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차분한 이미지 덕분에 성격이 얌전하고 생각이 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런 모습도 당연히 나의 한 면이긴 하지만, 의외로 나는 생각이나 행동이 빠른 편이다. 상황이나 환경에 적응도 잘하고 웃음소리도 커서 오랜만에 다시 만나는 분들도 "시원한 웃음소리는 여전하다"며 기억해 주신다. 태어났을 때부터 가지고 있는 성격적 부분에 엄격한 가정환경과 장녀로서의 위치, 시대적 사회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경험한 자산들이 축적되어 지금의 내가 되었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집안일을 하고 계시면 시키기 전에 먼저 도와드리는 경우도 많았다. 고모나 이모네 집에 놀러 가서 식사를 하고 나면 함께 식기를 정리하고 도와드렸다. 특히 아버지가 심부름을 시키시면 말씀과 동시에 일어나 시키신 일을 해내곤 했다. 뭉그적거리는 것을 싫어하셨던 아버지의 성격도 있었을 것이고, 잔소리를 듣기 전에 시킨 일을 해냈다는 자기 만족감도 있었다. 초등학교는 청주, 서울, 춘천에서 4번이나 전학을 다녔는데 이런 환경 요인 덕분에 나는 새로운 곳에 빠르게 적응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었다.
이런 성격은 늦은 나이에 떠난 유학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2년 과정의 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파트 파임으로 SBS(Special Broadcasting Service) 방송국에서 일하고, 틈틈이 유학생회 활동도 하게 되었다. 대학원 수업은 언어가 주는 한계가 분명 있음에도 즐거웠다. 때로는 한국에서 공부를 했다면 전공서적을 읽으며 이해하는데 훨씬 수월하고 책도 더 많이 읽었을 텐데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은 만족도가 높았다. 대학원에서 만난 친구들이 나의 영어 선생님이 되어주었다. 특히 뉴질랜드에서 온 레슬리는 과제도 꼼꼼히 챙겨 주었다. 일본인 친구들과 홍콩 친구 등 친한 친구들도 생겼다. 아시아계 유학생이라는 공통점이 문화나 정서가 잘 맞았다. 첫 학기를 친구들과 서로 도와가며 함께 버티고 나니, 수업은 어려웠지만 공부하는 재미가 있었다. 제일 어려웠던 것은 대학교 때 공부하던 방식과는 다른 토론하고 팀 프로젝트로 함께 케이스 스터디를 해서 발표하는 등 참여형 수업은 언어가 네이티브가 아닌 나로서는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그렇게 전공 서적 한 페이지를 읽는데도 영어사전을 찾아가며 읽느라 반나절이 걸릴 정도로 더디게 읽던 내가 마지막 학기에 논문을 쓸 때는 하루에 3권도 읽어내는 기적을 발휘했다. 대학원 수업에서 책을 읽는 것은 어쩌면 제일 쉬운 일이기도 했다. 쓰기도 나쁘지는 않았다.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니까 내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면 되었다. 반면, 듣기와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영어라는 통일된 언어를 사용했지만 다양한 국가에서 온 학생들의 영어를 알아듣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수업 시간 대부분이 학생들의 참여와 발표, 토론 등으로 이어졌는데 고역이었다. 그럼에도 교수님을 포함 학생들은 유학생들의 언어 어려움을 이해해 주고 우리가 더디더라도 우리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충분한 배려를 해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여러 수업 중에서 내가 관심이 가는 분야는 미디어에 나온 언어와 마케팅 특히 캠페인에 대한 수업이었다. 마케팅 수업은 마케팅 회사를 운영하는 전문가가 강의를 하셨는데, 이때 나는 실용 학문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석사 논문 주제와 방향성을 정하고 필립 벨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정했다. 필립 벨 교수님은 미디어 관련 분야로 호주 안에서는 유명하신 교수님으로 활발하고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셨던 분이다. 후에 뉴사우스웨일스(UNSW) 대학교에 미디어 학과가 생기며 교수님께서 UNSW로 옮기셔서 나도 박사 과정 시작을 뉴사우스웨일스 대학교에서 하게 되었다.
석사 논문을 쓰면서 나는 내 성향을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지도교수와 논문의 주제와 방향성을 잡고 내가 가장 한 일은 필립 벨의 논문과 저널, 저서들을 읽으며 교수님의 스타일 등을 연구했다. 어떤 연구방법론을 선호하시는지, 어떤 주제에 관심이 가시는지, 어떻게 가설을 세워 풀어내시는지 등을 말이다. 그 뒤 관련 논문이나 자료들을 찾아보고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일단 논문이 통과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목표였다. 최우수 논문상을 받는 것이 아니었다. 부지런히 일정에 맞춰 논문을 쓰기 시작했다. 어느덧 논문 초안이 완성되었고 교수님께 피드백을 받기 위해 약속을 잡았다. 지금도 그때의 교수님 방 앞 복도, 피드백을 해주시던 모습, 방을 나와 조용히 환호성을 치던 모습이 너무 생생하다. 교수님은 논문에 대한 질문과 피드백을 하시면서 "이대로 하면 좋겠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물론 몇 가지 수정 사항을 말씀해 주셨을 텐데 통과가 되었다는 기쁨만 남았는지 그건 별 기억에 없다. 보통 감정의 고저가 크지 않은 편인 나도 이날은 정말 너무 기뻐 건물을 나와 혼자 소리를 지르며 뛸 듯이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유학생이라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통과를 시켜주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유학생 친구들도 여러 차례 논문을 수정 보완하는 것을 봐서는 꼭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유학생이라고 해도 교수님께서 지도교수로 함께 이름이 올라가는 것 아닌가. 게다가 박사과정도 교수님과 함께 하기로 했으니 말이다. 내가 논문을 남들보다 빠르게 통과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교수님의 연구 스타일을 잘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교수님은 질적 연구 방법론을 선호하셨다. 양적 연구가 숫자와 통계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질적 연구는 인터뷰, 관찰, 사례 연구 등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 개념, 경험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는 연구방법론이다. 나도 질적연구방법론을 택해서 논문을 썼다. 내가 논문을 빠르게 통과한 이유는 내 나름의 전략을 잘 설계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무작정 논문을 쓰기보다 관련 주제를 교수님이 어떻게 풀어냈는지를 살펴보았다. 문헌연구도 많이 했고 한국이라는 언론 상황에 대한 호기심도 자극했다. 익숙함과 낯섦을 잘 버무려 교수님께서 언어가 부족하더라도 참신한 아이디어를 보고 좋아해 주시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일을 할 때 행동이 빠른 편인 동시에 머릿속으로 다양한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편이다. 어떤 일이든 상대방의 의중, 스타일, 상황의 맥락을 우선적으로 파악하려 노력한다. 전체적인 그림이 대략적으로 그려지면, 그때부터는 실행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다. 이는 나에게 맞는 성공 방식이자, 삶에서 얻은 지혜이다. 무엇을 시작하기 전에는 항상 대상과 상황을 파악한다. 너무 완벽하게 하려 하지 않았다. 아무리 오래 고민해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한 뒤에 바로 행동으로 옮기고 피드백을 받아 다시 시도해 본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고, 내가 선호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책임감 있게 주도적으로 자신만의 방식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