀이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첫 번째 칭찬이 아님에도 이 칭찬이 오래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진심으로 칭찬을 해주셨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 존재를 알아봐 주셨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오래 기억이 남는 칭찬도 있다. 호주 유학시절 호주 방송국에서 일했던 때이다. 

 

유학생활 때 내 첫 파트타임 일은 두 명의 아저씨들과 함께 하는 빌딩 청소였다. 간절하게 원했던 일이고 좋은 분들과 함께 일하며 수입도 좋았던 일이라 대학원을 가서도 계속할 마음이었다. 어학연수 시절부터 대학원 입학까지 약 1년 정도 그 일을 했다. 드디어 맥콰리 대학교의 International Communication in Master of  Arts 대학원에 입학하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무엇이든 처음 시작해 익숙해질 때 까지가 제일 시간도 오래 걸리는 듯하고 어려운 과정인데, 대학원 수업도 첫 학기를 어떻게 지나갔는지 놀라울 정도다. 어학원에서 배우는 영어와 일상에서 사용하는 영어로는 택도 없었다. 나름 영어공부를 꽤 열심히 했다고 했지만, 전공서적과 논문들을 원서로 수도 없이 읽어내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일보다는 우선 공부가 먼저였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싶었을 때 커뮤니케이션 관련 일을 해야겠다 싶었다. 


당시 나는 시드니 북쪽 Artarmon이라는 지역에 살았는데 바로 전 역에 St.Leonards st. 근처에 호주의 대표적인 공영 방송사 SBS(Special Broadcasting Service) 방송국이 있었다. 매일 기차를 타고 오며 가며  창밖으로 보며 지나던 곳에 위치한 방송국은 호주 국민들에게 다국어 방송을 통해 다문화 사회를 반영하고 다양성을 제공하는 방송국이다. 내가 있었을 때는 SBS Radio 채널로 일주일에 4시간 한국어로 방송을 했다. 저기에서 일하면 대학원 수업과 연계할 수 있을 듯해서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지 문을 두드렸다. 내가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어떤 생각이 들었을 때 가볍게 '일단 한다'이다. '아니면 말고' 정신이 있어서 무언가 물어보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누구를 찾아가서 일할 수 있는지 물어볼 수 있는데 마침 주말마다 한인 개척교회를 다녔는데 교민 한 분이 PD님을 소개해주셨다. 나는 바로 그곳에 가서 일을 하고 싶다며 담당 PD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마침 PD님과 함께 일하던 사람이 교민인데 한국에 일이 생겨서 갔다며 사람이 필요하던 차였다. 운이 좋았다. 처음에는 그분이 오실 때까지 일하기로 했는데 그분 사정도 생기기도 했고 나도 다행히 일을 못하지 않아 한국으로 귀국할 때까지 약 3년간을 함께 일할 수 있어 큰 도움을 받았다.

  

SBS Korean Radio 프로그램에서는 한국 소식과 한인사회 소식, 그리고 호주에 있는 뉴스들 한국어로 교민에게 방송하는 등 한인사회에 정보 전달 및 위로를 위한 방송을 했다. 나의 주 업무는 호주의 뉴스들 중 주요 이슈나 한인사회에 필요한 기사들을 발췌해서 번역하여 소개하는 역할로 BJ(Broadcaster/Journalist)라고 불렸다. 방송은 일주일에 4회였기에 나는 4번 정도 나가서 일을 했는데 일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주급이 상당히 좋았고, 무엇보다 관련된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 높았다. 함께 일했던 PD님께서도 유학생이 와서 일하며 공부하려는 모습이 기특했는지 늘 많은 도움을 주려고 하셨다. PD님은 내가 박사과정에 들어갈 계획으로 공부하는 것을 알았기에 늘 나를 "박 박사"라고 부르셨다. 목소리도 좋고 우렁차셨는데 힘 있게 늘 "박 박사!"라고 부르시면 없던 에너지도 생기는 기분이었다. 


나는 방송이 있는 날 일찍 도착해서 뉴스를 스크랩하고 스크랩한 기사를 번역하고 요약해서 사전 녹음을 했다. 이 일도 익숙해지니 이 일을 빠르게 하는 편이었는데,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생각보다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PD님은 "박 박사, 스피드는 정말 좋아. 디테일을 좀 더 살려보면 좋겠어."라는 피드백을 듣고는 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방송은 PD님께서 직접 진행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프로그램을 다변화하며 내게도 조금씩 역할이 늘어나 생방송에 나도 참여하게 되었다. 어느 날 생방송 도중, 방송사고가 날 뻔한 당황스러운 일이 생겼는데 내가 순발력 있게 대처해 방송사고를 면했다. 방송이 끝난 뒤, 담당 PD님은 “박 박사! 순발력 뛰어났어!”라고 큰 소리로 웃으며 말씀을 해주셨다. 어떤 사고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아도 그때 PD님께서 나를 진정으로 칭찬해 주시는 일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나는 수시로 언정, 칭찬, 지지를 해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칭찬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에게 듣는 칭찬은 그 효과가 배가 되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런 칭찬을 통해 뜻밖의 모습을 발견했다. 내가 무엇을 하든 속도감 있게 일하는 스타일이고 순발력이 좋으며, 당황스러운 상황이 발생해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 과정에 들어가 '선거 캠페인' 논문 주제를 위한 '참여 관찰'을 위해 귀국하기 전까지 SBS 방송국에서 한국어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며 한인 사회에 기여하는 시간들은 내 커리어의 하나의 중요한 지점이 되었다. 이때의 경험이 다양한 방면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었는데, 참여 관찰을 위해 제15대 대통령선거기간에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실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였다. KBS 방송국에서 선거 관련 인터뷰가 필요하다며 직원들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몇 분의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다들 해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못하겠다 선언하셨다. 결국 나에게 까지 기회가 왔는데 라디오 방송국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는지 한 큐에 멘트를 따냈고 오히려 말을 너무 잘해서 각본을 짠 것 같다며 다시 요청을 하시기도 했다. 결국 어떤 경험이든 다 나의 자원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방송국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잘 해낼 수 있었던 것은 PD님께서 나를 믿어주고 칭찬과 인정, 지지를 아끼지 않으셨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누군가 나의 강점이나 장점을 진심으로 이야기해 주는 것은 한 사람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리고 내 안에 자원으로 차곡차곡 쌓여 어떤 일을 할 때 그 힘이 연결이 되어 현재 내 앞에 있는 일을 헤쳐나갈 때 크고 작게 도움이 된다. 그래! 나는 순발력이 있는 사람이었어. 그렇지! 지금 내가 이 일을 잘 못하더라도 나는 속도감 있게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야. 스스로에게 힘을 부여하면 자신감이 생긴다. 나의 강점 화수분 안에 ‘순발력과 속도감, 평정심’이 쌓여 있는 셈이다.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도록! 그러니 우리가 다른 사람을 장점이 가득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은 이런 진정성 있는 인정, 칭찬이다. 오늘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칭찬 한 스푼 넣어드려야겠다.

이전 07화 선택과 책임, 나의 길을 걷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