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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몬 디자인스토리 Dec 07. 2017

시대를 읽어내는
예술가의 새로운 '눈'

[The New Vision from Bauhaus to A.I.]

르 메르디앙 서울 호텔 입구에 가장 먼저 보이는 전시 포스터 'the new vision'


리츠칼튼 호텔이 예술 문화 복합 공간 르 메르디앙 서울 호텔로 리뉴얼되었습니다. 수식어에 걸맞게 1층에는 M 컨템포러리 아트센터가 들어오게 되었는데요, 개관 기념으로 처음 선보였던  전시 "The New Vision"에 다녀왔습니다. 부제 [from Bauhaus to A.I.]를 읽는 순간 약간 난해함이 느껴지겠지만, 첫 시작의 '라즐로 모홀리-나기'의 철학과 작품들을 보고 나면 전체적인 전시 컨셉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그럼 한 번 같이 들어가볼까요?


리뉴얼돼서 그런지 새건물 느낌 뿜뿜!


#0

| 라즐로 모흘리-나기

  Laszlo Moholy Nagy

헝가리 출신 라즐로 모홀리-나기는 멀티미디어의 선구자로 불리는 아티스트로 그의 철학과 실험적인 작품들을 통해, 시대보다 앞서가는 그의 예술적 확장성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전시의 타이틀 [The New Vision]도 그의 저서(1938)에서 따온 만큼, 분야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예술 정신은 오늘날까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듯 합니다. 모홀리-나기는 사진이 기록의 도구로 인식되던 시기에 '표현 수단'으로써의 사진의 기능성을 간파하여 미학적 매체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진 = 빛을 그리는 그림" 이라 부르며, 급기야는 사진기 없는 사진, '포토그램'과 '포토플라스틱'을 발명해냈습니다. '포토그램'은 감광 처리된 종이 위에 오브제를 올린 뒤 빛에 노출함으로써 오브제의 윤곽과 질감을 이미지로 드러나게 만드는 추상 사진으로, 물질과 빛이 합일되어 2차원적으로 투영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회화입니다. 즉, 물체의 상을 담아낸 작품이죠. 이를 통해 그는 포토그램의 예술적 기능성을 증명함과 동시에 기계화가 사진의 본질적인 창조성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모홀로-나기의 포토그램_1922]


포토그램을 시작으로 그의 실험은 공간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한 키네틱 조각과 영화로 이어져 1930년 '빛-공간 변조기'를 발표합니다. '빛-공간 변조기'는 빛의 동적 현상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서, 기계적인 움직임과 빛, 그림자가 어울러져 예술적인 아우라를 뿜어내는 영상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이 것을 활용하여 [빛 설치: 흑, 백, 회색]이라는 짧은 영화를 촬영했는데요, 이를 통해 빛과 투과 반사와 같은 속성을 좀 더 명확히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몽환적인 영상과 음악, 그리고 반짝이는 빛 등이 요즘 찍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세련되고 멋졌습니다.

 

[빛 설치: 흑, 백, 회색]

이에 이어, 모홀로 나기의 '블루와 화이트의 빛 드로잉[Blue and White Ligth Drawing]' 작품 한장을 지금의 기술로 재해석한 작품이 설치되어 있었는데요, 현대 기술이 더해져 더 반짝이고 역동적인 빛의 조각들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모홀리-나기 : 블루와 화이트의 빛 드로잉]
[블루와 화이트의 빛 드로잉의 재해석]

 

모홀리-나기는 기술을 이용하여 예술의 표현방식의 폭을 넓히는 것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으며, 작품속에는 이런 그의 의지가 가득 담겨있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5명의 작가들의 예술관도 어느정도 접점이 있을 것이란 예측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럼 이제 다섯명의 작가를 한 명씩 차례대로 만나볼까요?


#1

| 김수[SU KIM]

김수의 예술관은 좋은 디자인을 위해서는 재료에 대한 이해가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모홀리-나기의 예술적 태도와 유사합니다. 색을 최대한 배제하고 종이, 연필, 기름, 물감 등 단순한 질료를 주로 사용하여 작품을 만듭니다. 돌아가는 오르골 작품은 그의 머릿속의 스케치들 생각의 단상들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형태가 불분명한 작은 파편의 플라스틱들이 빛과 만나 커다란 실체를 가진 모습으로 구현됩니다. 이 모습이 마치 작가가 작업을 구상해내고 구체화시키는 과정과 닮았으며,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표현기법이 환상적이여서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그 옆에 설치해놓은 설산의 재료는 놀랍게도 밀가루와 천입니다. 단순한 재료로 그것을 뛰어넘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놀라웠습니다.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설산에 살짝 달이 비춰져 신비로운 느낌이 배가 됩니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를 종이위에 바늘로 구멍을 뚫어 표현한 작품을 마지막으로 김수의 방은 끝이 났습니다. 신비로운 분위기와 잔잔함에 매료되는 공간이었습니다.

[해석된 감정 : 종이위에 바늘로 구멍 뚫기 18X25cm, 2017]


#2

| 전준호[JOONHO JEON]

커튼을 열고 다음 섹션으로 넘어가니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번엔 전준호 작가의 방인데요, 키네틱 구조물과 영상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그의 본 전시 작품의 출발점은 재개발로 사라진 공간입니다. 모홀리-나기가 제시하는 '새로운 시각'을 전준호는 전혀 새로울 게 없는 과거에서 찾습니다. '주위의 고정적이고 타성에 젖은 것들을 환기'시키기 위해 그가 찾은 대상은 버려진 집에서 꺼내온 창틀이나 가구처럼 용도 폐기된 쓰레기들입니다. 이렇게 꺼내온 폐기물들은 움직이는 키네틱 조각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군데 군데 설치되어있는 이 물건들은 상하 운동을 계속 하는데, 이는 고층 빌딩으로 재현되는 재개발의 욕망을 드러냄과 동시에 그로 인해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과거의 것들을 표현하였다고 합니다.

키네틱 작품을 보던 중에도 곁눈질로 계속 힐끔거리게 되는 스크린에는 한적한 이국적인 자연과 풍경의 영상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작품 이름은 "꽃밭명도". 멕시코의 해변도시 푸에르토 에스콘디도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들 뒤로 짚과 콘트리트가 섞인 예술센터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잠시 이색적인 건물의 외관을 보여주는가 싶더니, 센터의 높은 콘트리트 벽들 사이로 복사기 한 대가 등장합니다. 이 복사기는 마치 생명체처럼 이곳저곳 누리고 다니기 시작하는데요, 그의 목적은 종이를 찾는 것. 마지막 멈추는 순간까지 자신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기능의 문제와는 상관없이 일정 시일이 지나면 버려지는 기계의 운명이 인간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메세지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무겁고 슬픈 메세지와는 별개로, 멍하게 종이를 찾아다니는 복사기의 모습이 엉뚱하고 귀엽게 느껴집니다.

[꽃밭명도 Chapter #1]


#3

| 김병호[BYOUNGHO KIM]

앞선 방에서 마음이 차분해졌다면 다음 방에는 색상의 화려함에 눈이 먼저 휘둥그레해지는 방을 마주하게 됩니다. 모홀리-나기가 원, 사각형, 삼각형 등의 기하학적 형태를 빛의 속성과 결합시켜 3차원 적인 공간을 표현했던 것과 같이 김병호 또한 기하학 색채 이미지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모홀리-나기의 작품과 유사성을 보입니다. 쨍한 색감과 알루미늄과 우레탄으로 만들어진 기하학적 모양의 구불구불한 조형물들 사이로 거울에 비치는 여러명의 나를 보는 순간 마치 오브제들이 잔뜩 있는 그림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듭니다.


#4

| 양민하[MINHA YANG]

양민하 작가의 방에서는 기이한 기계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A.I. 인공지능은 더이상 허구가 아닌 현실의 존재가 되었음을 모두 실감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요, 그가 제시하는 4점의 작품은 모두 현시점에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예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보여줍니다. 시각이나 청각과 같은 인지 감각에서부터 언어와 같은 고도의 영역까지 사람에게는 기초적일 수 있는 단계의 표현을 기계가 어느정도까지 보여줄 수 있는지를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A.I가 작곡한 음악은 설치된 스피커(?) 같은 기계를 통해 계속 나오는데, 지지직 하는 잡음만 흘러나와 듣기가 힘들었습니다. 사람과는 달리 기계는 반복의 횟수가 어느 정도를 넘어가면 괜찮았던 음악도 이상해진다고 하니, 완성도를 높기기 위한 인간의 '노력'과 '연습'의 영역은 기계가 따라잡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A.I 가 표현한 회화작품]


#5

| 애나한[ANNA HAN]

마지막으로 펼쳐지는 애나한의 방은 또 다른 분위기가 펼쳐집니다. 입구에서 부터 커다란 자동문과 함께 신발을 벗고 들어와 달라는 문구부터 심상치 않았는데요, 문이 열리자 마자 핑크빛의 네온사인 불빛 들, 요즘 힙하다고 일컫는 컬러들이 가득한 러블리한 공간이 펼쳐집니다. 바닥부터 벨벳 카페트가 깔려있어 지친발을 감싸줍니다. 타이포그래피를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라고 여긴 모홀리-나기처럼 애나한은 압축적인 텍스트로 공간을 응집시키려고 했습니다. 이 작품 "XXXX ME"에서 그가 고른 세 문장 "HUG ME", "KISS ME" "LIE W/ME"는 공간과 맞물리며 특유의 오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여기가 인스타그램에 인증샷 장소라는 것에 100%공감이 가는 순간이었습니다.


#0

| 라즐로 모흘리-나기

  Laszlo Moholy Nagy

이로써 5명의 작가들의 작품들이 모두 끝이나고, 마지막으로 [The new vision] 전체의 주제이기도 한 모홀리-나기의 작품이 마무리를 맺어줍니다. 앞서 봤었던 '포토그램'과 함께 만들었던 '포토플라스틱'이 그 주인공인데요 구멍을 통해 작품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모습이 재밌습니다.

저 작은 구멍을 통해 들여다 본 작품은 실로 놀라웠습니다. 잡지에서 하나하나 오려붙인 듯 한 느낌의 몽타주 속에 인물들이 저마다 살짝 살짝 움직입니다. 그에 맞는 '바람소리' '발 소리' 등의 소리들도 함께 들려왔습니다. 독특한, 한편으로는 약간 기괴한 이미지들에 매료되어 쉽게 발걸음을 뗄 수 없게 됩니다.



르 메르디앙 호텔에는 이번 전시 외에도 로비에 걸린 액자, 입구에 있는 조형물까지 모두 다 작가의 이름이 달린 예술 작품들입니다. 전시를 다 보고 난 후, 곳곳에 설치된 또다른 예술 작품들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여유롭게 차 한 잔 하며 둘러보는 것도 추천!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시대가 끊임없이 바뀌면서, 그 시대에 따라 발전하는 기술에 발맞춰 나가는 것이 아티스트들의 숙명 같은 것으로 느껴집니다. 기술을 하나의 도구로써, 역이용하여 표현의 폭을 넓혔던 모홀로 나기의 '눈'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크리에이터들에게 필요한 '새로운 눈'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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