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저 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얘기를 할까 말까 한 두어 달 고민을 했다. 입사한 지 어느덧 15년이 되어 간다. 보통 퇴직 때까지 30여 년을 일 한다고 가정하면 이제 반쯤 달려온 셈이다. 바야흐로 과거를 돌아보고 앞날을 도모하기에 적기인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말을 꺼내려하니 쉽지 않았다. 여러 가지가 걸렸다. 그중 제일 찜찜했던 부분은 '조직에 충성을 다하지 않는 직원 혹은 회사에 큰 관심 없는 직원'으로 낙인찍힐 수 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답답한 마음을 추스르려 늦은 밤 강변을 걷기 시작했다. 조용한 산책로를 걸으며 생각해 보니, 신입사원 때부터 본받고 싶던 선배의 모습은 '소신 있는 사람'이었다. 소신이 있으려면 먼저 자신의 실력과 주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외부적 압박에서도 굴하지 않는 용기도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해 보니,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소신을 잃어가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 싶었다. 그래서 바로 그다음 날 팀장님을 찾아갔다. 회사에 크지 않은 소회의실이 있어서 그곳에서 잠깐 뵙자고 요청드렸다.
- 팀장님. 저 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 무슨 일 있어?
- 특별한 일이 있다기보다는 회사일에 시간을 쏟다 보니, 삶에 대한 생각이 사라져 버린 것 같아서 좀 쉬면서 제 생각들을 정리해 봐야 될 것 같아요.
- 어. 그래? 특별히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나도 그런 리프레쉬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래 알겠어. 언제든 네가 편한 때와 기간을 정해서 알려줘.
- 감사합니다.
나를 믿고 베풀어준 호의에 진심으로 고마웠고, 또 부담감도 생겼다. 조직에서도 나를 배려해 줬으니, 나 역시도 업무 진행 사항을 고려하여 휴가철이 낀 8월 한 달을 휴가로 보내기로 했다. 한 달여간을 쉬면서 대략 고민해 볼 내용들은 '내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이지', '사회나 회사의 뜨거운 쟁점에 대한 생각정리' 등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책도 읽고, 글을 써 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기왕이면 지금 거주하는 집을 떠나, 리프레쉬할 수 있는 곳에서 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몇 해전 제주에서 보고 메모해 둔 카피가 떠올랐다. 'out into the open like this makes you look at the different.'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거처만 바꾸더라도 삶을 관망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판단되어, 여러 선택지를 놓고 고민하다가 '제주도'로 거처를 정했다. 게다가 카라반도 가지고 있으니, 카라반을 가지고 제주에 가서 리조트와 카라반에 번갈아 머물면 체류비도 많이 줄 일 수 있을 거라 판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