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네스의 노래에서 왜 이 노래로 손가락이 움직일까요? 방금 전에 쓴 글에서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라고 제목을 붙이자, 저의 의식이 이별과 상실로 흘러가네요.
이별과 상실을 대표하는 곡입니다.
'Say Something', 제발 뭐라고 말을 좀 해줘~ 제발~
상대는 나에게서 마음이 떠나, 어떠한 말도 나에게 해 줄 수 없는데, 나는 붙들고 싶은 이 마음. 이 또한 구천을 떠도는 영혼의 메아리가 되어 노래로 불려집니다. 망연자실입니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아. 무. 것. 도. 없습니다.
이랬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갑작스러운 이별의 통보, 갑작스러운 비보
이렇게 망연자실, 무력하게 슬픔으로 한 없이 가라앉던 저를 위로해준 노래가 아이러니하게도 이 곡이었습니다. 슬픔을 지독한 슬픔으로 뽑아내주는, 마치 슬픔을 관장시켜주는 노래 같았습니다.
이별과 상실로 인한 '슬픔의 관장제'인 이 곡!
상대의 갑작스러운 이별의 통보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시간들이 또 떠오르네요. 지금은 어떤가요? 받아들이고 자시고의 개념이 흐려지더군요. 시간이 흐르면, 그래서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할까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시간이 해결해준다기보다 조금씩 기억에서 밀려나 흐릿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그때의 감정들은 여전히 남아있게 되네요. 그것이 꽃이, 훈장이 될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제 경우엔 10대, 20대, 30대 때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했던 삶의 여러 과제들을 40이 되어서야 비로소 밀어붙이게 된 것 같습니다. 허상의 세계에서 너무 오래 머물다 보니 불투명한 막에 쌓인 채 인생을 허비했던 것도 같습니다.
이 노래는 과거에 그랬었던(제 자신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제 자신에게 하는 노래이기도 했습니다. 너는 왜, 말하지 않았니? 너는 왜, 멈춰있었니? 그런데 그 대답을 타인에게 듣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타인은 저를 떠납니다. 자꾸 물어보니까, 괴로웠나 봅니다. 아니면 제가 미웠나 봅니다.
아니면, 아예 저에게 그 어떤 감정도 남아있지 않거나요. 정말 비참한 일이죠. 차라리, 나를 미워라도 해주길 바라는 마음.
40이 넘어 밀어붙이려니, 힘이 많이 달리네요. ^^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그런데 재밌기도 합니다. 제가 원하는 방향을 계속 탐사 중입니다. 이 탐사의 길이 브런치 글 쓰기이기도 합니다.
노래의 가사처럼 저는 스스로가 여전히 너무나 작게만 느껴집니다.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