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을 바꾸는 질문 500가지
나는 굉장히 친화적인 사람이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하는 그대로 믿어왔다. 곧이곧대로 믿는 나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네가 착해서 그런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사회에서 그런 순진함으로 사람을 믿다가는 상처받을 건 나라는 진심 어린 조언과 함께. 하지만 난 이 조언 자체가 나에겐 물음표였다. 내 이런 성격을 퉁쳐서 ‘엔프피로 살아남기 힘들죠?’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받았을 때도 내가 남들이랑 다른가..?라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내가 왜 저 조언들을 들었을 때 저 말들이 와닿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다. 결론은 난 남들을 잘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앞으로만 그래그래 했지만, 그 사람들의 말을 기억히지도, 그 사람들의 말에 의문을 갖지도 않았던 것이다. ‘어쩌라고? 나한테 저런 말을 왜 하지?’ 같은 날 선 의문들도 아니었다. 그저 말 그대로 그들의 인생에 아무런 궁금증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경조사의 달인이자, 발 넓고 약속 많은 내가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게 역설적이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어왔지만,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몇몇의 인간들에게만 만나자는 말을 하며, 만나서는 내 이야기를 쏟아내기 바빴던 것 같다.
난 내가 남들과 굉장히 잘 어울리는 사회성 높은, 교육을 잘 받은 인간이라 믿어왔다. 하지만, 30년 이상 맺어온 다양한 인간관계들을 생각해 봤을 때, 나는 내 주변 사람에게 정말 관심이 없다. 원래 가족도 모르는 게 사람 속이라고는 하지만, 모르는 것과 관심이 없는 건 다른 거다. 나는 관심이 없었다. 그동안 내 삶을 나름대로 야무지게 일궈보겠다고 애쓰며 살았고, 그 와중에 좋은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다. 평생 친구인 중학교 친구들, 경주마처럼 달리던 고등학교 시절의 나를 어미새처럼 이끌어 준 페이스메이커(사실 절대 따라잡지 못하는 나의 롤모델이다.) 전교 1등 내 친구, 고3시절 사회성 떨어지는 (한시적으로) 나에게 관심을 가져준 친구들까지.. 대학에 와서는 정말 마음 잘 맞는 마음이 넉넉한 친구들을 만났고, 현재는 좋은 남편을 만났다. 그러다 문득, 내 전 생애에 걸쳐 빠지지 않는 세 사람 엄마, 아빠, 언니를 포함해서 내 주변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그들에 대해 내가 한 문장이라도 서술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나는 우리 엄마의 삶의 역사를 모른다. 아빠와 연애 시절은 어땠고, 인생에서 힘들었던 점은 어떤 것이었으며, 우리를 키우면서 뭐가 좋았는지 등.. 가장 가까이 있는 그녀에 대한 질문조차 없었다. 엄마에게조차 이런데, 내가 남에게 관심을 가졌을 리가 없다. 정말로 내 주변의 사람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그들에 대해 어떤 것들을 이야기해보려 해도, 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남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게 그 사람들에게도 느껴졌을까? 문득 무서워졌다.
이래서 내가 타인들과 관계를 맺을 때, 그 사람의 좋은 점, 싫은 점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았구나, 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의문이 든 적도 없고 그렇다고 공감한 적도 없고, 그 대화들을 반추한 적도 없구나. 그 사람들을 투명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관심이 없는 거였다. 나는 남들에게 마음을 여는 사람이 아니다. 열지 못하게 막는 것은 그냥 그러고 살아온 나의 기질이겠거니라고 퉁치고 싶지만, 사실은 가정 내에서 나의 위치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우리 집 막내로 살았지만, 부둥부둥 예쁨 받는 애교 많은 재간둥이는 아니었다. 삼 교대를 하는 아빠, 아픈 곳도 많고 무언가 힘들어 보이는 엄마. 성장통을 겪는 언니 사이에서 나의 역할은 가만히 있는 거였다. 더 이상 엄마의 속을 썩이는 일에 일조하지 않는, 가만히 알아서 하는 자식. 그렇다고 내가 가만히만 있었겠는가. 나도 해소할 곳은 필요했다. 그건 영화였다. 친구 한 명과 하교 후 매일같이 영화를 봤다. 비디오방에서 300원에 빌려온 영화를 보고, 별말 없이 헤어졌다. 그 친구와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밤늦게까지 영화관을 쏘다녔다. 좋아하는 영화들은 죄다 느리고 조용한 영화들이었다. 영화에 대한 감상평조차도 서로 나누지 않고, '영화 좋았다. 그치.' 이게 다였다. 그러면서 나는 굉장히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살았던 것 같다. 가족과 나의 생각, 감정에 대해 나누기보다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과 감정선에서 공감을 얻고 살아왔던 것이다. 이런 나의 생활이 좀처럼 내가 남에게 마음을 열고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갖기보다는 혼자만의 세계에서 살게 된 이유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목적지향주의적인 성향이 만들어낸 결과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는 올해 나의 삶을 혁신적으로 바꿔보겠다는 큰 포부를 가지고 있기에, 타인에 대한 나의 태도도 바꿔보려고 한다. 목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중요한 거다. 앞이 아니라 옆을 보자.
당신은 타인에게 마음을 얼마나 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