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부장들’은 동명의 논픽션 베스트셀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원작자 김충식 씨는 남산의 부장들을 쓴 배경에 “대한민국 역사를 통틀어 1960-1970년대의 독재 18년은 중요한 시대다. 그 18년을 지배한 정점에 중앙정보부가 있었다. 입법, 사법, 행정을 총괄할 정도로 권력을 누렸던 중앙정보부에 대해 1990년대까지 모든 매체가 보도를 꺼렸다.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막중한 권력을 휘두른 이들에 대해 기자가 보도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라 생각해 사명감을 갖고 집필을 시작했다"라고 밝혔다.
한편 우민호 감독은 “방대한 내용을 다루는 원작 중 가장 드라마틱 한 사건으로 꼽히는 10.26 사건에 집중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건이지만, 그 인물들이 정확하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길래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총성이 들렸는지 탐구하고 싶었다"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원작자와 감독의 말처럼 남산의 부장들은 지난날 있었던 역사적 배경을 완벽히 객관적으로 풀어낸 것이 아니며 개인적인 견해가 들어갔음은 당연할 것이다.
이처럼 때론 사람들은 감독이 영화에서 의도하는 표현을 두고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말을 앞서 하는 사람들은 주로 현 정권에 따라 영화의 정치적인 색이 달라진다는 게 가장 큰 주장이다. 물론 영화의 역사를 보면 정치적인 색을 띤 영화가 많고 지금도 그런 영화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영화의 흥행을 위해 특정한 사건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먼저 영화의 정치적 색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 말하고 있는 남산의 부장들은 적어도 그런 정치적 의미를 둔 영화는 아니라는 개인적인 견해를 꺼내기 위함이다. 마지막에 김재규의 법정 최후 진술 장면으로 인해 영화적 의미가 퇴색하고 정치적인 색을 입혔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며 극 중 박 대통령(이성민 분)과 경호실장(이희준 분)의 묘사가 어느 정도 과격하게 표현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극 중 인물들의 관계와 묘사를 보면 선과 악으로 단순하게 나뉘지 않는다.
김규평도 박 대통령도 경호실장도 데보라 심(김소진 분)도 곽병규(곽도원 분)도 모두 자기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움직일 뿐이다. 즉, 어디에도 선은 없고 개개인만 있을 뿐이다. 이를 김규평의 시점으로 흘러가는 전개를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는데, 처음에는 박 대통령의 말만 따르던 중앙정보부 부장이었지만 곽병규를 만나며 박 대통령에게 의심을 품고 박 대통령에게 곽병규가 버려진 것처럼 똑같이 버려지고 종국엔 생존의 위협을 느껴 되려 박 대통령을 살해한다. 김규평의 박 대통령 살해 동기가 정의감이 아닌 자신의 생존임을 느끼게 하는데 때마침 김규평의 실제 모델 김재규의 법정 최후 진술 장면이 나오니 그의 말은 변명처럼 들릴 뿐이다.
남산의 부장들의 장르가 드라마라고 하지만 스릴러, 누아르라고 봐도 무방하지 싶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0년 개봉)에서 건조하면서 담담하게 스파이들의 관계와 사건을 전개하는(감히 비교가 될까 싶지만 문득 떠오른 영화이기에 언급함) 것처럼, 남산의 부장들 역시 인물에 특성을 부여하되 특정 인물에 치우치지 않고 담담하게 사건을 전개해나가는 연출을 볼 수 있다.
카메라는 늘 인물을 사각형 안에 가둬두는 듯하다. 갇힌 듯 보이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답답함과 긴장감을 느끼게 하며 시의적절하게 들려오는 BGM은 한층 감정을 고조시킨다. 특히 잦은 클로즈업과 배우들이 관객을 보면서 대사 하는 장면이 많은데, 이를 통해 영화가 관객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직접 하는 것 같은 효과가 있지만 반대로 영화의 몰입을 깨버릴 수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가 무척 좋아서 영화가 지루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남산의 부장들 하면 누구나 이병헌 배우의 연기를 가장 먼저 꼽을 것이다. 김규평은 긴장할 때마다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는 버릇이 있는데 박 대통령을 암살하고 나오는 그가 머리를 쓸어 넘기는 장면은 그의 불안한 심리를 잘 표현했다. 그리고 그 심리묘사가 이후 차를 타고 가며 유턴을 하게 되는 계기로 이어지는 듯한 연출은 무척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병헌뿐 아니라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 김소진 등의 주요 배우들 연기 도 무척 좋아서 영화에 한층 몰입하게 만든다.
남산의 부장들은 근래 만들어진 한국 영화 중에서 수작으로 꼽을 만하다. 인물들의 특징이 살아있는 묘사와 찰떡같은 배우들의 연기력 그리고 영화의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연출은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역사적인 배경은 알고 봐도 좋고 몰라도 좋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높아 결말을 알고 보든지 모른고 보든지 간에 한 편의 누아르를 보는 것처럼 몰입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