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광주의 한 아파트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수많은 추측들이 난무했고, 비전문가들까지 합세하여 매스컴은 이슈를 만들어냈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나 명백히 사람에 의한 사고였다는 원인 분석과 함께 해당 건설사를 징계하겠다는 방안도 발표되었다. 이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동종업계에 몸을 담고 있는 일원으로서 뭔가 씁쓸함이 느껴졌다.
여섯 분의 귀한 근로자의 생명이 희생된 이번 사고였음에도 '이번 처벌로 인해 앞으로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 생각해보면, 딱히 명확한 변화가 떠오르지 않는다. 건설현장에서는 늘 주어진 여건에서 안전사고가 나지 않게 부단히 노력해왔었기에, 이번 사고 혹은 중대재해 처벌법이 시행된다고 해서, 사고의 리스크가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이번 사건을 통해 건설업 전반에 메커니즘 변화를 기대했으나, 그냥 현실이 아닌 기대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기대했던 전반적인 메커니즘의 변화는 '분양방식의 변경'이다. 보편적으로 진행되는 선분양 방식을 후분양으로 변경하자는 것이다. 수억 원짜리 물건을 사면서 보지도 않고 사지 말고, 다 짓고 나서 보고 사자는 얘기다. 후분양의 단점은 자금 조달이다. 신용도가 낮을 경우, 엄청난 액수를 조달하기가 어렵고, 또 조달 가능한 회사의 경우도 이자 비용이 크기 때문에 결국 비용이 많이 들게 되는 것은 단점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분양가에 대한 규제를 없애고, 자유롭게 분양가를 책정할 수 있게 한다면 충분히 이자비용 부담이 가능하다.
대신 후분양이 가지는 장점은 훨씬 크다. 먼저 안전사고의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안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공사기간이다. 공사기간이 타이트할 경우, 안전사고의 리스크는 높아진다. 순차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작업이 중첩되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 관리 포인트가 늘어나고 돌발변수가 많아지게 될 수밖에 없다. 공사 시작 전부터 입주일이 정해져 있는 선분양에 비해, 후분양은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또한 품질에도 장점이 있다. 국내 대부분의 아파트 현장은 착공할 때 정확한 도서가 나와 있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착공 이후 3~5개월 정도가 지나야 정확한 도면이 나온다. 전문용어로는 실시설계라고 부른다. 일 년에도 수만 가구를 짓는 아파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면이 확정되지 않은 채로 시작하게 되면 여기서 발생되는 로스가 상당하다. 사전 제작을 마친 후 반영하는 드라마와 방영과 촬영을 동시에 진행하는 일반 드라마의 퀄리티 차이를 고려해 보면 유사할 것이다.
나아가 후분양으로 인해 분양가가 상승되어, 주변 시세와의 차이가 거의 없어진다면 우리 사회의 큰 이슈인 아파트 투기도 지금 보다는 훨씬 줄어들 것이다. 분양가가 높아지면 내 집 마련이 더욱 어려워질 수 도 있다는 의견도 있으나, 분양가를 그토록 규제했을 때 내 집 마련이 쉬웠는지 생각해 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가격을 규제하여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고, 공급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이슈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부디 이번에는 바꾸지 못했더라도, 빠른 시일 내에 전반적인 메커니즘의 변화가 현실화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