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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와 다시 입 맞추는 사랑

내가 항상 여기 서있을 게

by 이아
천만 번 죽어도 새롭게 피어나는 꿈


천만 번 죽어도 새롭게 피어나는 꿈, 남상아 님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동공 지진이 났었다. 처음 이 노래와 만난 지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가끔씩 이 노래 가사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러면서 잃어버린 나의 꿈을 다시 붙든다. 천만 번 흩어졌던 그 꿈을 다시 잡는다. 이제는 그 꿈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떤 전략과 방법을 써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으련다. 그 꿈이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목표가 되는 순간 욕심이 생기고, 그 욕심이 조바심을 끌어와서 꿈을 살 수 없게 된다. 이제는 다르게 하련다. 그냥 글 쓰고, 운동하고, 상담하련다. 그러면서 계속 사람들과 이어져있어보려고 한다. 무의식에게 맡기는 거다. 포기는 없다. 계속 지금 할 수 있는 일들(글쓰기, 운동, 상담 등)을 해보는 거다.


나 혼자 우주에서 똑떨어져서 혼자의 힘으로 이 자리까지 온 것은 결코 아니다. 대학교 4학년 시절 나를 상담해 주셨던 첫 상담 선생님을 지난주에 국회(심리사법 토론회)에서 우연히(?) 뵙고, 인사를 나눌까 말까 망설이다가, 인사를 했다.


26년 만이었는데 선생님은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어찌 잊으리오? 나는 참 무모하고, 대범하기도 하지만 너무나 여리디여린 내담자였는데..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 치고, 수업 시간에 로샤 검사를 배우면 "선생님, 저 로샤 검사해 주세요" TAT 검사를 배우면 "선생님, 수업 시간에 TAT 검사 배웠는데 참 재미있어 보였어요. 저 하고 싶어요. 해주세요" 참, 해맑게 눈치도 안 보고 해달라고 했던 것 같다. 그렇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모든 면에서는 아니지만 관심 분야에 있어선 자율성과 주도성이 뛰어나다 못해 좀 과하다는 것을! 그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벙어리로 살아왔을까..


여전히, 말이 안 나오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에는 잊지 않고, 기억하려 한다. 그리고 글을 쓰면 된다. 글이 나의 말이자, 노래이자, 외침이니까..


어쨌거나 첫 상담 선생님의 상이 내 마음속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더 생생하게 느끼게 되었다. 선생님은 여전하셨다. 수줍은 미소를 띤 소녀 같은 모습이셨다. 토론회에서 말씀하시는 목소리는 26년 전과는 달리 톤이 다소 두터워지셨고, 목소리도 커지셨다. 선생님이 그렇게 유명하게 되실 줄 몰랐었다. 너무 내향적이고, 조용한 분이셨기에.. 그렇지만 조용한 사람이, 차분한 사람이 지닌 강렬한 에너지가 어떤 것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계셨다. 여전히, 멀리서 선생님을 응원한다. 선생님도 나를 향한 마음이 같은 실 것으로 믿고 있다.


그 선생님과 그렇게 합이 좋았던 것은 우리가 비슷한 유형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니다. 당시 내가 그렇게 생각했고, 믿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과 나는 참 많이 다른 종족이었다. 심리유형론(MBTI)을 지금은 잘 신뢰하진 않았지만, 20대 초반에는 푹 빠져있었다. 16가지 유형으로 사람을 나누고, 같은 유형의 사람을 하나의 종족으로 퉁쳐버릴 수 있으니 얼마나 경제적인가?






다시 꿈으로 돌아가 보면, 음악을 하려다가 왜 중도 하차를 했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실패한 연애 때문이었는데, 연애 실패나 진로 좌절이나 지금 생각하면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연애를 실패하고, 그 지점에서 엄청난 무너짐을 경험하고, 그래서 음악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는 심리학과 대학원(석사과정)에 진학했다.


나를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공부하고, 책을 읽어도 나 같은 성격을 하나로 딱 잡아서 정의, 분류, 진단하기는 어려웠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했던가? 나는 당시에 선무당이었고, 나 자신을 잡고 말았다. 못하겠었다. 더 이상! 그래서 나로부터, 심리학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이해나 파악 그런 건 다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심리학과 가장 멀리 가기로 결심했다. 배운 이론들은 다 잊어버리자고 결심했다. 이 포인트에서 나는 머무름이 1도 안 되는 인간이었다. 머무르지 않고 달아나서 나름 잘 살았는데, 잠시였다.


안타깝게도, 그때 나를 잡아주는 손은 없었다. 단 한 사람의 손이라도 나를 잡아서 붙들어주었다면 나는 달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부재했다. 부재와 상실, 그리고 단절!


결국, 머무름을 배우기 위해서 나에게 큰 시련이 다가왔었다. 그 시련이라 함은 또 실패한 사랑이었다. 나에게 사랑이란 실패, 상실, 좌절, 고통과 아픔. 그래서 나를 망가뜨리는 것, 그래서 더 이상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렸다. 어떠한 전략이나 해결책, 방향 전환이 전무했다. 머무름 밖에는 어떠한 선택지도 없는 상황이 드디어 오고야 만 것이다. 그때 나는 지옥에 있는 기분이었다. 머무름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참지 못하고, 죽고 싶다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전의 내 삶에서 머무름은 없었기에 미칠 것 같았다. 미치는 게 이런 거구나,를 매 순간 느꼈다.


이런 내가 무엇을 하며, 누구를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하며 한없이 침잠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은 아우슈비츠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 어떤 것도 꿈꿀 수 없는 폐허! 그리하여 나는 좀비 영화를 보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좀비 영화를 좋아하긴 했었다. 좀비 유전자가 있다면 내 뇌 속에는 좀비 유전자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 같기도 하다.


돌고 돌아와 다시 입 맞추는 사랑


그러나 결국 나는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돌아옴의 과정이 결코 쉽진 않았다. 오르락내리락 나선형의 끝없는 과정, 조금 괜찮은 것 같으면 다시 처박히고, 다시 조금 더 힘을 내서 올라오면 다시 또 구덩이에 빠져 버리고, 지금도 그러한 과정 중에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지상의 공기를 맡고 있는 것 같긴 하다.


나는 병들어있었고, 실제 대상을 만날 에너지가 없었다. 그래서 내면으로 침잠했던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 시간들이 절망의 시간이었고, 숨 막히는 어둠의 시간이었다. 그 어둠의 시간을 지나면서 나라는 사람을 진단, 분류, 정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이해하고, 여기서 이해는 인지적인 이해가 아니다. 가슴으로 받아들인다는 개념이다.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직관적으로, 몸에서 감각되는 느낌을 말하는 거다. 그 느낌은 굉장히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며, 스스로를 안아주는 느낌이다.


이것을 도와주었던 책이 있다. 실비 제르맹 작가님의 '마그누스'이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4~5세에 2차 세계대전을 겪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망각하게 된다. 청년이 되어서 어린 시절의 조각난 기억들을 조금씩 마주하게 되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어떤 심리학 책보다도 나를 따뜻하고, 선명하게 알게 해주었다는 게 신기했다. 그래서 문학을, 예술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다. 상담을 하면서도 늘 문학, 예술에 마음이 간다. 상담만 하면 반만 사는 반쪽 자리 인생인 것 같다. 그래서 나의 꿈인 문학, 예술을 포기하지 않고, 또다시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원래 되고 싶었던 사람은 작가, 음악가, 영화감독이었는데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상담인데 이 두 가지를 섞으면 뭐가 나올지 궁금하다. 하나로는 만족이 안 된다. 상담을 하면 할수록 이 두 가지를 섞어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계속 배회하고 있다. 이 배회가 나를 어디로 이끌지 정말 궁금하다.


나를 알게 된다는 건, 단순하고, 간단한 일이 아니다. 나라는 실체는 애초에 허상이고,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기에 삐끗하면 허상에 빠지게 된다. 아주 짧은 찰나에 느껴지는 통찰을 붙들고, 다시 내려놓고, 붙들고, 다시 내려놓고..


이제는 꿈을 향해 다가가는 것, 나를 향해 다가가는 것이 이전만큼 두렵지는 않다. 그래도 쉽지는 않다. 그런데 그 꿈을 만나고, 꿈을 잃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


내가 항상 여기 서있을게
걷다가 지친 네가 쉬어갈 수 있게

서시-신성우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줄 사람, 슬프나 기쁠 때나 함께 나눌 사람, 이 역할을 우리가 서로에게 해준다면 우리는 꿈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에서 실패하고 좌절하신 분들이나 진로에서 실패하고 좌절하신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런데 사랑에 실패하신 분들과 진로에서 실패하신 분들 중에서 더 크게 고통스러워하시고, 삶의 의미를 상실하신 분들은 전자였다. 그만큼 우리에게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서로의 꿈을 더 이상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단단하게 서로를 붙들어주는 모임을 만들고 싶다. 우주에서 흩어져 버리는 꿈이 아닌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사람들의 모임을 기다린다.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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